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기억이 있어 참 다행이다.
시골.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을 일컫는 말이지만 나에게 시골이란 위안과 위로 같은 곳이다.
나에게 늘 따스함을 전해 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존재하셨던 곳이고 아날로그 속도 같은 시골 속 삶의 시간은 뭔지 모르게 안전한 느낌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새벽이면 부뚜막에 불을 지피기 위해 무거운 이불을 부스럭거리시며 일찍 몸을 움직거리셨던 할머니의 소리.
닭이 우는 소리에 눈을 떠 마당에 나가면 할아버지는 저수지에서 걷어오신 그물의 물고기를 손질하고 계셨고 작은 외양간의 황소 한 마리는 우물거리며 여물을 먹고 있던 오랜 기억 속의 장면 장면들.
불을 때 밥을 지어먹고 그물을 쳐 고기를 잡던, 어쩌면 지금은 현실의 일상 이라기보다는 티브이 속 프로그램에나 나와야 더 자연스러울법한 광경들이
내 기억 속에 안착되어 있는 것이 나에겐 감성적으로 큰 혜택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생한 기억과 지금 내가 살아온 세상, 그리고 살아갈 세상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닌 듯 한 느낌이 들지만 그곳에 있으면 미래의 내가 현재로 온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원래 흘러야 하는 시간의 빠르기로 내가 빨려 들어온 기분.
그래서 시골에 오면 나도 덩달아 느려진다.
소음도 너무 눈부신 도시의 불빛도 없는 곳.
사직에 성공한 나는 이곳에 발걸음 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추운 겨울이었지만 햇살이 좋은 날은 마냥 햇살을 맞으며 앉아 있기도 했다.
행복을 느끼는 회로가 고장 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거 아닌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해보고자 했다.
내가 이래도 되는가에 대한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그간 고생한 나에게 주는 긴 휴가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너무 극단적으로 바뀐 삶의 속도에 익숙해져 보기 위해, 그리고 전쟁 같던 일상에서 한걸음 빠져나왔음을 스스로 에게 인지 시키는 기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그곳을 오가며 지내던 어느 날부터 할머니 집 작은방의 창문 밖으로 내다 보이는 빨강 지붕과 빨강 벽돌로 만들어진 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동네가 예전부터 집안 어르신 분들이 모여 주거하신 곳이었기에 집안의 먼 친척분의 집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현재 누가 사는지도 몰랐고 올 때마다 인기척을 느껴본 적도 없어 그냥 비어있는 집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상하리 만큼 그 빨강 집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니 궁금해지기 시작한 표현이 더 맞겠다.
오래된 집 같아 보이긴 했지만 지붕은 인조 기와로 공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기도 하여 오랜 몸체의 벽돌과 이질감이 나보이 기도 했던 빨강 시골집.
짱짱한 벽돌의 느낌과 빈티지함과 낡은 분위기의 묘한 매력이 내 호기심을 자극 하기 충분했다.
어쩌다 그 벽돌집의 주인분인 집안 어르신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고 당분간 기거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셨다.
빈집으로 방치된지도 오래됐고 천정이 비바람에 주저앉아 지붕 공사와 단열을 위해 군데군데 손본 곳도 있다는 그 집이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꾸 나에게 살아보라고 손 내미는 것 같아 그 집을 매만져 주고 싶은 마음이 바닥부터 올라오기 시작했고 빨강 집 뒤뜰의 오래된 창고에 이미 내 마음이 뺏긴 상태였다.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기고 의지가 피어나 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그 감정은 여느 때 보다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