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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u Sep 08. 2019

부부에게 꼭 필요한 시간-셀프 조정기간

웨딩네일이고 뭐고 좋아하는 카키컬러 바르고 입장한 고집센 신부의 손을 잡아준 인내왕 신랑




조정 調停

분쟁을 중간에서 화해하게 하거나 서로 타협점을 찾아 합의하도록 함. (표준국어대사전)



우리 둘의 '셀프 조정기간'이 시작됐다.


셀프 조정기간 규칙 - 잠은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격렬히 갖고 싶어 하던 남편이었으나 내가 철저히 투명인간처럼 지낼 테니 잠은 집에서 잘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결국 한 집에 있지만 서로 대화는 최소화, 생필대화만 하며, 나름의 각자의 시간을 취하기로. 사실 생활 패턴이 매우 달라 몇 번 마주치지도 못했다



처음엔 힘들다 - 숨멎주의

검정색 얼굴이 됐던 남편도 그랬으리라 생각하는데, 나의 셀프 조정기간의 시작은 말 그대로 '숨멎주의'였다. 나도 모르는 새에 숨을 참고 있다가 '아차, 숨 쉬어야지’하며 정신을 차리고 숨을 한 번에 후욱 뱉어내는 식.


그리고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베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쾌청한 하늘을 보며 '아 사람들이 이럴 때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는구나'하고 마음 깊이 이해했다. 숨 쉬는 것을 잊을 만큼 괴로움을 안고 사느니 저 쾌청한 하늘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것이 한참 나을 것 같은. '이혼'이라는 근처에 서성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기분이려니.

(엄마 미안했어. 이런 생각을 했던 것 말이야. 또 내가 몸을 내던지지 않도록 베란다 문 앞에서 널브러져 자는 게 인생 최고 행복인 개 무치 고맙)


멍을 때리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주룩 거려서 도저히 회사에 앉아있을 수가 없는 나머지 갑작스러운 오후 반차를 내기도 했다.


감정이 너무 앞서있어서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살다 보면 반드시 이런 시기가 있을 테니 모두들 당황하지 않도록 합시다.


문제의(?) 쾌청한 하늘과 베란다 지킴이 최무치



일상생활 가능 - 이게 진짜 소울리스

셀프 조정기간의 처음 며칠은 감정에 휩쓸려 죄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일상이 무엇인지 또 그놈의 회사가 무엇인지 고마운 것인지 얄미운 것인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주구장창 쳐내다 보면 하루가 지나가 있고 했다. 영혼은 없지만.


베란다 창문이 아닌, 일상에 몸을 내던지도록 합시다.



비로소 조정 가능 - 문제의 객관화

일상을 부여잡고 살아내다 보니, 비로소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조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회사에서 크기가 큰 사고일수록, 남 탓과 불평불만하며 감정적으로 시간을 써대기보다, 어서 빨리 문제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해결점을 찾는 것이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은가. 난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믿는다.


감정적이 되기 쉬운 부부 사이에서 셀프 조정기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마치 회사 업무 다루듯 ‘문제의 객관화’라 하겠다.


특히 이런 기특한(?) 발상은 남편과 감정적으로나마 잠시 떨어져 있는 ‘셀프 조정기간’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다고 확신한다.


이혼 발언 이후 기간을 남편과 가까이서 부딪치며 보냈다면,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것 같이 나의 에너지가 또 과잉되어, 어떻게든 따져 묻고 문제를 해결 아니, 종결시키려고 했었을 테다. 평소 하던 다툼의 흐름대로 ‘나는 절대로 잘못한 게 없어’ 하며 남편 탓만 하고, ‘저 자식은 이게 진짜 문제야’라며 불평을 하다가 시간이 흘러가버려 정말 큰 사고(이혼)가 났을 것이다.


이는 ‘분쟁을 중간에서 화해하게 하거나 서로 타협점을 찾아 합의하도록’하는 ‘조정’이 아니라 ‘내가 잘했네, 네가 잘했네’하는 ‘전쟁’이 됐을 테니.



‘어디 보자, 그래서 걔가 뭐라 했더라’



전쟁 중이신가요. 조정 중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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