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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득찬 Feb 08. 2023

벗어 보려고 하길 잘했어요!

서툰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추천 2.『벗지 말걸 그랬어』



요시다케 신스케,『벗지 말걸 그랬어』, 유문조 옮김, 위즈덤하우스(2016)


목욕을 앞두고 옷을 벗겨주려는 엄마를 뿌리치고 

"내가 벗겠어!" 외치는 대찬 포부와 달리 주인공은 옷을 벗을 수 없게 된다. 

영영 옷을 벗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아찔한 미래가 그려지는 것도 잠시,

주인공은 이내 괜찮다. 



"그래! 옷을 벗을 수 없으면 안 벗으면 되지.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실수와 실패를 굳이 굳이 복기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인 나에게

옷이 걸린 채로 허우적거리면서도 괴로워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책을 보는 내내 부러움을 자아낸다. 

'왜 내가 벗겠다고 해서 이런 고생을'이 아니라

'벗을 수 없으면 안 벗으면 되지!' 라니 말이다.

주인공은 옷이 걸린 채로 살았어도 훌륭하게 자란 사람이 어딘가에 또 있을 거라 믿고,

자신과 똑같은 모습인 아이를 만나면 분명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기대한다. 

얼마나 허무맹랑한 희망사항인가. 

그런데 신기하게 삶의 순간순간에는 후회하는 것보다

체념과 허무맹랑한 기대에서 나오는 행동들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 말걸. 이건 망한 게 분명해!'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 기자를 꿈꾸다가

몇 번의 실패 후, '일단 방송국에 들어가자.'를 목표로 

직군을 전환했고, 무기 계약직으로 몇 년간 방송 제작부서에서 일을 했다. 

일은 생각보다 너무 잘 맞았지만 어쩐지 그때는 

'무기계약직'이라는 위치가 자존심이 상했다. 

남들은 갈 곳을 정해두고 퇴사하라고 했지만 그건 좀 멋이 없어 보였달까. 

'당장 밥벌이 안 해도 나의 꿈을 찾아 떠날 수 있어요.' 하는 

남들은 안물안궁인 기세를 내뿜으며 방송국을 나왔다. 

그렇게 겉멋만 부린 퇴사는 약 2년 동안의 백수 생활로 이어졌다.

그때 나는 '뭘 더 보충하면 원하는 회사에 붙을 수 있을까' 보다는

방송국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후회를 여러 번 곱씹었다. 

2년 중 6개월 이상은 그 후회의 덫에서 빠져오기까지의 시간이었다.



'실패해 봤자 안 망하네.'

수십 차례 취업의 관문에서 떨어지면서 실패를 경험하며

방송국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하는 후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알게 됐다. 

정신을 차리고 취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물론 수십 차례 취업의 관문에서 떨어졌지만 떨어질수록 괜찮았다.

'불합격'을 통보받은 날에도 내 하루 안에 재미있는 일 하나쯤은 있었고

최종에서 떨어졌어도 '회사는 많지.' 하는 맷집도 생겼다. 

실패해 봤자 안 망한다는 것을 그렇게 체득했다. 



'벗어보려 하길 잘했네.' 

결과론적으로 실패를 통해 보란 듯이 간절히 원하는 회사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다만 매일의 생활에서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후회하는 시간이 줄었고, 

내가 마주한 상황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는 버릇이 생겼다.

주인공이 스스로 옷을 벗어보려 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상상도 못 했을 것들을 경험하며

웃고 즐거워하고 때론 좌절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자기 자신의 감각으로 경험해 본 세계만이 온전히 와닿는다. 

내가 원해서 한 선택의 결과가  뜻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해보길 잘했네.'의 마음을 얻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실패의 순간 무의미한 후회만 하게 될 때

주변에서 말린 걸 꾸역꾸역 하고서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을 때

이 그림책으로 무모한 용기 한 스푼 얻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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