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좋아하지 않은 모습을 담기로 한다
최근에 <500일의 썸머> 영화를 다시 보다가
한 장면에 오랫동안 꽂혔다.
한창 사이가 좋을 때 주인공 톰은
여주인공 썸머의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그녀의 미소, 머리칼, 무릎, 하트 모양의 점, 입술
모든 면을 사랑한다.
그런데 둘의 사이가 소원 해졌을 때
톰은 삐뚤삐뚤한 치아도 싫고,
60년대 헤어스타일도 싫고, 울퉁불퉁한 무릎과
저 목에 있는 바퀴벌레 모양 점도 싫다고 말한다.
하트모양으로 보이던 점이
바퀴벌레처럼 보이려면 얼마나 마음이
지옥 같아야 하는 걸까.
근데 이게 꼭 타인을 바라볼 때뿐이려나
나는 외모적인 콤플렉스가 참 많다.
여름이면 더 진해지는 주근깨도,
작고 낮아 매번 안경이 흘러내리는 코도,
무표정일 때면 축 쳐지는 듯한 입꼬리도,
속쌍꺼풀 크기가 달라 짝짝이인 눈까지
그래서인지 흐리멍덩한
밀가루 덩어리 같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돌아보니
톰이 썸머에게 사랑이 식었을 때 하는 말이나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나
비슷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 사진을 찍을 때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좀 더 그대로 살려보기로 했다.
좋아하지 않는 무표정,
작고 낮은 코가 더 드러나는 사선 얼굴,
오히려 주근깨가 사랑스럽다며
더 살려도 되냐는 작가님의 뜻에 따랐다.
그렇게 나온 사진.
처음에 상담을 받을 때
내가 제일 먼저 언급했던 것은
'짙은'이라는 단어였다.
물에 타면 물,
술에 타면 술인 사람이 아니라
물에 타면 물을,
술에 타면 술에
내가 잘 섞여 새로운 빛을 내게 하는
짙은 '나'의 모습을 시각화시키고 싶은 마음.
그렇게 또 하나의 장면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