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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 Jun 24. 2021

커피숍 노동자의 하루

 새로 산 블루투스 기계식 키보드를 가지고 출근한 기념으로, 카페 안에서 일기를 끄적여 본다.


지난밤 씻어서 예약해 놓은 현미밥이 함께 넣은 우엉 덕분인지 윤기 나게 잘 완성되어 있었다. 물 묻힌 주걱으로 밥을 솎은 뒤 한 주걱 크게 떠 도시락 통에 옮겼다.


계란 두 개를 깨서 아주 약한 불에 올렸다. 천천히 익을 동안 세수를 하기 위해서다.


로션과 선크림을 바르고 옷까지 갈아입은 뒤 주방에 가면 계란 후라이가 적당하고 예쁘게 잘 익어있다.


남편이 주말에 볶아 두었던 김치와 함께 계란을 밥 위에 올린 뒤 간장을 조금 뿌려 뚜껑을 덮는다.


그렇게 도시락과, 일하며 읽을 책, 오늘은 키보드까지 챙겨 걸어서 15분 거리의 일터로 온다.


오픈하고 3시간 정도는 손님이 거의 없다. 한 시간에 한두 잔 정도 나간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갑자기 조금 바빠진다.


워낙 바쁜 매장에서 일을 해봤던 터라 무난히 그 시간을 넘기면 2시쯤 퇴근을 할 것이다.


여기서 알바를 시작한 지 벌써 4개월째다. 단골손님들의 얼굴이 눈에 익고 무엇을 드실지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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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커피숍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전화 통화를 하며 주문하는 손님은 아무래도 곤란하다는 것이다.


음료 사이즈도 물어봐야 하고, 방명록 작성 안내를 위해 테이크 아웃 여부도 물어봐야 하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라고 대강 말한 뒤 통화를 이어 나가면 영 난감해지는 것이다. (가끔은 “커피 한 잔.” 하고 말 한 뒤 카드를 던지고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다.)


내 얼굴을 쳐다도 보지 않고 돈이나 카드를 손가락 사이에 껴서 내미는 손을 보고 있자면, 순간 내가 사람이 아닌 자판기쯤으로 인식되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버린다.


손님의 태도가 자못 정중하다고 해도 통화를 하면서 주문하는 이상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주문할 때만큼은 잠시 멈춰 핸드폰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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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겨 온 도시락을 11시쯤 야곰 야곰 먹고 샷을 내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지난 직장보다 한가롭기 때문에 그때와 같은 시급을 받으면서도 노동 환경이 아주 다르다. 이렇게 글도 쓰고 (사장님이 허락하심) 책도 읽고 그런다.


지난 일터는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매장이 생기는 저가 커피 체인점이었는데, 커피가 그렇게 싼 이유는 사람의 노동력을 갈아서 쓰고 있기 때문이구나를 깨달았던 곳이다.


그곳을 그만두고 손목이 다 나가버려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아니 어디서 일하셨어요? 중노동을 하셨네…”라고 했다.


하여튼 감사하게도 지금은 너그러운 사장님과 한가한 매장에서 적당히 일 하며 최저 시급을 받고 있다.


역병의 시대를 이렇게 지나고 있는 것에 알 수 없는 위태로움을 느끼면서도 일터가 있음에 감사하며 도시락을 싸고 그날 읽을 책을 챙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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