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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J YP Feb 13. 2021

영화 #소울 이야기

롱리뷰,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


가장 먼저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났다. 관념적 세계를 애니매이션의 상상력으로 표현하여 현실 세계의 사건과 병렬 배치시킨 구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울’에서 표현된 관념적 세계의 활용은 인사이드 아웃 쪽과 결이 다르다. 일단 비중이 생각보다는 적고 현실을 쭉 따라가면서 딱딱 설명이 맞아떨어지는 쾌감도 덜하다. 


그러면 소울은 단지 인사이드 아웃의 열화판이라는 건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울은, 픽사 장면 애니매이션을 대부분 따라온 나에게 있어서도 비교 할 작품을 찾기 어려울 정도의 숭고함을 안겨준 작품이다. 


소울에 대해서 지금도 어울릴만한 최고의 표현을 찾고 있지만 이거다 싶은 표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만큼 이 작품의 장점이 수도 없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 기술적으로 2021년도를 앞서가는 극상이다. 일상 파트에서 엿보이는 스타일 (특히 흑인을 다루는 조명이라던가) 과 디테일, 그리고 사후 세계를 표현한 장면들은 그 자체로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각기 대비되는 부분이라던가 심지어 그 절충점까지 고려되었다는 점이 더욱 놀랍게 여겨졌다. 이 부분만으로도 사실상 두개의 애니매이션 그 이상에 필적할 만한 성취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지닌 유머감각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흑인 재즈 문화와 사후세계 묘사를 품으면서도 대중적인 요소를 찾아내고 이야기 흐름 속 좋은 타이밍에 딱딱 뿌려준다. 좀 더 범위를 넓히자면 이야기의 구조도 흠 잡을 곳 없게 느껴졌다. 어느 한 파트가 지나치게 커지거나 간섭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 안에서 어긋남 없이 배분이 절묘하다.


빨리 이야기하고 싶어 안달이 났기 때문에!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겠다. 그러니까 영화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은 그 밸런스다.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이 사후세계로 떨어지는 연출을 암전 상태에서 흰색 선으로만 표현한 장면이 있다. 엄청 강렬하고 그 자체로 사람을 사로잡는 부분인데 뭔가 좀 확 매료될만한 시점에서 끝내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사후세계의 묘사도 마찬가지다. 인사이드 아웃은 정신세계 파트의 목적이 분명했다.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해야하는 임무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두 세계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 흐름 속에서 티키타카를 벌이며 진행된다. 사후세계의 이야기가 다음 현실세계 파트의 동기가 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로 맞물리면서 끝까지 진행되는데 그 흐름이 천의무봉에 다름없다.


그러니까 앞전에 언급한 밸런스라는 장점은 모든 면에서 ‘적당히’ 고르게 만든 웰메이드라는 표현이 아니라 어느 한곳 트집잡기 어려운 극상으로 제련되었다는 의미다. 여기까지만 해도 칭찬이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울의 밸런스는 단지 ‘좋은 작품을 위해 열심히’ 라는 슬로건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힌트는 영화 속 사후세계의 모래사막에서 처음 등장한다. 일을 즐기다가도 그 일에 지배당하면 순수한 영혼이 괴물로 흑화한다는 설정이 그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기본 방향을 엿볼 수 있다.


말하자면, 콘텐츠는 결코 삶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스스로 만들고 있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왜 사는가’ 수많은 매체들이 질문했을 대답에 도달하고자 영화 속에서 매력적인 캐릭터와 황홀한 음악, 아름다운 비주얼을 함께 가져가되 어느 한 요소에 지나치게 경도되지 않는 그 밸런스. 끝까지 그 중심을 지켜 내었다고 느꼈기에, 영화를 본 후 진심으로 주인공 일행이 삶을 대하는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내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숭고함도.


이러한 작품의 성취는 제작진의 단단한 팀워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각 파트별로 일하다 보면 어쨋거나 뽐내고 싶은 요소가 있게 마련이었을 건데 공통된 목표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결과다. 그 말은 즉, (내 기준으로는) 만드는 사람들부터가 진심으로 소재와 주제를 믿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더 말하고 싶지만 부족한 글솜씨로 덧붙이는게 되려 순수함을 없앨 것 같아 마무리 지어야겠다. 소울은 삶을 이야기한다는 장엄한 목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객관적인 태도로서 겸손함을 잃지 않으며, 가능한 최선에 전력으로 부딫혀가며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러기에 완벽해 보이면서도 인간적이기도 하며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범위가 상식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무엇보다도 장엄한 목표를 가리키는 올바른 손가락으로서 관객의 삶을 일깨워 줄 힘을 지닐 수 있었다. 반드시, 이 훌륭한 작품을 여러분의 인생에 남겼으면 좋겠다.


여담, 그래도 꼭 하나 언급하고 싶은 장점 하나를 추신으로 뺀다. 이 작품의 현실세계 같은 경우 재즈 + 클래식피아노가 주류고 사후세계는 몽환적 일렉 + 8비트 음악 느낌이 난다. 사실 절대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장르인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 두 장르의 동거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다섯글자 느낌>

보는게고통 / 허접합니다 / 기본만한다 / 무난하네요 / 양호합니다 / 아주좋아요 / 내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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