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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Dec 10. 2023

슴슴한 글

 출장 중에 집밥이 생각나는 백반집을 찾았다. 전체적인 음식 간이 세지 않고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다 식은 반찬들을 내어주는 여느 백반집들과는 달랐다. 타지에서 홀로 자취 생활을 하다 보면 부모님이 해준 슴슴한 집밥이 간간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사 먹는 음식은 자극적이거나 기름져 어느 순간 물리기 마련, 수년간 질리지 않고 먹었던 어머니의 손맛이야말로 내 입맛에 가장 맞는 최고의 음식이다. 슴슴한 그 맛을 연상케 하는 이 백반집은, 출장 중에 종종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전에서는 ‘슴슴하다’를 ‘심심하다’로 교정해야 할 북한어 내지 전북의 방언으로 정의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껏 자극적이지 않고 감칠맛이 도는 담백한 음식에 슴슴하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 왔기에 당황스러워 검색해 보니 나와 같이 당혹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슴슴하다’에는 심심함을 넘어선 무언가가 담겨있다. 심심한 음식은 다시 찾게 되지 않지만, 슴슴한 음식은 한 번씩 생각나는 매력을 가졌다.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집어든 소설 한 권이 떠올랐다. 자극적인 소재로 점철된 내용은 도저히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 보니 책은 어느덧 결말에 다다랐다. 역시 인기가 많은 소설은 이유가 있는 법, 독자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자극적인 소재로 몰입감이 대단했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나에게 남은 것은 공허함이었다. 어쩌면 독서가 나의 도파민을 갉아먹어 지쳐버린 것일까, 아무 생각조차 하기 싫은 무력감이 뒤따랐다.


 요즘은 자극적인 내용을 담아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자극적인 것만 찾다 보면 감각이 무뎌진다. 슴슴한 맛을 즐기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사실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가짜 뉴스가 판치며 내용과 관계가 적은 어그로성 제목이 붙여지는 세상에서 슴슴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찾는 글을 쓰려면 자극적인 제목으로 시작해 속을 화끈하게 달구는 글을 써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런 글이 달갑지만은 않다. 오늘 만난 속이 편안한 정갈한 음식처럼, 마음이 편안한 슴슴한 글, 나는 그런 글이 좋다. 감정이 잔잔해지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그런 글. 자극적인 뉴스로 얼룩진 우리의 일상에 잔잔한 물결을 일렁이는 슴슴한 글. 나는 오늘도 살며시 글을 띄워본다. 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소망하며, 되돌아온 파랑이 나의 글을 완성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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