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모티브들.
내비게이션을 끄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시간을 애써 갖곤 한다.
내비게이션이라는 기대고 의지하기 좋은 존재가 꽤 많은걸 놓치게 할 때도 있어서다.
길을 헤매는 도중에 우연히 눈에 들어오거나 마음을 훔쳐갈 만한 공간이나 사물들을 발견하는
상황은 참 매력적인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뜻밖의 어떤 순간들.
결국엔 이리저리 마음과 눈길이 이끄는 곳의 끝. 귀소본능을 발휘해야 할 땐 또 어쩔 수 없이
내비게이션의 검색창에 손을 대고 있내 모습에 가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지만.
흐드러지다. 란 말이 어울리던 장미가 가득했던 무채색의 집.
어느 날 지나치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차에서 내려 사진에 담은 집.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으면 강렬한 붉은 장미와 무채색 집의 조화를 보지 못했겠지.
애써 예뻐 보이려 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더 예뻤던 기억.
이 집의 주인은 핑크색을 좋아해서 이 컨테이너를 핑크를 칠했을까
아니면 어쩌다 집에 남은 페인트 색이 핑크여서 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원래 자줏빛깔의 페인트가 시간이 흘러 빛이 바래 핑크가 되었을까.
이유야 어찌 됐건 삭막한 느낌을 가리고 싶었던 의지가 또렷이 전달된 핑크 컨테이너.
이 집 장미는 코랄 핑크색. 창고 건물의 벽은 옅은 노란색 철문은 짙은 초록색 환기통은 파란색... 뒷집은 온통 핫쵸코 컬러.. 그 속의 철문은 그레이...
나도 모르게 이곳을 서성이다 세어본 컬러들.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았건 꽤 그럴싸한 색의 조합들.
추수 때가 되면 바빠지는 정미소.
오래된 간판과 파란색 외벽이 하늘과 하모니를 이루는 순간.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오래도록 하모니를
이뤄 줬으면 좋겠다.
이런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하루 중에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었거나 잊어버리고 살았었는데.
하늘이 이렇게 예쁜 걸 알게 되었다.
뒷마당 창고의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은
정지된 티브이 화면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이보다 더 선명한 HD 고화질이 또 있을까.
마음이 지친 상태일 땐 알록달록한 색채보단
무채색의 힘주지 않은 풍경들이 더 눈에 들어오곤 한다.
무뚝뚝해 보이기까지 한 이 창고는 그동안 어떤 시간을 살아왔을까.
기계의 수고로움을 빌린 논의 모습.
근데 기계는 어떻게 이걸 심는 건지. 아직도 궁금하다.
논 위에 커다란 마시멜로우들. 벼를 수확하고 남은 짚들을 저 안에 넣고 발효를 시켜 다시 거름으로 쓰나.?
어디 까지나 나의 상상. 가까이서 보면 살짝 거대한 크기.
시간의 흐름이 잔뜩 묻은 창고의 문짝
보물들.
이제 회복의 집의 빗장을 열어 볼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