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다른 마음의 모습 그리고 표현의 방식
인간관계를 하다 보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고민한 사람이 상처를 받는다. (아닐 수도 있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므로 나의 경험을 되돌아볼 때 적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관계가 깊어질 때면 상대를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다. 사소한 대화를 하더라도 내가 혹시 상처를 준건 아닌지 늘 고민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기대를 할 때가 있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고 마음을 다했다 하더라도 그 누군가는 나와 마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마음의 크기와 표현의 방식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자주 그러지 못했다. 내가 다정하게 대했으니 상대도 나에게 다정하기를 바랐고 나는 이만큼 상대를 사랑하고 배려했으니 상대도 내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해주기를 무의식 중에 바라고 있었다.
관계에 있어서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자주 느끼게 됐다.
모순적이게도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두려워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를 자주 혼자 두었다.
사람들이 만나자고 하면 바쁘다고 핑계를 댔다. 물론 실제로 바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잠깐의 시간은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 관계가 조금이라도 깊어지고 가까워지는 것이 나에게는 큰 고민이었다.
“누군가와 깊어진다는 것은 결국 상실을 가져다줄 거야. 나는 또다시 마음을 쏟을 것이고 상대방에게 기대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외로워질 테고 이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미안해지는 일이야. 이런 잘못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집에 있을래.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시간을 잘 쓸 수 있고 재미있게 지낼 수 있어.”
이런 생각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동안 정말 꼭 필요한 만남 외에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이를 테면 가족, 가족과 같은 친구) 하고만 대화를 할 뿐 관계를 넓혀가지 않았다.
말실수를 줄이기 위해 말을 아끼듯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나 상처를 줄이기 위해 만남 자체를 줄였다.
여전히 나는 관계를 겁내는 편이고 여전히 관계를 어려워하는 편이지만 최근 아주 작은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며 열심히 노력도 하고 있고 감사하게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런 나를 넘치도록 사랑해주고 한결같이 옆에 있어주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전화나 메시지 또는 손편지를 통해 나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고 타인의 솔직한 마음을 듣기 시작했다. 마음의 크기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누구나 다를 수 있음을 부끄럽지만 이제야 조금씩 배워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상황과 감정에 대해서는 내가 표현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반면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상대가 나보다 더 잘 표현하고 나를 더 사려 깊게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
메시지에서는 조금 무심할 수 있어도 실제로 만나면 누구보다 다정한 친구가 있고 실제로 만났을 때는 표현에 서툴지만 메시지에서 조금 더 다정하고 적극적인 친구도 있다.
겉으로 다정하게 표현하는 것에는 어려워 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나를 걱정해서 내가 힘든 일이 생기면 나 자신보다 아파해주는 친구도 있다.
정말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각자 다 다르고 내가 표현하는 방식이 정답이 아닐뿐더러 누군가는 나의 방식이 불편하고 서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랑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나의 기준과 생각에 너무 갇혀있었고 익숙해져 있었다.
돌이켜 보니 관계에 있어서 나는 너무 어렸고 미숙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제 조금씩 내 안에 갇혀있던 생각들을 깨고 있는 중이다. 아마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걱정이 생기면, 특히 인간관계에서 고민이 생기면 혼자 해결하려고 애쓰는 편이라 최근에도 그렇게 끙끙대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가족들과 친구들이 나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큰 울림이 되었고 힘이 되었다. 순간 눈물도 나고 함박웃음도 나왔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어리숙하고 불완전하다. 관계 때문에 서운하고 기대하고 걱정하고 그런 날들이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의 틀을 깨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틀을 깨기까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노력을 한다면 분명 나 자신도 달라져 있으리라 희망을 가져본다.
분명한 건 내가 생각한 마음의 크기가 정답이 아니라는 거다. 누구나 표현에 익숙할 수 없다. 나부터도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와 다를 수밖에 없는 상대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오늘을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