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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오림 Feb 27. 2023

03. 재능판별기는 아닙니다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능력



 

 지금생각하면 조금 우습지만 나는 늦깎이 대학생주제에 학교 생활을 매우 활발히 했다. 과대도 모자라 과에 한 명씩 있는 대의원이라는 직책도 맡았는데 그 덕분에 나는 각 과마다 한 명씩의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 15명의 친구들은 아직도 연락을 하면서 지낸다. 그래서 공연 '세상'과 '유오림은하'를 준비할 때 그 친구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러다 작년엔 대의원 친구 중 한 명인 K와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몇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시작은 앞으로 만들 콘텐츠였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는 피드백이 없는 예술활동의 고됨을 서로 성토하고 있었다.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잊었지만 딱 두 가지는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누나는 아직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네요. 저는 이제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라던  K의 말과 그의 표정. K는 정말로 지친 얼굴이었다. (원래 K는 지친 듯 생기긴 했지만.)








 20대 초반에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학원강사는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뒤늦게

학원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학원생은 주로 중고등학생들이다. 청소년기를 알차게 겪어본 반항아로서 그 시기는 굳지 않은 석고조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형체의 테두리를 더듬어가며 굳어지는 때에 듣는 어떤 말은 평생의 상처가 되기도 하고 어떤 말은 그 뒤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일단 그런 시기의 학생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인데 또 입시강사의 역할은 좋은 대학교 진학이라는 목표가 있다. 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내가 잘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시간이 지나 10년의 경력을 가진 강사가 되었다. 이제는 처음 강사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느낀 부담감과 책임감만큼이나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생겼다. 그 사이에 만난 많은 친구들과 그 친구들이 이뤄낸 성과들 덕분이다. 그래도 여전히 확신하기 어려운 부분은 상담시간에 찾아온다. 


 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상담을 할 일이 생긴다.

대게 취미로 음악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제가 잘하려면 몇 달을 공부해야 할까요? '

입시생이라면 '저는 어떤 학교를 갈 수 있을까요? ' 하는 질문이 가장 빈번하다.

부모님들은 이보다 훨씬 근원적인 것을 물으시는데,

'우리 아이가 음악에 재능이 있나요? '라는 질문이다.

음악적 재능이란 분명 타고나는 것이 존재한다. 별다른 노력을 안 해도 음감이 좋다던지, 음악적 센스가 있다던지, 악기를 금방 이해하고 연주할 수 있다던지 하는 그런 재능들 말이다. 만약 이것으로 음악재능 판별 문답지를 만든다면 이렇다. 


1. 몇 번 듣지 않아도 음악을 쉽게 외울 수 있나요?

2. 악기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연주를 잘할 수 있나요?

3. 모든 소리를 음정으로 표현할 수 있나요?

4. 처음 듣는 소리를 바로 악기로 표현할 수 있나요?

5. 들리는 반주에 맞춰 선율을 만들 수 있나요?


여기에서 3개 이상 해당되는 재능을 타고 난 친구들은 너무나도 눈에 띄기 때문에 보통은 나에게 묻는 일이 없다. 본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오래도록 강사를 해 온 사람으로서 그 친구의 현재상태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잠재력까지 고려해서 묻는 것이다. 잠재력을 알아보는 것도 어려운데 내 대답에 따라 학생의 미래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도 대답을 어렵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이제는 쓰지 않지만 나와 함께 하는 똑딱이(메트로놈)



그러나 나는 이 재능이라는 것에 관련해서 대답을 찾은 한 친구를 알고 있다. 

그의 부모님이 '우리 집안엔 음악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가 한 명도 없다'는 말씀처럼 그 친구는 저 위의 음악재능 판별 문답과 상관없는 10대 시절을 보냈다. 남들이 간다길래 따라 보냈던 피아노 학원에서도 선생님이 시키는 연주는 않고 엉뚱한 짓만 해대서 또래 친구들이 나가던 대회는 구경 한번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음악과는 연이 없는 아이로 지내던 중 돌연 장학금과 함께 입학한 공대를 입학 취소하고 돈을 벌어 음악 학원을 다니더니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할 수 있을만한 음악가가 되었다. 

이것은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재능 있고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는 그걸 할 수 있을 만한 재능이 없다. 너 같은 애들은 할 수 없다. 음악 전공이라기엔 부족하다. 좋은 예술대학으로의 진학이 어려울 것 같다. 

모두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들어온 말이다. 아무에게도 응원받지 못한 내게 단 한 가지 재능이 있었다면 음악을 좋아하는 능력이었다. 음악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 나도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 공부를 할수록 내가 만들고 싶은 음악에 가까워지는 것을 즐기는 열정, 내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가 만든 음악이 좋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긴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능력을 확인해 온 나는 이 힘을 믿는다. 그리고 이 힘은 타고난 재능을 앞설 만큼 강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나에게 어떤 재능이 없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는 가지고 있는 재능의 결핍을 생각하기보다 내가 정말로 그것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진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았을 때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좋아하는 능력으로 재능을 이긴 케이스 1호가 재능 없는 여러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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