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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쁠 희 Jun 27. 2023

나의 사랑하는 애기, 호두에게

글을 읽지 못하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야

생각해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는 편지를 썼지만, 너에게는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지금이라도 글을 읽지 못하는 너에게도 편지를 써보려고 해.

왜 이제 와서 이러냐고 하면 정말 할 말이 없어. 

내가 모자란 엄마였다는 말 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2012년 여름, 대학교 2학년이 된 나는 학교 근처로 집을 옮겼고,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지만 오랫동안 'Abyssinian'을 키지지에 검색하면서

너와의 만남을 기대해 왔었어.

마침내 내가 생각했던 예산(이렇게 밖에 표현 못해서 미안하지만, 그땐 그랬어 나도 어렸잖아)에

딱 맞는 아기 아비시니안을 분양하는 가정집을 만났지.


사실 그 집을 방문했던 날을 잊지 못해. 가운을 입은 게이 커플이 집에서 나왔고,

듬직한 엄마 아빠 고양이 사이로 공놀이를 하고 있던 예쁜 아가들이 그 사이에 보였거든.

그리고 그때 공놀이를 하다 말고 우연히 내 발을 붙잡은 너한테 첫눈에 반해버려서

너를 데려오겠다고 해버렸어. 


내가 얼마나 불량한 엄마였는지 몰라. 

그날 케리어도 하나 없이 달랑 너를 품에 앉고 집으로 왔으니.

네가 그렇게 활발한 아이라는 걸 몰랐어.

친구 고양이는 낯선 환경을 무서워해서 움직이지도 않았다길래

아, 그런가 보다 하고는 나도 빈손으로 그 집에 갔으니까.

내 손에서 벗어나려고 꿈틀거리는 너를 꽉 잡지도 못하고

어쩌질 못해 가지고 택시 안에서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해. 


집에 온 너는 오자마자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마시더니만, 

화장실 모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모래를 퍽퍽 차버리고,

'나는 대체 얘가 왜 이러나, 고양이들은 화장실 잘 간댔는데' 하면서

이곳저곳에 수소문하다가, 친구 고양이가 쓰는 모래를 빌려왔었어.

그때는 배달 서비스가 지금 같지 않을 때라서 그 모래를 사려고

그다음 날 엄청 먼 곳까지 여정을 떠나기도 했었다.


내가 불량 엄마이긴 했는데, 그래도 노력은 했었어.

변명처럼 들리려나?


참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할지도 몰라서 실수도 많이 했는데

병원도 몇 번 안가고, 건강하게만 자라줘서 나는 너무 고마워

내 사랑.


이제는 내가 너한테 사랑을 배워서 더 줄 수 있게 되었고,

우리 가족들도 너를 통해 사랑을 배웠는데,

이제야 우리 더 행복하고 안정적이게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근데 어떻게 네 몸에 종양이 있는 거니?

어떻게 나한테 말도 안 하고, 티도 안 내고 그렇게 아팠어?

너는 말했는데 내가 몰랐던 거겠지...?


난 정말 어떻게 하면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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