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약삐약 캠핑 일기 #1-3
제발 앉고 싶다고!!!
텐트를 다 치고 나니 이제 가져온 물건들 세팅이다. 텐트 위에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자충 매트, 전기장판, 요까지 펼친다. 방으로 쓸 텐트에 넣을 물건들을 넣어놓고 이제 거실이자 주방이 된 텐트에 의자와 테이블을 세팅한다. 그 외 아이스박스와 함께 이런저런 용품을 담아놓은 박스들을 정리한다. 정신없이 해놓고 보니 허리도 아프고 힘이 들었다. 이제 좀 앉아야겠다 싶어 앉자마자 "저녁 되어 가는데 불도 피고 저녁 준비도 슬슬 해야겠다"라는 언니의 말. 헉! 이제 좀 앉았는데 또 움직이자고!! 제발 가만히 앉아있고 싶다고!!! 그런데 나의 몸은 방금까지 세팅하느라 힘을 다 뺐으니 얼른 뭘 먹고 에너지를 보충해!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밀키트로 사 온 부대찌개와 양념갈비로 간편히 요리를 할 수 있어 저녁은 수월하게 준비했다. 게다가 오토 캠핑장이니 전자레인지도 구비되어 있어 밥도 후다닥 햇반을 데울 수 있어 편했다. 저녁을 차려놓고 그제야 드디어 앉을 수 있었다.
타닥타닥 활활
아무리 3월의 제주라 해도 밤에는 여전히 춥다. 어두워지자 언니는 그릴에 장작을 넣고 불을 때우기 시작했다. 화로대도 아니고 크지 않은 그릴이라 불맛이 나겠냐 싶었지만 그래도 장작들은 활활 잘만 타들어갔다. 불은 참 신기하게도 사람을 끌어들인다. 가만히 둘러앉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보고 있게 만든다. 이상하게 나만 따라오는 연기는 싫지만 바람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춤추는 불을 보고 있으면 불의 위험함도 그 뜨거움도 잊게 된다. 아들은 고모가 준비해 온 자기 주먹만 한 마시멜로우를 구웠다. 기다란 나무꼬치에 끼워 불꽃 끝에 대고 꼬치를 돌려가며 타지 않게 굽는다. 옅은 브라운이 되도록 살짝 구워 그 부분만 입으로 벗기듯 뜯어먹는다. 커다란 마시멜로우를 먹고 찐 살을 빼려면 지구 몇 바퀴를 돌아야 하더라? 살찔 걱정은 나만의 것이고 아들은 캠핑 온 보람을 마시멜로우에서 느끼는 듯했다. 찐득하면서도 퍼석한 달콤함이 입으로 들어갈 때마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매점에서 사 온 파란 불꽃 가루도 뿌려보았다. 노랗고 빨간 불이 가루를 뿌리니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사그라들긴 했지만 파란불을 보니 꼭 그림책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마녀가 수프를 끓인다면 저 파란불을 피웠을 것만 같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불향 가득 옷과 머리카락에 머금고 있으니 잘 시간이다. 내일은 반드시 한낮의 햇살을 맞으며 챙겨 온 책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오래 앉아 있으리라 다짐을 하며 잠에 들었다.
비행기 모닝콜
부웅~ 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딱딱한 데서 잠을 잘 못 자는 난 자충 매트로 괜찮을까 싶었었다. 이른 아침 잠을 깨운 건 자충 매트의 바닥이 아니라 밖에서 웅장하게 들리는 비행기 소리였다. 생각지 못한 모닝콜에 찌뿌듯 한 몸을 일으켰다. 비행기 모닝콜로 눈을 뜨니 캠핑장 옆 비닐하우스에서 틀어놓은 라디오가 완전히 잠을 깨웠다. 전 날의 흐릿한 날씨 대신 둘째 날은 참 맑았다. 오후에 근처를 산책하고 좋아하는 케이크집에 가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을 생각에 살짝 설레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인 캠핑 첫 날밤을 보내고 그렇게 둘째 날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