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이다. 급하게 멕시코 시티로 출장을 가게 됐다. 사실 내가 멕시코와 뭔가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가끔은 인생이 알다가도 모를 요지경 속으로 풍덩 빠질 때도 생긴다. 당시 나는 한국 식품의 미국 수출에 관한 시장 보고서 작성을 의뢰받았었는데 이 업체가 미국 시장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 시장에서의 한국 식품 수출 현황도 조사해야 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의뢰를 한 한국 업체 담당자들은 미국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멕시코 프로젝트를 해야 하나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이럴 때 흔히 KOTRA를 떠올리지만 KOTRA의 관문이 쉽사리 누구에게나 열리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얼떨결에 멕시코 프로젝트가 나에게 맡겨진 건 순전히 히스패닉이 캘리포니아에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지 않겠냐?라는 순진한 발상에서 시작됐다.
나 역시 멕시코에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막무가내 정신으로 멕시코 시티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행해줄 적당한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Bingo!!" 마침내 적당한 업체를 찾아 대표자와 수차례의 카톡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일을 하다 보니 의외로 멕시코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이질감이 상당하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치 한국인과 미주 교포들과의 오묘한(?) 다름이라고 할까? 캘리포니아에서 히스패닉 커뮤니티가 가장 큰 인종집단이고 이곳 LA에서 한인들의 가까운 이웃이 히스패닉이라고 생각해서 그래도 멕시코를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완전히 오산이었다.
전화와 이메일, 카톡으로 진행한 업무 과정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 가서 부딪히자' 실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멕시코 시티행 항공권을 끊었다. 출장 준비를 마친 후, 늦은 밤에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멕시코 시티행 항공기에 탑승하자 출국 과정이 별 다를 게 없었다. '흠~ 국내선과 비슷하네'
LA보다 2시간이 빠르니까 도착하면 멕시코 시티는 새벽이다. 그간 일을 맞춰온 파트너 회사에서 직원이 나온다고 했다. 공항 픽업을 위해 누군가 잠을 못 자고 먼동이 트는 새벽의 멕시코 고속도로에서 열심히 액셀을 밟을 것이다. 새벽에 도착하는 시간대의 항공권을 구입한 얼굴 모르는 출장자를 향해 쉼 없이 궁시렁거리면서 말이다. 아마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나 역시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었다. 빠듯한 일정을 맞추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도착한 멕시코 시티에서 사흘 밤낮없이 몰아치며 일을 했다. 함께 온 일행들은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나야 했다. 난 고민에 빠졌다. 아니, 이곳이 언제든 올 수 있는 곳도 아닌데... 일만 실컷 하다가 돌아가야 하나? 그럴 순 없지? 이렇게 해서 나의 멕시코 시티에서의 짧았던 1박 2일 여행이 가능해졌다. 아마 출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출장이 끝난 후, 하루 이틀 정도 뒤로 휴가를 붙여서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는 그 기쁨을...
이 막간의 여행이 얼마나 사람을 릴랙스 시키고 여유롭게 만드는지 말이다. 이렇게 해서 다녀온 곳이 바로 그 유명한 Teotihuacán(테오티우아칸)이다. 흔히 중남미 아즈텍 문명의 완성이라고도 하지만 아직까지 이 멕시코 피라미드에 관한 기원은 학계에서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고 한다.
달의 피라미드에 올라 죽음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걸었을 그 길의 의미를 생각하며 먹고 사는 서글픔을 다시 한번 고민해봤다. Photo by malee
멕시코 풍경화가 호세 마리아 밸라스코의 1878년작 테오티우아칸 '태양의 피라미드' . 19세기 말 당시, 피라미드와 주변 풍경을 살펴볼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두산백과의 설명을 첨언해본다.
멕시코시(市)에서 북동쪽으로 52km 떨어져 있다. 기원전 2세기경 건설되기 시작하여, 기원 후 4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전성기를 맞았다. 전성기 인구는 대략 12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테오티우아칸은 광범위한 교역을 통해 경제력을 축적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해 중미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것으로 보인다.
테오티우아칸은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넓은 길이 계획의 중심에 있다. ‘죽은 자의 길(사자의 거리)’이라고 불리는 이 대로 좌우로 많은 석조 구조물, 피라미드와 사원, 광장, 주택 등의 흔적이 있고 길의 끝에 사람의 심장과 피를 바쳤다는 '달의 피라미드(Pirámide del Luna)'가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는 '해의 피라미드(Pirámide del Sol)'로 중남미 전역에서 발견되는 피라미드와 같이 계단식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248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은 자의 길' 끝에 있는 '달의 피라미드'는 '해의 피라미드' 보다는 작지만 이곳에서 인신공양의 제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 무덤에서 다량의 유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인신 공희는 다른 지역에서는 사라지거나 동물의 피를 바치는 것으로 대체되었으나, 유독 이곳 중남미 지역에서는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세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장과 피를 신에게 바쳐야 한다고 믿었다. 16세기 에스파냐가 점령한 뒤에야 이 의식이 사라졌다.
이들은 전성기로 추정되는 7세기 무렵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만 난무할 뿐 해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이들이 어떤 언어를 썼는지조차 밝히지 못했다. 그러나 피라미드 축조술을 비롯한 문화적 전통만은 마야인에게 전해져 사라지지 않았다.
‘신들의 도시’를 의미하는 테오티우아칸이라는 도시 이름마저도 600년 뒤 폐허가 된 이곳을 찾아 정착한 아즈텍인들이 붙인 것이다. 아즈텍인들은 이 웅장한 유적을 보고 인간이 아닌 신이 지은 도시라고 생각하여 숭배했던 것이다. ‘죽은 자의 길’, ‘해의 피라미드’ 등 건물 명칭들도 마찬가지다.
테오티우아칸은 크게 '해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로 나눠져 있고 주위의 성곽과 주택 거주지로 추정할 집터 등이 산재해있었다. 입구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1987년 제정됐다는 설명문과 함께 죽음의 거리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나와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목이 맸다.
인신공양의 주인공은 '죽은 자의 길(사자의 길)'을 지나 제단으로 오르게 되는데 마지막 제물로 바쳐지기 전 귀족들만 먹을 수 있었던 옥수수를 잔뜩 먹였다고 한다. 마지막 가는 길, 굶주린 배를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최상의 식탁을 차려준 것 아닐까?
출장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려고 방문한 테오티우아칸에서 인간의 야만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경쟁에서 낙오하고 파워를 갖지 못한 루저들의 종말에 대해서 말이다.
한편 테오티우아칸에 대한 연구 보고는 달의 피라미드 근처에서 발견된 유해들을 조사한 결과 유추한 것이라고 한다. 이 조사에서 한결 같이 옥수수 성분이 발견됐고 그 당시 멕시코에서는 옥수수 재배가 힘들었기 때문에 일부 지배계층만이 먹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측한다고 했다. 즉 '사자의 거리에서 마지막으로 옥수수를 배불리 먹이고 제단에 올려져 인신 공양됐을 것' 이것이 학계의 추측이라고.
사자의 거리를 지나 제물로 바쳐지던 인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인간의 야만성에 몸서리가 쳐진다. 하지만 인간의 야만성이 고대 문명만의 모습이 아니라 더욱 몸서리 쳐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볼 때 전율이 날 만큼 생생하게 느꼈던 인간의 야만성을 이곳 테오티우칸에서 다시 보자 소름이 쫙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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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멕시코에서 돌아온 후, 제단에 바쳐지기 전 사자의 거리에서 옥수수를 받아먹고 환하게 웃었을 몇천 년 전의 인류를 떠올렸다. '먹고 사는 서글픔'... 그 풀리지 않는 고민에 휩싸여 페이스북에 인간의 야만성에 대해 짧은 글을 올렸다.
"인간의 의미를 우리는 오직 직립으로밖에 해석해야 할 것 같지 않나요? 형태만 달라졌다 뿐 현재까지 계속되는 약자에게 행해지는 모든 정신적, 물리적 차별과 공격이 바로 야만입니다.
나의 글을 페북 친구가 보고는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려주었다.
발터 벤야민의 묘비명: “문명의 기록은 야만의 기록 없이 결코 오지 않는다”
지금 서울은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거친 대립을 하며 서로 가슴속에 쌓인 울분과 화들을 토해내고 있다. 누가 약자이고 누가 강자인가?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피라미드처럼 층층이 약자와 강자가 겹겹이 쌓여가는 구조 속에서 나는 영원히 피해자인가? 혹시 나는 누군가를 짓밟고 서있진 않은가?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멸시와 조롱, 차별은 예전 내가 한국을 떠날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행태로 스스럼없이 자행되고 있는 듯하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도대체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듯 아무렇지 않게 약자에 대한 조롱과 차별을 자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언제쯤 야만의 기록을 끝나고 문명사회로 나아갈 것인지?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가 끝난 뒤 포털의 댓글들을 보니 '이게 정말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이 맞나?' 싶을 정도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목도하게 된다.
3년 전 테오티우아칸에서 가졌던 인간의 야만성에 대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 나를 성찰해본다. 난 누구를 밟고 서있진 않은지 말이다.
해의 피라미드(Pirámide del Sol)에는 맨 꼭대기까지 계단이 축조돼있다. 멕시코인들은 맨 위에 올라 기운을 받기 위해 해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Photo malee
죽음의 길 위에서는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멕시코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멕시코 상인이 구슬프게 오카리나를 부르며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Photo by ma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