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뭐 좀 배워볼까? 볼링? 목공예?"
"갑자기 왜?"
"그냥. 좀 공허한 것도 같아서."
"인마. 그럼 사람을 만나서 어울려야지."
"싫어!!"
사람.
공허하다는 내 푸념에 절친 란이가 꺼낸 처방은 사람이었다. 짧게지만 공황장애를 앓은 적이 있고, 사회생활 늦둥이로 매일 같이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내게, 사람을 만나 어울리라니.... 단박에 싫다고 잘라 말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울렁거렸다. 맹독이 해독제로 쓰이기도 하고, 약도 쓰는 양에 따라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사람이 내고 간 생채기를 사람으로 치료하는 게 맞는 것도 같았다. 결국 나는 사람 속에 나를 내던지고 단련해 보기로 했다. 온전히 모르는 사이지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공통의 주제가 있는 집단. 동호회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재테크, 글쓰기, 영어, 등산, 마라톤, 수영, 볼링, 배드민턴과 같은 수많은 잡기들이 동호회라는 단어의 뒤를 따라 머리를 스쳐갔다. 글쓰기나 영어회화처럼 지적 영역과 관계있는 것은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것 같았고 재테크는 생각만으로 박탈감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머리 대신 몸을 쓰고 싶었고, 부담이나 비교가 되는 건 일절 하기가 싫었다. 그런 맥락에서 배드민턴, 마라톤, 수영, 볼링도 적합하지 않았다. 남은 건 단 하나, 등산. 복직 후에 틈틈이 하는 운동이 등산이었기에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모든 일에 이유가 필요한 나 같은 인간이 온갖 소문이 무성한 등산 동호회에 발을 내딛기까지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합리화와 탐색의 과정을 거쳐, 지역 등산동호회 중 회원이 가장 많고 활동이 왕성해 보이는 곳을 골라 가입 신청을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조심스레 란이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떠꺼머리총각이 뒤늦은 장가를 들게 되었다고 고백이나 하듯, 상당히 멋쩍은 말투로...
"나 등산 동호회 들었다."
"잘 생각했다. 내가 예전부터 등산 동호회 알아보라 안 하대. 사람들 따라 안 가본 산에도 가 보고, 운동도 하고... 네가 산 좋아하니까 재밌을 거야."
고심해서 써낸 일기장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것 같은 기분. 란이의 응원에 힘입어 동호회 밴드에 올라온 산행 일정 몇 군데에 참여 신청을 했다. 아이들이 아빠 만나러 가기로 한 가까운 일요일 하루, 병원 진료를 위해 연차를 내놓은 조금 먼 어느 화요일 하루......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나를 내 던져보기로 했다.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