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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ee Mar 25. 2020

미국 땅에서 엄마로 사는 것

싱글맘의 육아일기

주위에 머리를 싸매고 누운 엄마들이 꽤 많다. 물론 지난 4월 초부터 각 대학들로부터 날아온 합격 통지서를 받지 못한 1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다. 올해는 특히 경쟁률이 심했다는 보도가 아니더라도 높은 GPA와 SAT를 받고도 예년 같으면 거뜬하게 붙었을 학교들로부터 내 딸, 아들이 합격 통지서를 받지 못해 한숨만 내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학부모들을 보다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올 가을 학기면 하이스쿨에 진학하는 딸아이와 내가 겪을 똑같은 상황이 이제 몇 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 둘만 모이면 ‘어느 학원의 어떤 선생님이 잘 가르친다’ ‘대학 지원서에 특기란에 적으려면 몇 가지 특별 활동은 해야 한다’ 라거나 ‘누구네 집 딸아이는 어디 어디 대학에서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더라’고 말하며 아이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 눈치 보며 살펴보게 되는 것이 엄마들이다.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습관화돼있다고 하는데 이곳 미국에 살면서도 이 나쁜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엄친딸’ '엄친아'는 미국의 한인 부모에게도 익숙한 단어다. ‘엄마 친구 딸’의 줄임말인 ‘엄친딸’과 '엄마 친구 아들'의 줄임말인 '엄친아'.


엄마들의 교육열과 경쟁심리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줄임말이 학교 급훈에까지 등장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급훈으로 교장 선생님까지 승인했다는 이 학급의 급훈은 ‘엄친딸이 되자’라는 것. 이 학교의 다른 클래스에는 ‘지하철 2호선을 타자’란 급훈도 액자에 걸려 있다고 한다. 지하철 2호선 반경에는 사립대학들이 모여 있으므로 결국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입학하자는 목표가 이런 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여자로 사는 것’ 보다 더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그건 아마 ‘엄마로 사는 것’ 아닐까?  과연 ‘엄마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나는 내 딸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나?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그럴듯한 직업을 갖는 것보다 딸아이가 행복해하고 진정으로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여유롭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늘 내게 최면을 걸어왔다. 하지만 눈을 뜨고 세상을 둘러보면 주위의 환경에 다른 엄마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에 나 스스로 조바심이 나서 나를 제어하지 못해 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자녀의 대학 입학에 한인 학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그 어느 것도 학부모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대학에 입학하고 싶은 학생이 열정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대학에 입학한다 하더라도 적응을 못하고 드롭을 하거나 대학을 옮기기를 수차례 하다 결국 허송세월 보내기 쉽다.


아니면 아예 어렸을 때부터 ‘헬리콥터 맘’이 정해준 스케줄대로 움직이며 부모가 디자인해준 삶을 위해 준비하는 자녀만이 미국 대학이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작성할 수 있을 뿐이다. 헬리콥터 부모가 될 마음도 될 형편도 되지 못하는 나 같은 부모가 선택해야 할 길은 그렇다면 단 하나뿐이다. 자녀 스스로 자신의 삶에 꿈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부모에게 필요한 인문학적인 단어가 있다. 바로 ‘소통과 느림’이다. 경쟁 사회의 논리를 벗고 나만의 철학을 가꾸는 것은 ‘느림’이다. 그리고 나만의 철학을 이뤄내기 위해 세상 모든 것들과 교류하는 것은 ‘소통’이다.


빠른 속도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쟁사회 논리에서 부모 스스로 벗어나 부드럽고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인생의 소중함을 생활 속에서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 나 또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P.S.

이 글은 딸아이가 8학년 (미국 학년제로 주니어 하이스쿨, 즉 중학생)이었던 2008년 봄에 쓴 칼럼이다.)

그로부터 벌써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딸아이의 초등학생일 때 이야기를 주로 썼던 싱글맘의 육아일기를 청소년기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가 차츰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딸아이와 치열하게(?) 싸웠던 그때를 다시 되돌려 기억하는 일은 내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스스로에게 조금 더 시간을 허락한다면 미국에서 하이틴 딸을 키워낸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아직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조금 욱(?) 하고 열(?) 받는 그런 이야기로 가슴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싱글맘의 육아일기 - 하이틴 버저... Sweet Sixteen 편을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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