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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May 30. 2024

거저, 되는 건 하나도 없더라.

그렇다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도 아니다.

거저

 -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 없이.

 -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빈손으로.      


 공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듯이 세상에 공짜는 거의 없고 '거저' 얻어지것도 별로 없다. 성공이든 실패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결과만 손안에 툭하고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하다 못해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을 받아먹으려면, 감나무 아래에서 목이 빠지게 기다리기라도 해야 하지 않던가? 다만 감이 익어서 떨어질 때를 알고 기다리느냐,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오롯이 자기 힘과 노력만으로 인생을 우뚝 일으켜 세운 사람들에게 우리는 '자수성가했다.'는 말을 하곤 한다. 대체로 현재 대단한 위치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타고난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고 그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위치에 있게 된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노력하여 무언가를 얻거나 이루어낸 사람들에게 '거저'란 부사는 뜬구름 잡는 헛소리일 뿐이며  일어날 수 없는 거짓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은 목청을 높여 이렇게 소리칠 게 분명하다.


 거저, 되는  하나도 없더라.

 



 나 역시 그러했다. 미친 듯이 노력해야 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매일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었으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 먹고사는 것 이외의 욕구를 충족하거나 위기에 대처할  있었다. 이것들 중 어느 한 가지 '거저'  얻거나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얼마 전 '가여운 것들'이란 영화를 봤다. 태어날 때부터 상류층에 속해 있으면서 안락한 삶만을 누리던 여자 주인공이 하층민의 처참하고 비극적인 목격하고 나서는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순진하게만 살아왔던 그녀는 울부짖으며 이렇게 절규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것들을 다 누린단 말이야.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순간 나는 부러움과 절망감동시에 한 칼이 되어  날카롭게 명치끝을 찌르는 걸 느꼈. '그래, 세상의 누군가는 저 여자처럼 애쓰지 않아도 '거저' 많은 걸 누리고 살기도 하겠지.' 


 결국 어떻게 해도 나 '가여운 것들'에 속한다는 사실을 .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처지일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많은 걸 갖추고 있던 사람일지라도 인생의 모든 걸 '거저'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조금 더 혹은 조금 덜의 차이만 있을 뿐 신은 대가를 원한다. 철저히!  '거저' 얻은 것 같은 이 몸뚱이도 누군가에겐 '거저'가 아니며 '거저' 얻은 것 같은 재능도 누군가에겐 '거저'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타인의 '거저'유독 시기심이 나서 미칠 것 같을 때가 있다. '가여운 것들'의 여주인공이 죽어가는 아이를 돕기 위해  밑으로 달려가려 하자 친구는 그녀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지금 당장 저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와주고 싶어도 당신이 저기로 내려가는 순간 그들은 당신의 모든 것을 빼앗을 거고 어쩌면 당신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지도 몰라."


 그녀 역시 다른 측면으론 한없이 가여운 존재일 뿐이었지만 돈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그렇지 않았다. 욕망의 극단에 선 자들은 아무리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해도 결코 쉽지가 않은 것이다. 특히 욕망의 열외자들은 욕망의 수혜자들을 고운 눈으로 보기가 힘들다. 인간의 질투와 시기심은 어쩌면 타인의 '거저'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타인이 '거저' 얻은 것을 자신은 도저히 가지지 못할 때 비관적 운명론에 빠져 절망하게 되기도 한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노예인 자가 주인을 부러워하면서도 그가 누리는 것들은 함부로 넘볼 수도 꿈꿀 수도 없다고 자포자기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타인이 가지거나 이룬 것들이 '거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저절로 마음이 순해진다.  때로는 그가 기울 노력절로 존경심이 솟아나기도 한다. 그러니 타인의 '거저'에 대한 양가감정은 우리 내면을 끊임없이 괴롭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연예인이 팔십억이 넘는 아파트를 현금으로 샀고 대출 없이 수백 억의 부동산을 소유하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맨 처음 올라오는 감정은 저 사람은 돈을 참 '거저'    아닌가 하는 시기심이었다. 동시에 불쾌하고 뜨거운 화가 가슴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영화에서 말한 밑바닥 사람들처럼 가진 자를 헐뜯고 괴롭히고 싶다는 날 선 감정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이성의 체에 날것의 감정을 걸러내고 나자, 그는 이미 그럴 만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고 그렇게 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해온 사람이라는  순순히 받아들일 었다. 그제야 붉으락푸르락했던 내 심장도 다시금 제 색과 온도를 찾아갔다.


 세상에 '거저'는 거의 없지만 또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내가 노력해도 얻지 못하는 걸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쉽게 혹은 '거저' 얻기도 한다. 그러니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혹독하게 나를 세뇌하면서까지 세상은 공평하다고 앵무새처럼 떠들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타인의 '거저'절망하면서 나는 평생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며 한탄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 세상엔 '거저'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거저, 되는 건 하나도 없더라.

 그렇다고 뿌린 대로 거두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신은 아주 불공평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또 그렇게 '가여운 기대'를 걸어본다.


영화 '가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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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

#자수성가

#뿌린 대로 거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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