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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Oct 20. 2023

지겨운 커뮤니티 생활에 샐러리남의 등장이라..

나는 이탈리아의 알프스인 ‘돌로미티’에서 멋진 산행을 마치고, 새로운 커뮤니티가 있는 프랑스로 향했다. 두번째로 도착한 커뮤니티는…솔직히 말해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아! 그리운 옛날이여! 몇 주 전만 해도 친구들과 갈대밭을 질주하고, 뜨끈한 톱밥 더미에 파묻혀 별을 구경하고, 연못에서 나체 수영을 했건만. 온갖 새롭고 행복한 일들이 가득했는데, 그에 비해 이곳의 생활은 간이 안 된 퍽퍽한 닭가슴살 같았다.

너는 별을 보자며 내 팔을 끌었어~


여기는 기독교 기반 공동체라 하루 세 번 기도와 찬양을 하고, 아침에 성경모임을 하는 것 빼고는 딱히 정해진 활동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확신의 무교였던 내가 여기에 온 것부터가 이상하긴 했다. 그 결정은 사실 생각 없음에 가까웠다. 그냥 친구들이 생각보다 여기가 좋다고 해서 가볼까 고민하던 차에, 준도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하니 딱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님도 보고 뽕도 따야지. 


그렇게 한없이 가볍게 내린 결정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버렸다. 그래도 기도와 찬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울림 가득한 예배당에서 함께 찬양할 때면 임시 신앙심이 솟아올랐고, 기도도 나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 좋았다. 그치만 성경 공부 모임에서는 딱히 아는 것도, 하고픈 말도 없었기에, 무한도전의 박명수처럼 ‘그랬구나….(점심시간 언제지)’ 라고 대꾸할 뿐이었다.


게다가 학교에선 밥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라도 있지. 여기는 식사도 수행자의 식단처럼 극도로 단순한, 어쩌면 영양 부족일지도 모르는 밥을 줬다. 보통 빵 한 쪽과 버터를 늘 곁들이고, 토마토 스프, 토마토 파스타, 토마토 양념 쿠스쿠스 같은 메인 요리가 있었다. 토마토가 굉장히 미웠다... 이런 밥을 매일 먹고도 상냥한 인성을 유지하다니, 이곳에 모인 수많은 종교인이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되니 곧 나를 찾아올 준을 기다리는 일이, 불만스러울 정도로 중요한 일이 되어있었다. 아, 안 되는데. 나는 내 여행을 즐기면서 남자들과 쿨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빨리 보고 싶어서 조급해지는 내가 싫었다. 말로는 싫다면서도 나는 성실하게 준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곤 했고, 공동체에서 만난 한국 언니는 그걸 퍽 진중하게 들어주었다. 


“내 생각에, 남자가 너를 보러 국경까지 건너서 온다는 건 너에게 진심이라는 거야.”


그건 결혼 적령기 여성의 확신이었을까? 언니는 그 사람은 나이가 몇 살이고 직업은 뭐냐고, 내가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들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건 전혀 몰랐다. 나이와 직업은 고사하고 성도 뭔지 몰랐다. 우리가 아는 거라곤 서로에게 호감이 있단 사실과 각자의 트라우마 정도? 잡담은 쾌속으로 생략하고 깊은 대화만 나눴던 탓이다. 언니는 준이 괜찮은 결혼 상대인지 점지해 보고자 했다. 난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언니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게 좋아서 궁금해하도록 놔뒀다.


함께 어울리던 동갑내기 네덜란드 친구 엘리도, “우리가 바람잡이 해줄게! 잘될 거야!”하며 나를 북돋웠다. 둘은 내 옆에서 바람잡이라며 팔을 벌처럼 붕붕 휘저어서, 기어코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귀여운 사람들. 사실은 나 또한 스쳐 가는 만남 이상을 믿어보고 싶었다.


그가 온다는 화요일에는 마른하늘에 번개가 치는 날이었다. 돌아다니는 걸 조심하라고 아침에 경고까지 해서, 이렇게 맑은데 도대체 어떻게 번개가 친다는 거지? 싶었는데, 귀신같이 오후가 되니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문 앞에 걸어둔 빨래가 흠뻑 젖고, 복도에 물이 가득 들이쳐서 사람들이 분주히 빗자루질로 빗물을 쓸어냈다. 무료한 하루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단비.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언니와 나는 우리가 만난 중 가장 신나게 웃었다. 한편으론 비를 조심하라는 내 말에도 해맑게 히치하이킹을 해서 오겠다는 준이 걱정되기도 했다. 다행히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나러 갔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안내소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준!”


돌아보는 얼굴이 내가 기억하는 반가운 그 얼굴이었다. 비에 젖어 축축한 준의 어깨를 와락 껴안았다. 다시 만난 그는 커다란 샐러리 다발을 두개나 들고 있었다. 뭐냐고 물으니 요즘 샐러리 주스를 만들어 먹는데, 미처 갈지 못해서 가져왔다고 했다.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사람이었네…’ 나는 이상한 사람을 좋아해서 괜찮았다. 우선은 잘 곳을 마련해야 했는데, 여기는 남녀 혼숙이 불가능해서 같은 방에서 잘 수 없었다. 우리는 잠에 들기 전까지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랫동안 헤맸다. 1. 샐러리를 주스로 갈기, 2. 같이 잘 곳을 찾기.


스포일러


1. 그가 공동체를 떠날 때까지 갈리지 못한 샐러리는 추욱 시들었다.

2. 우리는 좁아터진 텐트에서 끝내주는 섹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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