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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오 Jul 10. 2023

마이 넷플리스트

성실한 여유로움 _ by SAZA.K


긴급 소집을 앞두고 조용한 마을에서 고요히 활동하던 스파이 3명. 그중 선배 스파이가 주인공 스즈메에게 어쩌면 평생 못 만날 수도 있는데 마지막으로 만나 둘 사람이 없냐고 묻는다. 대답 대신 창 밖을 보며 스즈메는 이런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면 이별은 대부분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한쪽이 죽은 후 처음으로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 생각하는 것뿐. 이별은 다 그런 건가.


영화에서 긴급소집은 임무를 수행하러 떠나는 스파이들의 긴 여정으로 그려지지만 나에게는 아득하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죽음의 순간을 그려지게 했다. 스즈메도 그랬을까?


몇 년 전, 나는 남들보다 잘하고 누구보다 뛰어나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오며 살았다가 처절하게 무너진 경험을 했었다. 아무도 실패 또는 탈락인 거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매일 지하계단으로 걸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의외로 살아진다는 사실이, 살아갈 만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어라,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걸?


최근에는 일과가 없는 오전동안 동네빵집 주방보조로 파트타이머를 시작했다. 빵집 반지하의 작은 주방에서 오너 파티셰의 어머니와 빵속에 들어가는 팥과 고구마, 단호박등의 부재료를 손질하고 익히는 일. 복잡한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몸을 움직이면 모락모락 재료가 완성되는 단순하고 뿌듯한 일. 일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의 점심시간, 무릎 연골이 말썽인 나이가 지긋한 파티셰의 어머니는 무릎을 만지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는 이제 다리가 병신이잖아. 누가 나를 받아주겠어. 아들 가게니까 여기서라도 이렇게 하는 거지,”


아마도 퇴행성 관절염으로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 건 아닐까 예상하긴 했었다. 그 생각이 무색하게 꽤나 민첩하고 날카롭게 일을 처리하시길래 그런 생각을 내내 담고 있을 줄이야. 잠깐 수저질을 멈칫하다가도 위로가 익숙하지 않은 나는 위로나 대답을 포기하고 그저 남은 밥을 아무 말 없이 비웠다. 나는 일하지 않고 느긋하게 쉴 수 있는 노년이 빨리 왔으면 하고 소원하고 있는데, 내가 바라던 나이의 그녀에게는 일을 지속할 수 없는 육체나이가 슬픔이 되다니. 누군가에게는 일을 한다는 것이 부러움을 살만한 평범성이겠구나 싶다. 


많이 달려오고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삶. 허무함이 온몸을 쓸고 나가는 긴 밤. 

당장 내일 또는 이번 주를 걱정하기보다 먼 미래의 죽음을 생각해 보는 날이 많다. 그리고 살 날들을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아휴, 자연사하려면 아직도 멀었네.’

이제부터 나를 조금씩 아껴 쓰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삶의 리듬을 정해 본다.
 
그래, 이거 좋겠어.

느긋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saza.k_

@saza.club_



#사자클럽#우리둘이쓰고있어요#영화#거북이는의외로빨리헤엄친다#성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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