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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기 Mar 05. 2023

스즈메의 문단속 후기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을 볼 때면 ‘애틋한 그리움’의 정서를 느낀다. 공간이 아닌 세계의 단절이 만들어내는, 불가능성에서 비롯한 그리움이기에 그 ‘어찌할 수 없는 단절’을 목격하고 있자면 먹먹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단절이 단절로 남았던 것은 초기작뿐이고, 특히 최근의 재난 3부작에선 창조주(작가)의 권능을 부여받은 주인공들이 단절된 세계를 이어 끝끝내 만나고 마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성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자아와 타자가 있기 마련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와 정서가 보편성을 갖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10대가 있었고 그리워하는 것밖에 가능하지 않은, 이곳과 단절된 세계에 있을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의 이름은’이 과거의 ‘너’를 구원함으로써 현재의 내가 구원받는 이야기, ‘날씨의 아이’가 현재의 ‘너’를 구원함으로써 현재의 내가 구원받는 이야기라면 ‘스즈메의 문단속’은 현재의 ‘너’를 구원함으로써 과거의 내가 구원받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재난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세대의 단위로 삼을 수 있다면 재난 3부작은 감독이 지금 세대에 건네는, 가능한 모든 관점에서의 위로 같다.


문단속, 단속은 ‘둥글게 묶는다’는 의미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고 보살피는 노력을 형상화한 단어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선 열렸던 문을 닫고, 덮고, 잊는 것이 아니라 챙기며 보살펴야 한다는 메시지. 거시세계에서 현재가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너의 이름은), 현실 문제의 해결은 소수의 희생이 아닌 공동체의 참여가 필요한 일이며(날씨의 아이), 그러니 가능한 것은 오직 그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세계관이 점점 대형화되고 상업화되면서 인물 간 관계의 개연성이 조금씩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내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너의, 네가 나의 삶에 참여할 때 드라마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려내기 때문이고 작품을 거듭할수록 그 풍경은 점점 더 드라마틱해지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지속적인 성공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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