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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시언 Dec 10. 2020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10년간의 홈 오피스 구축기

아직도 날짜까지 생생히 기억나는 2010년 12월 9일. 친구 1명과 함께 월세방을 얻어 창업한답시고 졸업하자마자 독립을 하게 되었다. 이 사진은 아이폰3gs로 찍은 사진인데 당시에 나는 처음 스마트폰으로 아이폰 3gs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맥북프로 1대가 내가 가진 작업 기계의 전부였고, 옆에 있는 윈도우 PC와 모니터는 친구의 것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모바일 앱 개발(당시엔 굉장히 생소했던)로 창업하려고 했었으나 곧 계획이 바뀌어서 지역형 소셜커머스 스타일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한 쇼핑몰을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약 두 달간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말아먹었다. 이때의 내 전재산은 200만원 정도. 원래 300만원 정도였는데 쇼핑몰 창업한답시고 인터넷몰 만들고 서버 구축하고 이리저리 돈 다 빠져나가서 100만원을 고스란히 손해봤다. 사실 이 300만원도 누가 준게 아니라 대학생 졸업반 때 각종 공모전이랑 스타트업 대회같은데 나가서 수상하면서 상금으로 모은 돈 +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이었다. 


아무튼 처음 월세방을 얻어서 위처럼 구축한게 내 홈 오피스의 첫 시작이었고 당시엔 저게 전부였다. 책상 살 돈도 아까워서 사진에 보는것처럼 이사올 때 쓴 박스를 깔고 땅바닥에 앉아서 PC를 했었다. 이 집은 무척, 매우, 겁나게 추웠고, 2010년의 겨울은 지옥의 겨울을 맛봐야했다. 이사온 첫 날, 보일러가 고장난줄도 모르고 켜두고 자다가 새벽에 그대로 동태가 될 뻔 하기도 했다. 입김이 나오는 방, 집에서 양말 두 겹을 신어야하고, 손이 시려워서 장갑을 끼고 키보드를 두드려야하는 상황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이때부터 추위가 몸서리나게 싫어져서 지금도 겨울 스포츠는 즐기지 않는다. 냉장고, 세탁기는 아예 없었고 가지고온 노트북과 이불 한 채가 가지고 있는 전부였다. 


당시 쇼핑몰 사업에선 클라이언트인 식당 또는 지역의 자영업자분들이 필수적으로 필요했었는데 그 추운 겨울날 내복까지 껴입고 하루에 수 시간씩 가게란 가게는 모두 돌아다니면서 영업을 했으나 가게로부터 간택받지 못했다. 나는 사업 아이템만 매력적이라면, 얼마든지 가게 사장님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지만, 2010년 당시의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들은 소셜미디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간격은 굉장히 컸다. 이건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사업이었으나 당시에 나는 그걸 몰랐다.


여러분들이 손님으로 식당 또는 가게에 찾아갈 때 VS 뭔가 영업으로 찾아갈 때는 사장님이나 직원분의 눈빛과 표정부터 천지차이다. 일부 가게에서는 부드럽게 거절하기도 하였지만 대다수의 가게에선 매몰차게 쫓겨났고 어떤 가게에서는 말도 못 꺼내고 쫓겨나야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사회도 잘 몰랐으며, 아는것도 없었고 그저 열정만 가득할 뿐이었다. 당시 사장님들 눈에 나는 마치 스팸문자 같은 녀석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영업 활동으로 실제 민간시장의 차가움을 피부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가게들이 한가지 몰랐던게 있는데, 그 초라하게 영업하던 친구가 몇 년 뒤에 지역을 주제로 포스팅하는 파워블로그가 되고 지역 최초의 SNS 소셜미디어 매체를 운영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나도 이렇게 될줄 몰랐다.


각자 집에서 공수해온 반찬으로 대충 밥을 때우고 일만 열심히 했다. 냉장고가 없어서 주방에 대충 반찬 통을 던져놓고 있었는데 겨울에는 문제없었으나 봄이 되자 반찬이 곰팡이가 펴서 못먹게 되었다. 나는 곰팡이 핀 반찬 통을 열어 보면서 울컥했고, 같이 사는 친구 모르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중엔 열받아서 중고 냉장고를 하나 샀는데, 너무 싼걸로 사서 그런지 모터쪽 플라스틱이 떨어져서 24시간 '드드드드드' 소리를 내는 냉장고를 오래도록 써야했다. 



2011년 봄쯤에는 책상을 하나 샀다. 원래 2만원 주고 고물상 같은데서 파는 낡은 책상을 하나 쓰고 있었는데 너무 불편해서 몇 만원 정도 주고 인터넷으로 책상을 샀는데 이름이 다윈책상이었다. 그리고 이 책상은 지금도 쓰고 있다. 당시에 아이맥 21.5인치를 어떻게 하다가 사게 되어서 이걸로 열심히 일했다. 우리는 영업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들을 여기저기에 알리고 다녔었는데 아마도 이때쯤, 같이 살던 친구에게 좋은 조건으로 취직 요청이 와서 친구는 집을 나가 직장인이 되었고, 이제 이 집엔 나 혼자 살게 되었다. 이때도 마땅한 수입은 사실 없었다. 나는 망한 사업을 접고 이때부터 블로그 등으로 돈을 벌 목적으로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학생 때 프로그래밍 공부했던걸 까먹지 않을 요량으로, 단순 아카이브 용도로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었는데 위 사진 워터마크에 보이는 것처럼 당시 블로그 이름이 '티몰스의 랩하는 프로그래머'였다. ㅋㅋㅋㅋ


아무튼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나는 블로그를 통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당시에 마땅한 수입이 없었고, 그때 당시엔 블로그 기자단 같은것도 거의 없던 시절이다보니까 개인 블로그에 달린 애드센스로 연명하고 돈을 최대한 아껴 살아야했다. 겨울에도 보일러 안틀었다. 물도 아껴쓰고. 외출할 땐 집에 있는 모든 콘센트는 다 뺐다. 당시엔 그렇게 살았다. 


이때 진짜 얼마나 블로그를 열심히 했냐면, 한달에 평균 40개 이상의 글을 블로그에 썼었다. 어떤 달에는 84개를 쓴적도 있었다. 하루에 2개꼴로 블로그 글을 썼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블로그에는 한 달 기준으로 댓글이 500개~1000개 정도 달렸었다. 이건 내가 답방을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하루에 글 2개 이상을 쓰고 그 글에 달린 댓글 모두에게 다시 가서 답방을 남기는 식으로 블로그를 키워보려고 했었다. 


당시에 블로그 하루 방문자는 (2011년 기준) 일일 1,000명 정도였던 것 같다. 지금은 8,000명 정도 들어와도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이때는 돈 벌 목적으로 블로그를 했었지만, 지금은 내가 쓰고싶은 글을 쓴다. 아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이때는 진짜 열정적으로 살았다. 하루에 잠을 5시간 이상 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먹는건 부실한데 움직이는건 많아서 이때 건강이 좀 나빠진것 같다. 이때 살도 많이 빠졌다. 2011년부터 몇 년간은 1년 기준으로 책을 거의 100권 가까이 읽었었는데 돈주고 산 책도 있었지만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도서관까지는 걸어 다녔고. 시간은 많았고 돈은 없던 시절이다. 무엇보다 괴로웠던건 내가 뭘해야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고, 알려줄만한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 뭔가 간절하게 궁금한것이 있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진짜 엄청 괴로웠다. 아무튼 그렇게 살았다. 이때만해도 읽은 책을 스프레드시트에 기록, 필사까지 했고 블로그에 서평까지 남겼었다. 


당시엔 필사도 진짜 많이 해서 손 등에 볼펜 자욱이 굳은살로 생겼는데 그 굳은살은 아직도 딱딱하다. 이런식으로 살면서 책에서 얻은 지식과 인사이트를 총동원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곤했다. 당시에 훌륭하신분들의 도움으로 소소한 돈벌이도 하곤 했었는데, 수입이 극도로 낮은 이 상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다.


당시에 학생 때 부터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직장인이었고 나는 백수라서 밥같은걸 매번 얻어먹어야해서 참 미안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게 있는데 못 해 줄 때의 그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직장 다니고부터는 나도 많이 갚고 베풀려고 노력했는데 잘 됐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2012년에 블로그에 쓴 글이 좋은 평가를 받아서 운 좋게 1인분 청춘이라는 책을 출간,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모 공기관에 공채 시험에 응시했는데 이것도 운좋게 합격해서 조직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2년뒤엔 그만두었지만. 이 얘기를 시작하면 또 길어지니까 이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2014년에 조직을 그만두고 나와서 다시 백수가 됐다. 책상은 여전히 예전에 산 책상을 쓰고 있었는데 화면이 작아서 글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할 수 없이 2015년에 아이맥 5K 모델을 영입하게 된다. 이때 해당 모델 가격이 300만원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굉장히 비쌌는데 당시에 5K 모니터를 사면 맥을 준다는 전설같은 제품이었다. 아무튼 이 녀석으로 다음 책도 쓰고, 직장 다니면서 바빠서 못했던 블로그도 다시 살리려고 열심히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프리랜서처럼 일을 했는데 외주도 받아서 원고 쓰기도 하고 기자단 활동도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글을 쓰고 있었고 SNS에서도 나름 이름이 알려지다보니까 또 운좋게 여기저기에서 괜찮은 조건으로 외부 작가 활동을 요청받아서 잡지에 글을 기고하거나 웹진에 글을 기고하는식으로 몇 가지 일도 겸했었다. 이때 주 수입원은 블로그가 아니라 기자단 활동이었다. 강의도 별로 없던 시절이라 1년에 강의 10번 할까말까였고 그마저도 거의 없었다. 


책쓰기에 미련을 못버리고 2014년에 <아름다운 사표>라는 에세이 출간했다. 그런데 이때부터는 책을 쓸 용기가 많이 없어지고 에너지가 사라져서 책을 못쓰게 되어버린다. 그 기간이 6년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돈벌이는 좀 괜찮아졌지만, 책쓰기는 아무래도 잘 안되었다. 점점 사업자처럼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책을 쓸 시간도 없었고 하루하루 밥벌이하기 바빴다. 


지금 위 사진처럼 보이는 데스크를 정말 오래도록 사용했다. 약 4년정도 위 데스크 셋업으로 사용했다. 키보드는 매직키보드가 마음에 안들어서 기계식으로 바꾸었고, 기계식 키보드와 유선 마우스로 수 년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해야했고, 그렇게 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어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2019년에 대출 받아서 작은 집 장만. 나는 오래도록 자신의 집을 가지는게 인생 최대의 버킷리스트였는데 작은 집이지만 나에겐 소중한 공간이 생겼다. 9년동안 월세 살면서 자기 집이 없는게 얼마나 속상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기뻤다. 춥고 지긋지긋했던, 하지만 추억과 뜨거운 젊음은 있었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 정착했던 순간이다.



이사오고나서 처음 오피스는 이렇게 꾸몄다. 남는 방 한 칸을 작업 공간으로 만들고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어보았다. 여기에서 약 6개월 정도 업무를 진행했다. 조명 색상은 보라색이 좋아서 보라색으로 해두었는데 이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별로라는 이야기가 많아서 나중에는 그냥 따뜻한 백색 빛으로 바꾸어 두었었다.



유튜브 촬영 장소는 거실에 마련했다.



여름이 다가오고 좀 더워지자 에어컨이 있는 방으로 옮겨야겠다 싶어서 안방을 싹 치우고 안방에다가 홈 오피스를 꾸렸다. 이때부턴 여기에서 유튜브도 촬영하고 작업도 여기서 하고... 모두 이 방에서 거의 모든게 해결되었다. 우리집에 놀러온 지인들은 안방을 왜 컴퓨터 방으로 쓰냐고 잔소리를 했지만, 사실 안방이든 작은방이든 일만 하면 되기 때문에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 방에서 타이밍 좋게 출판사들로부터 출간 요청을 받아서 2020년에 책 3권을 출간하여 6권을 출간한 작가가 되었다. 실제 책 집필은 2019년 가을~2020년 여름까지 진행되었는데 하필 코로나 등으로 인해 봄부터 일이 모두 올스톱되면서 책을 좀 더 빨리 출간할 수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ㅋㅋ 



2020년 12월. 안방에서 거실로 홈 오피스를 옮겼다. 옮긴 이유는 컴퓨터 셋업을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윈도우 PC가 필요해졌는데, 윈도우 PC는 영상 편집 강의를 나갔을 때 수강생분들이 주로 윈도우 사용자이기 때문에 강의용 + 실제 영상 편집용으로 필요했다. 맥도 오래써서 교체할 때가 되어서 이번에 새로나온 M1 맥북으로 바꿀려고 마음먹고 있다.


청축 기계식 키보드만 써오다가 이번에 다시 팬터그래프 키보드로 다시 바꾸었다. 오래도록 기계식 키보드, 그것도 청축을 쓰다보니 손가락이 많이 안좋아졌다. 손가락 마디나 그 꺾이는 부분 같은곳이 많이 아팠고, 밤마다 손가락 끝이나 마디가 쓰렸다. 오래도록 건강을 돌보지 못하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만 했더니 몸 여기저기가 안좋아졌나보다. 그래서 좀 더 부드러운 입력이 가능하고 손가락에 부담이 덜하다고 생각되는(실제 부담이 덜한진 모르겠지만) 팬터그래프 키보드로 바꾸었다. 기계식 키보드를 오래써서 습관이 되다보니 키 입력을 굉장히 강하게 하는 습관이 들어있는데 이걸 조금 바꾸어야하는 입장이다.



이제 넓은 책상이 필요해졌다. 윈도우 컴퓨터 본체를 장만하고 38인치 와이드 모니터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와이드 모니터는 아직 배송이 되지 않아서 일단 모니터 빼고 윈도우 본체랑 아이맥만 구성해두고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책상도 몇 개 더 필요해져서 좀 더 넓은 책상을 사서 바꾸었다. 윈도우 컴퓨터는 이왕이면 예쁜걸로 사고 싶어서 게임용은 아니지만 게임용도 가능하도록 조립 PC로 구매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공간의 모습은 이렇게 돼 있다. 책상은 길이 180짜리 다윈책상으로 최근에 다시 구매했다. 이제는 방이 아니라 거실이 작업실이 되었다. 방보다 거실은 그나마 공간이 좀 넓은 편이니까 긴 책상으로 여유있게 쓸 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진작 거실로 나올껄 그랬나? 


이걸로 눈물없인 볼 수 없는 홈 오피스 구축기 10년짜리 시간 여행의 글은 끝이다. 나중에 더 업그레이드 되거나 또 그런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여기에 정착해서 계속 업무를 할 것 같다. 이제 이 구성으로 다음 책 집필도 이어가야한다. 벌써 출간 계약을 해두었고 어느정도 구상도 해두었다. 열심히 글을 쓰면 된다. 


과거보다 많이 나아진 환경이고 이제 겨울에도 장갑을 끼고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양말을 두 겹 신거나 집에서 입김이 나오거나 하진 않는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서인지 자극에 둔감해지고 뭔가 둔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예를들어 예전에는 다윈 책상 하나만 사도 미칠듯이 기뻤는데, 지금은 다윈책상이랑 더불어 이케아 책상 2개를 더 사도 별로 감흥이 없다.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그동안 많은 것을 잃었지만 또 많은 것을 얻은 것 같다. 나는 뭔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뭔가는 포기해야한다는 진리를 믿는 입장이다. 예를들어 책이란걸 쓰려면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는 시간을 포기해야한다는 식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가진게 없었어서 포기할 수 있었나보다. 


뭔가 교훈적인 메시지를 주면 좋겠지만, 그런건 없고 그냥 이렇게 글로 정리를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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