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해지려는 노력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처음 베트남 전쟁에 대해 배웠다. 나는 이과였음에도 역사 과목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특히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 때는 이름만 들었던 베트남전의 배경과 진행, 결과 등을 배우는 건 꽤 재미있었다. 선생님은 수업 도중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는 내용을 언급하셨다. 어린 나는 그 대목의 의미를 모르고 외웠다. 그건 나에게는 그저 두꺼운 역사책의 한 줄일 뿐이었다. 이해가 결여된 공부였다.
몇 달 전 한 여행학교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곳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찾아보게 되었다. 대안학교로 구분되는 그 학교는 여행 준비와 기획 및 필요한 외국어, 역사 공부부터 여행 후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여행을 통한 성장과 배움을 모토로 하는 곳이었다. 살아가는 데 진정 필요할 지식들을 가르치는 자유로운 커리큘럼에 매료되어 혹시 내 동생들이라도 다니게 할 수 없을까 싶어 인터넷과 책 등을 찾아보기도 했다. 학교에 대해 이리저리 찾아보다 보니 대표교사인 김현아 작가가 궁금해졌다. 학교 내에서는 ‘어딘’이라는 별칭을 쓰는 그분은 거의 10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나로 하여금 수필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한 이슬아 작가의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분이 해온 다양한 활동을 포털 사이트의 각종 인터뷰와 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작가님이 걸어온 발자취를 훑다가, 그중에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학살의 진상 규명 활동들이 눈에 띄었다. 그는 사회 소수자의 인권과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진상규명 활동을 하는 ‘나와우리’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으며, 학교 학생들과 직접 베트남에 가서 생존자들의 상처를 목격하기도 했다. 90년대 말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건을 알리는 주축 역할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2018년에 개봉한 이길보라 감독의 영화 <기억의 전쟁>을 올해가 되어서야 봤다. 이길보라 감독은 김현아 작가의 제자로, 2002년에 출간된 김현아 작가의 저서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의 영향을 받아 영화의 제목을 지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는 베트남 학살 목격자들과 생존자들의 생생한 인터뷰로 시작해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응우옌 티 탄 씨가 한국 사회에 사건을 알리고 사과를 요구하는 과정을 차분히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건을 드라마틱하게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으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느껴졌다. 특히 감독의 인터뷰에서 ‘여성, 장애인과 같이 공적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언어로 전쟁을 기록한다’는 접근법이 매우 인상 깊었다. 자극적인 소리나 장면을 거의 넣지 않고 담담히 끌어가는 연출 방식이 오히려 큰 울림을 주었다. 수만 번도 더 떠올렸겠지만 여전히 꺼내기 어려울 기억들을 조금씩 꺼내가면서, 생존자들이 점점 슬픔에 잠기고 점차 감정이 격해지는 모습을 보기만 했는데도 힘이 들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한 목격담이 이어졌다. 한국군들이 건물에 불을 질러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는 증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들이 자행한 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군인들은 사람들을 죽인 후에 불도저로 시체를 밀어버리고 훼손했고 남은 이들은 장례조차 치를 수 없었다. 카메라 앞으로 걸어오며 절뚝이는 다리와, 담담히 시작한 증언의 어디쯤에서 터져 나오는 수십 년 동안 흘려온 것과 같은 눈물이 그 끔찍한 역사가 실재했음을 증명했다. 영화 후반부쯤 실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인들이 본인들은 그런 일을 저지른 적이 없고 시킨 대로 베트콩을 죽였을 뿐이라며 생존자의 요구에 반대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수요 집회를 열고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과, 그 역사를 부정하는 아베 정권이 시위 행렬에 오버랩되며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부당하게 일어난 사건과 그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들은 가족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돌아보고 부재를 상기하거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매 순간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전쟁은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그 기억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가해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기란, 그러지 않아도 당장 돌아오는 피해가 없다는 점에서 어렵다. 본인 혹은 본인이 속한 곳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에 어렵다. 나만 해도 누군가의 잘못은 쉽게 지적할 수 있지만,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용기와 죄책감을 필요로 하기에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진다.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공부하느냐에 따라 사건에 대한 인식 체계가 결정된다고 느낀다.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입시를 준비하며 역사를 공부했던 나에게,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두 나라가 집중하고 교육하는 사건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더욱이 나는 한국 수업에서조차 베트남 학살 사건에 대해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베트남에서는 배울 역사가 아닌가. 역사 교육이란 것이 자국 중심일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나라는 왠지 완전무결할 거라는 인식을 갖기도 쉬울 것 같았다. 나는 처음 이 사건의 전재를 알게 되었을 때 일본군이나 하는 일을 우리가 했을 리가, 그래도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니었겠지, 하며 합리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또는 우리가 아직 모르지만 그 후유증은 어떤 형태로든 분명히 남은 사건들이 있지 않을까. 인강이나 교과서에 도무지 나오지 않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일들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이 들고 나서야 나는 좀 더 주체적으로 역사를 공부하게 됐다.
베트남전의 참상에 대해 알게 된 많은 한국인들은 충격을 받지만 그것을 최대한 섬세하게 알려고 드는 이는 드물다. 폭력을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로 정의한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우리는 알아버린 이상 안 자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 이상 그들에게 폭력이 되지 않게 기억하고 지지할 것이다.
2020/05/28
photo credit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