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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혜 Mar 27. 2024

03. 밥 사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내 친구

세상에 이런 친구 없습니다.

친구가 데려가준 구미 맛집


퇴사한 이후로 3개월 동안 수입이 0원이다.

그동안 저축한 돈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계좌에 찍힌 잔액이 점점 사라지는 걸 보니 이젠 밥 한 끼 사 먹는것도 부담스럽다. 이러려고 퇴사한건 아니었는데 막상 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을 보니 속상하다. 회사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거의 못 갔다. 퇴사하고 나면 국내든 해외든 마음껏 놀러 다니는 자유의 영혼이 될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혹시나 백수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까 봐, 내가 원하는 회사로 이직을 못할까 봐 하는 불안감에 여행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다가오지도 않는 미래에 불안감에 떨고 있을 때, 고향 친구가 나를 숨 쉬게 해줬다.


중학교 때 같은 학원을 다니면서 친해진 우리는 14살 때부터 지금까지 단짝으로 지내고 있다. 대학생 때 내가 서울로 떠나면서, 20대 후반에는 친구가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면서 10년 동안 거의 보지는 못했다. 그래도 가끔씩 통화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알고 지냈다. 그리고 인생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2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전화로 위로해 줬던 소중한 친구다. 퇴사 후 대구로 내려오자마자 친구가 놀러 가자고 연락했다. 


직장인 시절, 1주일에 최소 3회 이상은 밤 10시가 넘어가도록 야근의 연속이었기에 주말은 거의 집에서 쉬었다. 그래서 늘 내가 사는 동네에서 행동반경이 벗어나지 않았다. 친구가 그런 나를 위해 대구 근교 맛집, 카페 등 좋다는 곳은 다 데려가줬다. 


나: “넌 이미 다 가봤던 곳인데 또 가도 괜찮아?”       

친구: “응, 넌 그동안 못 가봤잖아. 쉴 때 좋은 곳 많이 가보자”

친구: “우리 다음 주에 구미 갈래? 내가 커피 쏠게!”

       “청도에 미나리 삼겹살 먹으로 가자! 내가 쏠게”


친구는 만날 때마다 한 번이라도 더 사주려고 한다. 심지어 항상 우리 집까지 와서 픽업해 주고 데려다준다. 사실 친한 사이에도 이렇게까지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 우리 가족도 잊고 있었던 내 생일을 친구는 기억하고 대구에서 유명하다는 딸기 케이크를 들고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왔다. 


그 친구 덕분에 토요일을 기다리면서 평일을 열심히 보낼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이 친구 한 명뿐이지만 이 친구를 알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가정사부터 연애사, 직장 고민 등 나의 모든 히스토리를 알고 있고 막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고 든든하다. 


최근에 이 친구랑 술을 마시는데 본인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가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맛있는 거를 사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깜짝 놀랐다. 보통은 자기가 좋아하는 옷이나 취미 생활, 좋은 차나 집을 갖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하는데 이 친구는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많이 사주고 싶다고 하니 신기했다. 속으로 나는 복받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 친구한테 정말 잘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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