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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기 Dec 20. 2015

두 번째 편지

어느 대학생의 자살에 부쳐

12월입니다 형.  그동안 몸도 마음도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저번 편지에 형께서 그러셨지요. ‘그저 잘 지내라고만 하지 마라. 다정하다는 것은 전하는 마음에 따뜻한 언어를 입힌다는 뜻이니 전하는 마음이 식어 버리지 않도록 인사에 더 다정해져라.’라고요. 솔직히 형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면 도덕 시험을 치르는 것 같아 맘 편하게 형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이번 편지 역시도 형의 말씀이 아팠다는 투정으로 시작하게 되네요. 저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면 잘 지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니 형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부디 무엇이 건강한 것이냐고는 묻지 말아주세요. 저는 그저 형이 계신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바랄 뿐인걸요.


그동안 저도 잘 지냈어요. 크게 아프거나 상처받는 일도 없었고요. 가끔 친구들도 만나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글도 쓰면서 소모와 충전의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뭐가 소모냐고 물어보신다면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일이 정말 힘드네요. 학원에선 저 혼자 비전공자인데 매 시간마다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아요. 시간은 가고 있는데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점점 참담해집니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면서 이 마지막 기회를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요. 제가 선택한 길이니 결국 제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 일이겠지만요. 자격증과 영어 시험도 준비해야 하는데 정말 독기가 절실히 필요한 요즘입니다. 힘든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성공이든 실패든 어설픈 노력으로 결과조차 얻지 못할 것이 제일 걱정됩니다. 다음 편지에선 시원하게 실패했다는 근황이라도 전해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 주에 제 마지막 학기가 끝났어요. 이제 졸업입니다.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 어머니께 졸업식에 갈 일이 없으니 사실상 오늘이 졸업일이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섭섭해하시더라고요. 당신께선 졸업식에 참석해서 아들의 졸업을 축하해주고 싶으셨나 봐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동기들도 거의 안 남아있어 함께 졸업을 기뻐할 사람이 학교에 없는데. 형식에는 별 감흥이 없더라고요. 그냥 그 마지막 시험을 치르던 날 저 나름의 방법으로 학교와 작별하고 왔습니다.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고 표현하면 지나친 감상일까요. 이제 좀 더 외로워진 것 같아요. 아니, 좀 더 혼자다워졌다는 말이 정확할 것 같네요. 외로워졌다는 말엔 그래서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삶의 길에서 좀 더 혼자다워졌다고 말하렵니다.


사실 이 편지는 오늘이 아니라 어제 쓰려고 했어요. 학원이 끝나고 깜깜해진 저녁에 ‘보통의 겨울’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집에 오는데 씁쓸하면서도 따뜻해지더라고요. “저물어 가는 하루를 아쉬워하며 오늘이 더해진 추억에 고된 날들 우린 버텨 가겠지”라는 가사에 어쩐지 고즈넉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편지 쓰기 참 좋은 날이다 생각했어요. 집에 오는 동안 그 노래만 계속 들으며 형에게 하면 좋을 말과 이야기들을 떠올렸지요. 하지만 그 기분이 어젯밤 산산이 깨져버린 게 하루가 지나서야 편지를 쓴 이유입니다. 형께 털어놓다 보면 심란해진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어젯밤, 인터넷으로 뉴스를 읽다가 어느 대학생의 자살 소식을 접했습니다. 자살 강대국인 이 나라에서 누군가의 자살이 뉴스화 되었다는 건 그 화제성이 결코 미지근하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화제가 될 만한 요소는 과연 더러 있었고, 그 요소는 이러했습니다. 그 학생이 서울대생이었다는 점, 유서를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했다는 점, 무엇보다 유서에 ‘수저 계급론’이 언급되었다는 점.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사회에서 우울증은 독감 같은 병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 뉴스만으론 결코 이해되지 않는 죽음이었습니다. 삶을 비관하는데 자격이 있을 리는 없지만 제가 보기에 그 학생의 지난 삶은 궁핍했다고 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도 수저론을 운운하며 몸을 던졌다니요. 상식적이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이지 않았기에, 자세히 보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는 제가 그 학생의 죽음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었겠어요. 남겼다는 유서를 필사했습니다. 한 줄 한 줄 베껴 적으며 그 행에 담긴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허탈하게도 원했던 그 학생의 심정은 알 수 없었어요. 글이 너무 길어서 베끼던 어느 지점에선 손이 아프다는 생각밖엔 안 들었거든요. B4 크기 공책으로 세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글이었어요. 그러니까, 손으로 적었다면 손이 아파 쉬지 않고서는 다 쓸 수 없었을 분량의 유서를 그 학생은 너무나도 손쉽게 타이핑하여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했던 겁니다. 하지만 형, 그 학생의 마음은 헤아려 볼 수 없었지만 글을 베끼는 제 마음에서 차오르는 감정이 있었어요. K형, 저는 너무나 분했습니다. 너무나 분해서 필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꺼내 폈어요. 한숨이라도 깊게 쉬어야 분이 사그라들 것 같았거든요.


그 학생은 ‘힘들고 부끄러운 20년’으로 자신의 삶을 요약했습니다. 이제 막 청소년기의 혼란을 견디고 성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딘 20살이 술회하는 지나온 삶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죽으면  안 된다”고 말한 사람들이 바로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들이라며 “이는 저더러 빨리 죽으라는 과격한 표현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비약은 어디서 왔던 걸까요. 이미 그에게는 삶에 대한 환멸이 있었고, 그랬기에 어떤 목소리도 그 신념 어린 환멸을 지피는 불쏘시개로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요. 자살이 죄가 될 수 있다면 그는 ‘확신범’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20년이나 세상에 꺾이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건 저와 제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 말하며 앞서 비난했던 “남은 사람들”과 “주위 사람들”을 분리시킵니다. 저는 여기서 자신의 신념과 생활 사이에서 그가 느꼈을 괴리감을 상상했습니다. 그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살의 명분을 타인에게로 돌리기엔 자신의 삶이 핍진하진 않았다는 것을요.


그래서 다음으로 그 학생은 자살의 명분을 ‘세상’에게서 찾습니다. “이 세상의 합리는 저의 합리와 너무나도 달랐”다면서요,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라는 무시무시한 선언을 그 학생은 아무렇지 않게 해 버립니다. 여기서 저는 첫 번째로 분함이 치밀어 올랐어요. 이 분함에 대한 이야기는 글의 순서에 따라 다음에 하겠습니다. 자신과 세상의 합리가 불일치한다는 선언 다음으로 그 학생은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을 더듬습니다. 혼자 떠났던  해외여행의 기억과,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일상에서 느낀 감동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에요. 특히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서술되었습니다. 그 날 그 학생은 강의시간에 “학문을 하는 것은 정신적 귀족이 되는 것이다.”라는 베버의 말을 듣고  그때 만큼은 그 정신적 귀족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서로 수저 색깔을 논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독야청청 ‘금전두엽’을 가진 듯 했”다면서요. 하지만 그 학생은 언제 감동했냐는 듯 세상에 다시 좌절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금전두엽을 가지지도 못했으며,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군요.”라는 문장이 그 행복했던 기억을 서술하는 문단의 마지막 줄입니다.


형, 형께서는 이 부분에서 제가 말하는 ‘비약’이 다시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유서에 적힌 이 비약들이 저는 견딜 수 없이 분합니다. 단언컨대 그로 하여금 이런 비약을 가능케 한 목소리는 밖에서 오지 않았을 겁니다. 분명 그 목소리는 자신의 병든 마음에서 울려 퍼진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 학생의 죽음이 뉴스화됨으로 인해 이제 이 비약들은 오류가 아닌 명제로서의 힘을 갖게 되었어요. 이제 정말 이 사회는 세상의 불합리가 개인의 합리를 압도하고, 정신적 풍요가 물질적 궁핍에 박탈당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죽음을 각오하고 쓴 글에 그 아픈 단어가 언급되는 순간 더 이상 그것들은 풍자적인 신조어가 아니게 되었어요. 이제 그 단어들은 언론에 의해 더 강한 생명력을 얻을 것이며, 생명력을 얻은 그것들이 지시하는 의미들은 실체로서 존재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죽음으로써 증명하고 싶었던 게 이런 참혹한 명제였다는 사실에 저는 분함을 견딜 수가 없었던 거예요.


게다가 더욱 저를 분하게 만들었던 건 유서의 말미에서 그가 취하고 있는 여유로운 태도였어요. 그 학생은 자신의 사랑하는 동생이 “닭다리 하나나 더 뜯을 수 있게” 와서 부조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우울증 환자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제 우울증 환자로서 병에 대한 조언을 해요. “‘실질적’인 위로를 주는 것이 중요”하고 “근거도 없는 ‘다 잘 될 거야’식의 위로는 오히려 독”이라면서요. 그리고 실제 자신에게 실질적인 위로를 주었던 두 사람에게 감사와 사과의 마음을 전한 뒤, 자신의 정신은 살고 싶다며 이 글을 퍼뜨려 달라 당부하는 것으로 이 아픈 글을 끝맺습니다. K형, 그 학생이 호명한 두 사람은 이 글을 접하고 어떤 심정이 되었을까요. 그가 비로소 갖게 되었다는 여유는 책임을 다한 사람의 홀가분함이 아니었어요. 책임을 전가한 사람의 이기심이었습니다. 저는 어쩐지 남겨진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그의 여유가 분합니다.


지금까지 제 감정에 대해 분노가 아니라 분함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을  의아해하시겠지요. 그것은 제가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제 주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의 이야기였고 저에게는 이 사건에 참여할 명분이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형, 자격은 없지만 저에겐 ‘능력’이 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의 이야기에  먹먹해하고  분해하는 제가 여기에 있어요. 이런 저를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그가 죽음으로 떠나는 자의 신념을 증명했으니 저도 죽음으로 남겨진 자의 신념을 증명하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개인의 합리가 공동체의 합리가 되고, 또 그것이 체제의 합리가 될 수 있음을 삶으로 증명하겠습니다. 정신의 풍요가 물질의 궁핍을 위로하는 자리에 핍진성이 싹튼다는 것을 저는 삶으로 증명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살고 싶다던 그의 바람을 좌절시키고 말겠습니다. 다만 그의 죽음을 잊지 않으려 해요.


그러기 위해 사랑이 필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기회만 생기면 말씀드렸지요. 사랑이란 지키려는 힘이라고. 나의 마음을, 나의 사람들을, 나의 세계를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정으로 사랑을 아는 사람입니다. 저는 환멸을 거두고 사랑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니 저 역시 일종의 ‘확신범’이 되는 것 같네요. 하지만 진심입니다. 그는 투신하기 전 평소 가지고 다녔다는 메탄올을 마셨던 것 같아요. 양념치킨이 먹고 싶지만 메탄올 흡수 속도가 느려질까 봐 못 먹겠다거나 투신에 실패해도 눈을 잃게 될 거라는 내용이 적혀있었거든요. 어쩌면 그는 투신할 때 보게 되는 풍경을 직시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사랑을 하기 위해서 역시 그것을 저지하는 끔찍한 풍경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것을 가질 수 있을까요. 남은 이들과 함께라면 감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형께 드리는 편지인데 너무 무거운 이야기만 적은 것 같아요. 다음 편지를 쓸 때가 오기 전까지 좀 더 다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 제 마음 조금이나마 형을 따뜻하게 해 드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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