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비
올해로 마흔셋. 노트북에 글씨 몇자 치려는데 자꾸만 글자가 번져 보인다. 눈이 뻑뻑한 것 같고 계속 쳐다보고 있기가 힘들다. 노트북 화면은 왜이렇게 어두워 보이는지. 중고노트북이라 화면 수명이 다한 건가? 싶었는데 다른 새 노트북을 켜봐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 몸에 물기가 마른다고 한다. 나는 원래 사주에도 물이 없어서 건조한 편인데 나이가 드니 더 버썩버썩 마르나 보다. 건조한 날에 눈이 뻑뻑하기가 더 심한데 노트북이나 무언가를 골똘히 보면 눈깜빡임이 줄어들어 더 뻑뻑해진다. 지인의 지인이 안과의사라고 노안에 답은 없고 그냥 인공눈물 하루에 6번 이상 넣으며 버티다가 백내장 수술 한 번 하는 거라고 했다. 묘하게 설득이 갔다. 그래서 작년에 인공눈물을 샀다. 튜브형 데일리는 너무 금방 쓰고 쓰레기가 심해 해외직구로 15ml 여섯병짜리. 여러 개 사서 '저 카더라' 문구를 들려주며 주위 노안이 온 분들에게 나눠 주었다. (어쩌면 인공누액 바이럴마케팅이었나?) 어쨌든 잠시 촉촉하면 불안이 좀 가신다. 수시로 넣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중이다. 눈물이 없으면 가습기라도 틀고 미스트라도 얼굴에 뿌린다. 입을 쩍 벌려 눈물을 모으기도 한다.
오메가3를 먹으라는 얘기도 들었다. 루테인은 녹내장 위험군이라 먹고 있었는데 오메가3도 따로 챙겨먹어야 한다고 클럽하우스 고민거래소에서 누군가 얘기해줬다. 꼭 1000mL 이상을 드세요. 찾아보니 별로 비싸지도 않다. 말랑말랑한 알이 좀 큰 편인데 터뜨리면 생선비린내가 난다고 한다. 한번은 터뜨려보고 싶다. 루테인, 오메가3는 별 효과 없다는 카더라도 좀 들었는데 루테인의 경우 6개월마다 하는 정기검진에서 안압이 정상으로 돌아와있어서 그냥 먹는다. 오메가3는 그냥 조곰이라도 더 눈이 덜 뻑뻑해진 듯한 느낌적인 느낌으로 챙겨먹는다.
그런데도 이 낯선 뻑뻑하고 눈부시고 번지고 이 느낌은 뭔가. 게다가 집안 조명이 한층 어둡게 느껴진다. 종이 글씨를 볼 때보다 빛나는 화면을 대할 때가 더 힘들다. 어떡하지, 나는 이제 글을 쓰려고 하는데 눈이 도와주지 않는다니. 책을 맘껏 읽을 수 없다니, 웹툰을 맘껏 볼 수 없다니(이상하게 핸드폰 글씨는 괜찮다. 가까이 봐서 그런 듯. 그래서 눈이 확 나빠진 듯!) 막연히 시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안경점을 찾았다. 4년 전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근 한 달 만에 집을 나섰는데 세상이 흐릿하게 보여서 놀랐던 게 생각난다. 아 나는 이제 앞도 잘 안 보이는구나, 내 몸에 있었을 그나마 괜찮은 건 다 아이에게 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안경점에 가니 시력이 두 단계 정도 떨어진 거라 했다. 안경을 바꾸니 세상이 다시 환해지고 글씨도 잘 보였다. 단순한 나는 금방 기분이 나아졌다. 이번에도 그런 걸 거야, 그냥 렌즈 도수를 몇 도 바꾸면 되는 걸 거야.
안경점에서 이런 저런 검사를 해보더니 노안이 왔단다. 아... 우리 엄마는 70이 다 되는 즈음에야 안경을 쓰고 그외에는 우리 가족 중에 안경 쓰는 사람도 없다. 혼자 안경 써온 내가 노안도 빠르다. 지금부터 한 3년 올 거라고.. 그건 무슨 말이지? 더 나빠진다는 소리인가. 희한하게도 양눈 시력이 좀 달랐는데 노안이 오자 한쪽이 좀 올라가면서 얼추 비슷해졌다. 홧김에 렌즈에 다초점을 넣었다. (상술인가!) 렌즈를 고르라는데 벌컥 난시가 심해지며 눈도 부셔서 빛을 받으면 선글라스처럼 변했다가 실내로 들어오면 다시 투명해지는 렌즈로 바꿨다. 이제와서 전파도 좀 덜 받아보겠다고 블루레이 차단 기능까지. 30여년 동안 내가 쓴 안경 중에 가장 비싼 안경이 완성됐다.
보통 다초점렌즈를 하면 어지러워서 안 쓴다던데, 나는 그런 거 없이 바로 적응했다. 블루레이 차단기능 때문에 약간 렌즈에 색이 들어갔고, 태양을 받을 때마다 색이 시커매진다. 안경테는 그전에 쓰던 불투명연핑크 뿔테인데 렌즈만으로 훅 중년이 된 느낌이 든다. 살짝 우울해졌지만 그래도 비싼 안경이 위로한다. 눈부심은 확실히 덜해졌고 다초점렌즈로 초점 맞추기 연습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조명이 어둡게 느껴지는 건 안 변한다. 그래서 백내장 수술 하면 세상이 밝아진다고 그러나 보다. 나는 한동안 어두워질 일만 남았다. 헤드랜턴 끼고 돌아다니고 싶은 기분. 노안 안경에 작은 조명이라도 붙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언니들하고 많이 노는데 얘기할 화제가 또 하나 늘었네. 노안이 오면 보통 다초점렌즈를 낀다고들 하는데 차이가 심하다보니 어지러워서 잘 안 쓰고 필요할 때 돋보기만 보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면 일상생활에 글자를 볼 때마다 눈을 찡그리게 되어 눈썹 사이에 주름이 진하게 진다고들. 나는 그건 좀 늦지 않겠나 하고 위로해 본다. 노트북을 사야하는 건 아니니 상대적으로 드는 비용은 적었다고 쳐야지.
+
여기에 비문증이 추가됐다.
봄이 오는 즈음 언니들을 만나 샐러드 브런치를 시켜놓고 기분 좋게 주위를 둘러보는데 뭔가 자글자글했다.
까만 거? 하얀 거? 싶더니 갑자기 지렁이가! 눈앞에 보였다. 지렁이라고 표현한 건 엄마가 작년에 그 증상을 겪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지렁이가 보인다고. 내 눈앞에 그것이 보이는 순간, 아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꼭 지렁이 같았는데 마치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보는 것처럼 투명한 지렁이가 내 눈안에서 또렷하게 보였다. 너무 신기해서 그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자니 움직이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놀라움 반, 불안함 반으로 그것을 계속 눈을 쫓고 있었는데 언니들이 내 눈 동자가 이상해 보였는지 그만 좀 하라고 했다. 심란해져서 밥 먹고는 바로 안과를 찾아갔다. 이런 저런 검사를 바로 하고 진료를 받으니 의사가 나이가 들면 안구에서 점막이나 단백질 같은 게 떨어져나와 둥둥 떠다닌다고 그래서 그게 보이곤 한다고 했다. 망막 박리나 황반 변성 같은 게 있나 싶어 찾아봤지만 핏줄 터진 것도 없다고 했다.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별다른 처방은 없다고. 여기에는 15,000원 정도의 진료비밖에 들지 않았고 약 처방도 없었다. 하지만 안과의사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다른 문제는 없다는 말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 불편한데도 꿋꿋하게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갑자기 지글지글한 게 많아지거나 어두워지면 다시 찾아오라고는 했다. 안과에 갈 때부터 지렁이는 이미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는 실핏줄이 터진 거여서 지렁이도 한참 더 갔었다. 불안해하는데 이모를 비롯, 주변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고 자기도 그렇다고만 말했다고 했다. 나도 인터넷 찾아보며 엄마에게 별거 아니라 그랬지만 처음에 지렁이가 보였을 때 엄마가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웠을지 반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실감하게 되었다. 비문증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고 농장의 다른 언니들에게 나중에 그게 나타나도 무서워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엄마 말을 듣고 마그네슘도 한 통 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