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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NoteThing Mar 02. 2022

번역: 유발 노아 하라리와 우크라이나 전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작가 유발 노아 하라리 기고

Yuval Noah Harari argues that what’s at stake in Ukraine is the direction of human history

2월 9일 2022년/ 英 이코노미스트/ 유발 노아 하라리


우크라이나 사태 핵심에는 ‘변화는 가능한가?’라는 역사 및 인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과연 인간은 본성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인류는 본질이 유지된 채 과거의 비극들을 답습할 뿐일까?


한 측에서는 변화의 가능성을 확고히 부정한다. 이들은 세계가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정글이며 약소국이 강대국으로부터 사냥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군사력이라 주장한다. 세상은 언제나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움직였으며 미래에도 그러한 방식으로 유지될 것이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법칙을 믿지 않는 행위는 자신들을 속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오래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다른 측에서는 일명 약육강식의 법칙이 자연의 규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약육강식의 법칙을 만들었으면, 이를 바꿀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중의 오해와 달리 조직적 전쟁에 대한 명확한 최초의 증거는 불과 13,000년 전 고고학 기록에서 나타난다. 또한 해당 날짜 이후 전쟁에 대한 고고학 증거가 부족한 시기가 다수 존재한다. 중력과 달리 전쟁은 자연의 근본적인 체계가 아니다. 전쟁의 강도 및 존재 여부는 기술ㆍ경제ㆍ문화적 요소에 좌우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요인들이 변화함에 따라 전쟁 또한 변화한다.


상술한 변화의 증거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 몇 세대에 걸쳐 핵무기는 초강대국 간 전쟁을 집단 자살이라는 터무니없는 행위로 바꾸었고, 초강대국들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덜 폭력적인 방법을 찾도록 강요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혹은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강대국 간 전쟁은 많은 역사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했으나, 지난 70년간 초강대국 간의 직접적인 전쟁은 없었다.


같은 시기 국제 경제는 물질 기반에서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했다. 금 광산, 밀밭, 유전과 같은 물질적 자산이 부의 핵심 원천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 부의 원천은 지식이다. 또한 유전은 힘으로 쟁취할 수 있는 반면, 지식은 그러한 방식으로 취득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정복으로 기대되는 수익은 하락했다.


마지막으로 국제 문화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훈족 족장, 바이킹 귀족, 로마제국 귀족과 같은 과거의 엘리트 계층들은 전쟁을 긍정적으로 인식했다. 아시리아 제국의 사르곤대왕부터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까지 지도자들은 점령을 통해 자신들을 불멸의 존재로 격상시키려 했으며, 호메르와 셰익스피어와 같은 작가들은 이러한 공상들에 일조했다. 교회와 같은 여타 엘리트들도 전쟁을 악 하나 불가피한 개념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지난 수 세대 간 세계는 역사상 최초로 전쟁이 악하며 피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지도자들로 구성되었다.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뿐만 아니라 조지 W 부시 및 도널드 트럼프 또한 훈족의 아틸라 혹은 고트족의 알라리크와는 매우 다른 성향을 지닌 지도자이다. 현재의 지도자들은 내부 개혁을 약속하며 권력을 쟁취하며 과거와 같이 국외 점령을 통해 권력을 확보하지 않는다. 파블로 피카소에서 스탠리 큐브릭까지 이르는 예술과 지식의 선구자 또한 전쟁의 참상을 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전쟁 주동자들을 찬양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들은 전쟁이 국익을 증진시키는데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하길 그만두었다. 또한 인접국을 점령하고 괴뢰화하는 환상을 가지길 중단했다. 군사력만으로 브라질이 우루과이를 점령하거나 스페인이 모로코를 침략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평화의 척도


전쟁이 줄었다는 사실은 여러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45년 이후 국경이 침략을 통해 다시 정립되는 사건의 빈도는 상대적으로 감소했으며, 그 어떠한 국제적으로 승인된 국가도 외부 침략으로 인해 지도에서 사라진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내전 혹은 폭동과 같은 여타 종류의 충돌들은 다수 존재했으나, 이러한 모든 갈등들을 고려했을 때에도 21세기 20년 간 인간 폭력에 의한 사망자 수는 자살, 자동차 사고, 혹은 비만 관련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적다. 즉 화약은 설탕보다 덜 치명적이다.


정확한 수치에 대한 학계 내 논쟁은 지속되고 있으나, 수치 뒤의 의미를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전쟁의 감소는 심리학적 및 통계학적 현상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평화의 의미가 대폭 변경되었다는 사실이다. 평화는 대부분의 역사에서 ‘전쟁의 일시적 부재’를 의미했다. 1913년의 사람들이 프랑스와 독일 간 평화가 수립되었다고 전했을 때, 이들은 프랑스군과 독일군 간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전쟁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최근 수 십년 간 평화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의심스러운 상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많은 국가는 인접국에 침략당하고 정복당한다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본인은 중동에서 거주하기에, 이러한 추세에 예외가 존재하고 있음을 완벽히 인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를 인정하는 것은 예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과 최소 동등한 중요성을 내포한다.


일명 ‘새로운 평화’는 통계학적 요행 혹은 히피들의 상상이 아니다. 이러한 모습은 냉철히 계산되는 정부 예산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최근 수 십년 간 전 세계의 국가들은 안보 위협을 느끼지 않았으며 6.5%의 예산만을 국방비로 보전했다. 한편 정부는 안보보다 교육, 보건, 복지 등에 더욱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


현재 우리는 모든 것을 당연시하게 여기나, 상술한 추세들은 인류 역사에 있어 믿기 힘든 새로운 모습이다. 모든 왕자ㆍ칸ㆍ술탄ㆍ황제의 예산에 있어 국방예산은 수 천년 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도자들은 대중을 위한 교육 혹은 보건을 위해서는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전쟁의 감소는 신성한 기적이 일어나거나 자연의 법칙이 변화함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추세는 인류가 더욱 나은 결정을 하게 됨에 따라 실현되었다. 단언컨대, 이 추세는 현대 사회의 가장 위대한 정치적 및 도덕적 성과이다. 한편 이러한 추세가 인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유감스럽게도 번복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술, 경제, 문화는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사이버무기, 인공지능 기반 경제, 새로운 군국주의적 문화들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끔찍한 새로운 전쟁의 시대를 열 수 있다. 인류는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은 전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우려해야 한다. 만약 강대국들이 약한 인접국들을 사냥하는 것이 규범이 될 경우, 이는 전 세계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꿀 것이다. 약육강식 세계로의 복귀가 가져올 가장 확실한 결과는 국방예산의 급격한 증가일 것이다. 선생님, 간호사, 그리고 사회복지사들에게 가야 할 예산은 탱크, 미사일, 그리고 사이버무기로 갈 것이다.


약육강식 세계로의 복귀는 재앙적 기후 변화 방지 혹은 인공지능 및 유전공학 등 높은 위험성을 지닌 기술 규제와 같은 문제와 같은 사안에 대한 국제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다른 국가를 제거하려는 국가들과 협력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환경 변화 및 인공지능 군비 증강 추세가 가속화됨에 따라 군사적 충돌의 위협은 증가하기만 할 것이며, 이러한 악순환은 인류에 재앙이 될 것이다.


역사의 방향


만약 당신이 역사적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인간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믿을 경우, 남은 선택지는 사냥꾼 혹은 사냥감 역할을 하면 된다. 이러한 선택지에서 지도자 대부분은 사냥꾼으로 기억되고 불행한 학생들 역사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할 정복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지길 원한다.


그러나 변화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약육강식의 법칙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선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가능할 경우, 인접국을 점령하길 선택한 지도자는 인류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는 인류가 이룬 최고의 업적을 망친 인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시점에 그는 우리를 그 세계로 다시 불러들였다.


본인은 우크라이나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본인은 역사학자로서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본인은 이러한 믿음이 순진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현실적이라 본다. 인류의 역사에서 불변하는 것은 변화이다. 그리고 이 교훈은 우크라이나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 세대 동안 우크라이나인들은 독재와 폭력만을 경험했다. 그들은 200년 간 제정 독재주의를 견뎌냈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을 쟁취하려 했으나, 소련의 붉은 군대에 의해 러시아의 지배를 다시 받아야 했다. 이후 우크라니아인들은 홀로도모르(우크라이나 대기근), 스탈린주의 테러리즘, 나치 지배 그리고 수십 년간의 공산주의 독재를 겪었다.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역사는 우크라이나가 잔혹한 독재의 길로 다시 들어설 것 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다른 체제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역사를 극복하고, 끝이 없는 빈곤과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장애들을 뛰어넘어 민주주의를 설립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및 벨라루스와 달리 반복적으로 정권 교체를 경험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2004년 및 2013년 독재주의 위기를 맞았을 때 자유를 위해 두 차례나 일어섰다.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민주주의는 신개념이며 ‘새로운 평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두 개념 모두 취약하며 장기간 지속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개념 모두 존재 가능하며, 우크라이나에 뿌리 깊게 내릴 수 있다. 모든 오래된 것들은 한때 새로운 것이었다. 모든 가능성은 인류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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