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쁠 희 Aug 22. 2024

사진

4: 좋아하지 않은 모습을 담기로 한다


최근에 <500일의 썸머> 영화를 다시 보다가

한 장면에 오랫동안 꽂혔다.

한창 사이가 좋을 때 주인공 톰은

여주인공 썸머의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그녀의 미소, 머리칼, 무릎, 하트 모양의 점, 입술

모든 면을 사랑한다.


그런데 둘의 사이가 소원 해졌을 때

톰은 삐뚤삐뚤한 치아도 싫고, 

60년대 헤어스타일도 싫고, 울퉁불퉁한 무릎과

저 목에 있는 바퀴벌레 모양 점도 싫다고 말한다.


하트모양으로 보이던 점이

바퀴벌레처럼 보이려면 얼마나 마음이

지옥 같아야 하는 걸까.


근데 이게 꼭 타인을 바라볼 때뿐이려나




나는 외모적인 콤플렉스가 참 많다.


여름이면 더 진해지는 주근깨도, 

작고 낮아 매번 안경이 흘러내리는 코도,

무표정일 때면 축 쳐지는 듯한 입꼬리도,

속쌍꺼풀 크기가 달라 짝짝이인 눈까지


그래서인지 흐리멍덩한

밀가루 덩어리 같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돌아보니

톰이 썸머에게 사랑이 식었을 때 하는 말이나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나

비슷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 사진을 찍을 때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좀 더 그대로 살려보기로 했다.



좋아하지 않는 무표정,

작고 낮은 코가 더 드러나는 사선 얼굴,

오히려 주근깨가 사랑스럽다며

더 살려도 되냐는 작가님의 뜻에 따랐다.

그렇게 나온 사진.


처음에 상담을 받을 때

내가 제일 먼저 언급했던 것은

'짙은'이라는 단어였다.


물에 타면 물,

술에 타면 술인 사람이 아니라


물에 타면 물을,

술에 타면 술에

내가 잘 섞여 새로운 빛을 내게 하는

짙은 '나'의 모습을 시각화시키고 싶은 마음.


그렇게 또 하나의 장면을 기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