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한달살이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출장.
여행과 출장이 갖는 공통점은 긴장감.
다른 점은 출국 당일 마음의 무게.
내 직업은 출장이 잦은 직업이었다.
어떤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송한 걸 본 적이 있는데 참 고마운 방송이었다.
그냥 가까운 엄마 에게만이라도 내가 저런 일을 하느라 야근과 출장이 잦아 힘들다는 걸 간혹 설명을 해야 할 때 업무의 전반적인 모든 걸 담고 있던 그 프로그램을 봐달라고 권유할 정도였으니까.
최근까지 몸담았던 직업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의류 해외 영업이고 좀 더 구체적인 업무를 설명하자면
A라는 국가에서 오더를 받아 B라는 국가에서 제조를 하고 여러 나라로 보내는 OEM의 전 과정을 핸들링하는 업무였다.
그래서 오더를 발생시키는 국가에도, 그리고 오더를 제조를 하는 국가에도 가야 하는 그야말로 출장이 빈번한 일이었다.
모든 업무의 상황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부유한 나라와 그와 반대인 빈곤국을 넘나드는 일이 자주 있었고 다른 직군의 출장도 마찬가지 일수도 있겠으나 내 출장은 갈 때마다 전쟁통 같았다.
물론 곱게 차려 입고 견학이나 가는 출장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출장을 꼽으라 하면. 수없이 갔던 베트남. 그중 남쪽 호찌민 시내에서도 차로 약 40분 더 가면
우리나라 말 발음으로 빈증이라는 곳. 그곳으로 갔던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 같은 45일 살기가 되었던 출장.
4박 5일짜리 출장 계획이었지만 예정에도 없게 비자를 연장까지 하며 45일을 있어야 했다.
바이어와 현장에서 만났을 때 품질이나 여러 상태가 엉망이라 둘러대거나 변명을 할 수 없어 도저히 그 현장을 두고 현장을 떠날 수 없었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하진 않았지만 면역에 문제가 생겨 치료를 요하는 질병이 발생해 출장을 끝낼 수 있었다. 몇 벌 가져가지도 않던 옷들이 하도 빨래를 많이 해서 올 때는 거의 다 버리고 귀국을 할 정도였고 공장에서
소매 기장이 짝짝이라 불량으로 버려진 옷들을 대충 주워 입고 다니기도 했으니.
지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생산해 내는 재화들이 우리에게 익숙 한만큼 그 물건들이 만들어 지기까지 나 같은
전쟁을 치러 내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출장이 잦다 보니 출장기간이 장기전으로 예상이 될 경우(현장에 가면 출장 스케줄은 처음 예상과 달리 연장되는 일이 빈번했다) 생존본능처럼 숙소 근처 재래시장이나 혼자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을 꼭 지정(?) 했다.
대부분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에 생산공장이 있기 때문에 기대만큼 멋지진 않더라도 그 나름의 평온함이나 소박함, 수수함이 있는 공간에서 노트북 하나 들고 조용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그리고 현장과 숙소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섬에 갇힌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극도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최대한 불쑥불쑥 생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이게 그나마 스스로 에게 주는 특별 대우(?) 같은 거였다.
의류가 생산되는 곳들은 과거 속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착각이 들만한 모습을 가진 지역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곳에 처음 출장을 가는 부하직원과 동행을 하면 출장 계획이 잡히면서부터 잔뜩 겁을 먹는다.
공항까지는 무사히 왔어도 그곳으로부터 산과 들을 지나 구불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3-4시간 달려야 현장에 닿을 수 있는 게 대부분의 현실이었으니.
비행기가 밤 도착 이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식은땀 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현장의 지역까지 가는 차편은 대부분 아는 업체에서 보내주는 차와 기사가 나와 문제는 없지만 밤 시간에 덜컹
거리는 차속에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3-4 시간 달리다 보면 혹시 기사가 졸지는 않을까 차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현장에 가면 이른 아침부터 현장이 마무리될 때까지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저녁 시간은 업무 정리와 간간히
있는 크고 작은 회식들 미팅들.
그저 업무의 연장선일 뿐이지만 출장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조급하고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한 일이 많다.
그 전쟁통의 싸움을 끝내고 다시 한국에 오면 부재인 시간 중 쌓인 또 다른 한국에서의 업무.
그리고 그새를 비집고 어느새 또 잡혀있는 다음 출장..
내 생활의 정리가 필요한듯한 느낌이 든다.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은 기분으로 사는 것 같아 충족스럽지 못한
날들의 연속이었고 잘 가고 있는지, 정상적인 궤도의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계속 궁금증만 쌓이는 기분이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의 정리.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