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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파 유미경 Apr 10. 2020

완벽한 된장을 위한 변명

맛난 된장찌개를 먹게 되면 감사해야 하는 이유

지인에게 3년 산 토장을 선물했다. 내가 직접 담갔다는 기분에 들떠, 위문차 들고 갔지만 완벽한 된장은 아니었다. 물론 된장을 만들게 된 배경을 들려주고 ‘잘 걸러 먹어야 한다’고 덧붙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인이 그 된장을 좋아했는지, 잘 먹었는지는 모른다.

      

그 된장은 질감이 문제였다. 색깔과 향은 그럴듯한데 찰진 기가 없이 푸석푸석하고 군데군데 덩어리도 있다. 한마디로 ‘모냥’이 좀 빠지는 된장이다. 하지만 맛은 괜찮은 편이다.      


원래 전통된장은 이른 봄에 장을 담갔다가, 40~60일 후에 메주를 꺼내고, 간장을 걸러낸다. 간장을 빼지 않은 된장은 전문용어로 토장이라고 한다. 간장을 빼지 않았으니 당연히 토장의 맛은 진할 수밖에 없다.      


지난번의 장 담그기에는 장대한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여차저차 여러 사정이 생기면서 사연 많은 된장을 만들게 되었다. 


우선, 준비한 콩은 두 가지 품종이었다. 대원콩과 장단백목. 대원콩은 전국적으로 제일 많이 생산되는 콩이고, 장단백목은 우리나라 최초의 장려품종으로 파주 특산이다. 나는 메주와 장을 담기 위해 작은 전통장류업체의 공장을 빌렸었다. 대원콩 메주, 장단백목 메주, 대원·장단백목 블렌딩 메주 3종류를 만들 참이었다. 하지만 현지 공장 사정상 모든 콩을 섞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커피나 와인처럼 오리진(origin)과 블렌딩(blending) 장으로 구분해 보고자 했으나 처음부터 어긋나 버렸다.      

  

그다음 문제는 메주였다. 넓은 공간에 적은 양의 메주를 두다 보니, 메주 속은 띄워지지 않고 빨리 건조해지는 것 같았다. 급히 라면상자를 구해와 짚을 사이사이 넣고 메주를 다시 띄워봐도 별 소용이 없었다.      


장 가르기를 할 때 메주 문제는 불거졌다. 소금물 속에 50일이나 있었는데도 방망이로 두드려 깨트려야 할 정도로 메주가 단단했다. 그때 덜 풀린 덩어리가 3년 동안 항아리 속에서 숙성된 후에도 지금까지 군데군데 남아있게 된 것이다.        

햇볕과 바람 속에 장이 익어가는 모습

메주는 보통 제 무게의 1.5배 물을 흡수한다. 소금물을 많이 부으면 간장이 많이 나오고, 소금물을 적게 부으면 간장이 적게 나온다. 메주 1말로 장을 담그면 된장의 양은 정해져 있지만 간장의 양과 질은 천차만별이다. 우선 소금물을 얼마나 붓냐에 따라 다르고, 관리하는 방법과 숙성 연수에 따라서도 다르다.


한편, 된장과 간장은 숙성 연수에 따라 맛과 색, 향도 좋아지지만 항암, 항염, 면역증강 등 기능성도 좋아진다. 암 투병이라든가 특별한 경우 사람들이 많이 찾는 약간장, 약된장은 보통 5년~10년 숙성된 장이다.      


메주를 잘 띄우고 장까지 잘 담았으면 관리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된장에 가시가 생겨서도 안 되고 햇볕 아래 너무 마르게 두어서도 안 된다. 전문적으로 장을 담그는 업체에서는 1년이 지나면 결정을 해야 한다. 1년 산 제품으로 판매할 것인지, 더 숙성하여 2년, 3년 제품을 만들 것인지...장기간 숙성하려면, 그늘로 옮기거나 저온저장을 해야 한다.      


전통장은 날이면 날마다 만들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다. 커피 바리스타의 경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다 보면 빠르게 어느 경지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전통장은 1년에 단 한 차례만 장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최고의 장을 만들기 위해선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성은 기본이고 세월을 낚는 끈기도 필요하다. 전통장류 분야에서 장인의 반열에 오르려면 20년 동안 한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된장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된장을 만나게 되면 아낌없이 감탄하고 립서비스를 해도 좋은 것이다. 된장을 만드는 사람은 ‘맛있다’는 말에 분발하여 더 완벽한 된장을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직접 장을 담가보면 우리 곁에 있는 된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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