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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기 Oct 23. 2015

5. 기다림에 관하여

기다림에 관하여

빛이 떠나고 홀로 남은 자리에
작은 초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저는 그 초에 불을 붙였고
작은 바람에도 위태로운
그 촛불을 품에 안았습니다
가까이 하자니 뜨겁고
멀리 하자니 꺼질 것 같은 그 촛불은
저의 그리움을 산소 삼아
고요히 심지를 태웠습니다

아무리 불빛을 지킨다고 해도
심지가 사라지는 날
그 자리가 어둠으로 채워질 것을 알기에
차라리 바람에게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불은 꺼져도 남은 초를 만지며
떠나간 빛을 떠올릴 수는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바람이라도 살짝 불면
깜짝 놀라 얼른 제 품으로  끌어안습니다

제게 기다림이란 그런 것입니다
보고 싶다 말하면 그 입김으로 촛불이 꺼질까
침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촛불을 한참 동안 보고 있으면
초를 타고 촛농이 흘러내립니다
곧 식어버린 흰 방울들은 알려주는  듯합니다
촛불이 얼마나 절절하게 빛을 내고 있는지
심지가 사라질 그 날을 얼마나 겁내고 있는지
그 모습이 견딜 수 없어진 저는
뒤를 돌아 한숨 한 번 깊이 토해내고
다시 뒤를 돌아
그 촛불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기다림은 참 조심스러운 행위다. 사랑하는 대상일 수록 그렇다. 기다림엔 끝이 있지만 나는 그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그저 하염없이, 그리고 공손하게 기다리는 것이 기다림에 대한 나의 태도다. 집에 양초가 있어서인지 촛불의 이미지가 쉽게 생각났다. 자그마한 불빛을 켜놓고는 작은 바람에도 불이 사그라질까 걱정하는 나, 기다림을 견딜 수 없어 내뱉는 한숨에도 불이 꺼질까 뒤를 돌아 내쉬는 나. 기다림은 힘든 것이지만 대상이 떠난 지금에는 이 기다리는 나야말로 그 대상이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는 증거가 된다. 기다림에 지쳐 차라리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면 과거라도 추억하며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그것을 지키게 된다. 내게 있어 기다림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때에야 의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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