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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u Oct 25. 2020

집 매매 계획안

내 인생 내가 컨펌


나가버리니 붙잡고 싶었던 우리 (전세)집


집이 나갔다.

손이 떨렸다.

심장도 같이 떨렸다.

숨이 찼다.


아무 계획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냅다 집을 보러 다녔다. 처음에는 전세, 매매 상관없이 회사 근처, 집 근처, 새로운 동네 회사 근처는 점심시간에 3-4개 보기도 하고, 퇴근 후 또 보기도 했다. 집을 보러 다니면서 서울에 집을 얻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예산에 맞추면 너무 작고, 원하는 집은 너무 비싸고.

예상과 달리 원하는 집을 찾지 못하게 되자 생각이 많아져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집을 어서 결정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여러 가지 말들은 마음을 더욱 어지럽혔다. 집 값에 대한 말, 집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말, 섣부른 결정에 대한 말 등이 판단과 결정을 하는 데에 혼란을 야기시켰다.


이러다간 상처만 남은 채 피 땀 눈물 흘리며 남에게 휘둘린 길거리 인생이 될 것 같았다. 비약인 것을 인정하는 바이나, 그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장임을 밝힌다.


귀를 잠시 닫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세요



매매 프로젝트 기획

회사에서 기획하고 보고서 쓰고 남에게 설명, 설득하듯 내 인생의 '집 매매'를 기획하고, 나 자신에게 상황을 설명, 그리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쓰게 된 나의 '2020 집 매매 계획안'

이 계획안은 철저하게 '남편과 나'의 어지러진 정신을 가다듬기만을 위한 내용이기에, 부동산이나 투자에 관련한 어떠한 지식도 전문성도 깃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공중에 마구 흩뿌리던 우리 둘의 말과 생각을 정리해보고, 확고한 판단을 하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게다가 모든 상황이 종료된 지금 이 계획안을 다시 보고 있자니 회사에서 매번 "도대체 이런 기획안은 왜 쓰는 거야"하며 투덜이던 나에게 "이러려고 쓰는 거란다"라는 약간의 교훈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회사의 불필요한 보고서는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투덜.)


투자 정보를 기대하셨다면 지금이라도 '뒤로 가기'를 누르세요.




자네, 왜 집을 지금 사려고 하지?

첫 페이지는 '우리 왜 집을 지금 사려고 하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응답하는 내용이다.

집가격은 네이버 부동산 실거래가 기준이며, 숫자는 단순 예시일 뿐이며, 수익과 같은 지나치게 사적인 내용은 지움






그래서 어떤 집을 사고 싶은겐가?

두 번째 페이지는 '그래서 어떤 집을 사고 싶은데'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응답하는 내용이다.

애초에 '투자'는 관심도 없고, 할 줄도 모르고, 할 돈도 없어서 집을 사준 기준에 '투자 가치'는 있지도 않다. 지금 와서 보니 남편과 나는 그저 우리가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 갖고 싶었던 것 같다. (바로 지금 우리 집! :D)

우리의 생활 반경을 고려해 따져본 집 매매 기준


이 두 번째 페이지를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가 있다. 나는 신혼부부 특공으로 2,500세대 이상의 대단지 청약에 당첨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위너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수 없어서 청약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 그 당시에는 위너에서 한 순간에 루저가 된 것 같아 남편과 둘이 손 붙잡고 앉아서 눈물 콧물 쏟았지만 지금은 진실로 무리해서 그때 그 집을 사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다. 이야기가 샜으므로 넘어간다.



돈은 있고?

세 번째 페이지는 남편과 나의 실제 벌이에 따른 매매 후 예산안이 자세하게 들어있어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집을 사면 그야말로 '가계'가 운영이 될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계산하고, 또 형편에 맞는 집은 얼마의 집인지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좋소. 세부 일정과 후보를 가져와 보게

네 번째 페이지는 살고 있던 전세 집에서 나가야 하는 날을 역순으로 실제 액션이 이뤄져야 하는 일정과, 그간 우리가 본 집의 특징을 정리한 리스트다.




집 매매 추진 확정

무식해서 잘은 모르지만, 계획안을 쓴 지난 4월보다 요즘은 집 사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고 하고, 투자 가치를 생각한다면 전혀 다른 방향의 계획이 수립되어야 겠지만, 위 계획안을 통해 남편과 내가 얻은 것은 '추진력'이다. 터무니없고, 형편없는 계획안이지만 적어도 우리 둘에게는 집을 살 수 있도록 추진력을 실어주었다. '정말 지금 집을 사는 게 맞는 걸까. 우리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우리 집을 갖고 싶다.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던 우리에게 '그래, 해보자!' 하며, 용기 내어 결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회사는 윗사람이 책임을 지게 되니까, 내가 낸 기획안이 아무리 신박할지라도 상사를 설득하고 컨펌을 받기가 어렵다. 하지만 집을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모든 결정은 나에게 달려있다. 책임까지도. 그러니 나 자신을 설득한 신박한 기획안은 용기 있게 컨펌!


내 인생은 내가 컨펌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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