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하다
출산 5개월이 지나서야 털어놓는 이야기
참으로 무지했다. 지금도 무지하다.
출산과 육아란 그저 자연스레 몸으로 익혀지겠거니, 엄마들의 잔소리는 그저 나약한 사람들의 불평이라고 치부한 적도 있다. 어이없게도.
임신기간엔 이태리어, 한국어로 된 임신과 출산에 관련한 책도 사서 읽고 산전 요가, 출산교실도 다니며 나름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의 일이라 그런지 이론대로, 배운 대로 절대 행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육아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이것 또한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니 '한길 물속은 알아도 열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으로도 짧게 설명할 수도 있다. 육아서를 읽지 말고 심리학서를 읽어볼까 깊게 고민도 해보았다. 하지만 출산과 동시에 불필요한 고민임을 자각했다. 책 펼 시간조차 없다.
모성애는 출산과 동시에 저절로 생겨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잠을 마음대로 잘 수도 없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난을 주는 이 작은 아이가 가끔 야속했다. 나의 첫 출산은 상당히 고되었고 (생진통을 24시간 이상 하고도 자궁문이 다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머리를 틀어 응급 제왕절개를 하였다. 단 1퍼센트도 고려해 보지 않았던 최악의 경우를 겪었다.) 이탈리아 병원 시스템상 출산 후 산모는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는 모자동실이 기본이었다. 이 사실이 나에게는 꽤 충격적이었는데 (수술을 하고서도 모자동실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한국에서 출산을 했어도 신생아실을 이용하지는 않았을 계획이었지만, 배를 가르는 수술을 한 산모에게 24시간 육아라는 일을 주다니.. 엄마라는 존재는 수술을 해도 편히 쉴 수 없다니. 게다가 병원에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낮에는 시어머님과 남편이 번갈아 가며 나와 아이를 돌봐주었지만 밤에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밤에는 시계를 보며 얼른 아침이 와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와주길만을 기다렸다. 아이는 한 시간마다 울며 젖을 찾았는데 시간이 정말 안 가더라.
나는 뱃속에 아이가 있을 때도 태담이라는 이름으로 얼굴도 모르는 아이에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것이 참으로 어색해서 이렇다 할 태담도 하지 않았다. 배에다 대고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이가 말뜻을 알아들을 리도 만무하며 굳이 입 밖으로 꺼내다고 해서 내 마음이 전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엄마가 또 있을까 싶다.
어쨌든, 엄마가 되는 준비를 한다고는 했는데 머리와 맘으로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었나 보다. 첫 경험이니 당연히 알리가 없겠지만은 누군가가 말해주었다면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출산과 육아를 설명할 때 하나 빠진 것이 있다. 이것은 처절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끝도 없이 되뇌며 나 자신을 다독여야 한다. 임신과 출산, 육아서에는 좋은 말만 잔뜩 쓰여 있다. 생생한 현실을 담은 엄마들의 경험담만 적힌 책이 출판되면 좋겠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좋은 엄마라고, 내가 하는 방법이 정답이라고, 나는 아프면 안 된다고. 모성애라는 것은 결국, 자연히 인간의 DNA에 저장되어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학습되는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출산 후 두어 달간은 참으로 우울했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탈리아는 산후조리의 개념이 없다. 남편에게는 산후조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면서 몇 달을 주입시켰다. 시댁은 멀고 친정은 더더욱 멀어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남편이 나와 아기를 돌보느라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주변에 나만큼 조리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유별나다는 생각 때문에 조금 괴롭기도 했다. 이제야 하는 고백이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아이가 이뻐 보이지 않았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니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출산 과정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인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였으니.. 언젠간 잊혀지겠지.
새벽에 잠을 깨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두리번두리번 나를 찾는 눈에서, 내가 보이면 나를 향해 뻗는 손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면 활짝 웃어주는 얼굴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엄마가 되어서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