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의 별명은 황비홍이었다. 나는 얼굴에 비해 이마가 아주 넓은 편이다. 그래서 넓은 이마를 가리려고 앞머리를 자르고 늘 이마를 가리려고 했다. 엄마는 내 이마가 볼록 튀어나오고 훤하게 넓어서 예쁘다고 앞머리를 뒤로 넘겨주곤 했지만 나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는 손길이 싫고 불편했다. 그래서 자꾸만 고개를 숙이고 앞머리를 앞으로 정렬시켜 넓은 이마를 가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크게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이 일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아주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를 지우기 위해 아예 내 기억에서 그 일들을 삭제해 버린 듯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기억과 감정이 뚜렷하게 올라왔다.
나는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방송에서 하는 KBS 어린이 노래자랑에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 소은이와 매일 연습을 했다. 소은이는 노래를 잘했고 아이들 사이에서 소위 '짱'으로 통했다. 소은이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서 소은이 말이라면 누구든지 복종했다. 그런 소은이는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주인집에 같이 세 들어 사는 세입자의 아이였다. 우리는 서로 많이 달랐지만 집도 같고 부모님끼리도 친했기에 친하게 지냈다. 내가 느끼는 학교에서의 '짱' 소은이와 옆집 친구로서의 소은이는 참 많이 달랐다.
소은이와 나는 열심히 노래를 연습하고 KBS 어린이 노래자랑 예선을 봤다. 우리는 보기 좋게 한 번씩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예선을 치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운이 좋게 우리는 둘 다 예선에 합격을 했고,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기뻤다. 나는 인기도 많고 노래도 잘하는 소은이가 일등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소은이도 자신이 일등을 할 거라고 생각을 했었나 보다.
처음으로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관객이 있는 곳에서 노래를 했다. 많이 떨리긴 했지만 소은이와 함께여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대회는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나는 엔딩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등. 1등을 하고 엔딩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소은이의 마음을 챙길 정신도 없었다. 집에 갈 시간이 되었을 때 소은이가 어떻게 집에 갔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학교에서 극심한 왕따를 겪게 되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를 놀려 대기 시작했다. 노래도 못 부르는 게 노래자랑에서 1등을 했다고 비난을 했다.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비난하는 가운데 소은이는 그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의 비난 소리보다 소은이의 노랫소리가 더 크게 내 마음을 찔렀다. 아이들의 눈빛과 찡그린 얼굴 하나하나가 다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느꼈다. 나는 용감하고 힘도 센 편이었는데 아이들이 모두 하나같이 뭉쳐서 나를 비난하자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노래자랑에서 1등을 하기 전에 소풍에 가기 위해 마련한 예쁜 옷이 있었다. 분홍색 재킷이었다. 그런데 소풍 당일이 되자 아끼던 그 옷을 입기 싫었다. 친구들이 옷을 가지고 나를 놀릴 것 같았다. 색도 너무 튀고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내 이마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얼굴이 너무 까맣게 느껴졌다. 분홍색 재킷을 입자 피에로 같았다. 나는 그 옷을 입고 아이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다. 나는 소풍 내내 기가 죽고 풀이 죽어 있었다.
그 소풍이 지난 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왕따를 겪고 있고 소은이가 왕따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화가 난 엄마는 바로 전학 수속을 밟았고 나는 인근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왕따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때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꼈다. 나는 왕따가 싫었지만 그 학교가 좋았다. 넓은 운동장도 좋았고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아이도 있었다. 무엇보다 모든 환경이 달라진다는 게 싫었다. 아니 환경의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을 친다는 느낌이었다. 왕따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숙제로 내 마음속에 묻었다. 그리고 마치 왕따를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아이처럼 새로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왕따를 당한 것은 비단 나 하나뿐이 아니다. 학교에는 늘 왕따가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나는 계속해서 왕따를 봐왔다. 어떤 아이는 너무 잘나서 왕따가 되었고, 어떤 아이는 지적으로 떨어져서 왕따가 되었다. 외모가 이상해서 왕따가 되는 아이도 있었다. 왕따를 한 번 당하고 나면 사람이 두려워지고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걸 꺼리게 된다. 다시 말해 튀는 행동을 하면 왕따가 될 수 있으니 튀는 행동이나 말을 삼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 평균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닌 것을 배척하는 마음을 배운다.
학교라는 공간은 배울 것이 많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재밌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매해 새롭게 바뀌는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적응을 해야 하고 선생님과 반 친구들과 친하게 잘 지내야 한다. 처음 학교를 갈 때의 막막함, 그리고 방학이 끝나고 친구들을 다시 볼 때의 자극, 학년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두려움. 성인에 비해 아이들은 많은 것들에 적응해야 하고 많은 것들에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매해 회사의 팀이 바뀐다든지 팀의 사람들이 바뀐다든지 하면 그것에 적응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들고 마음도 힘들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은 빠르게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집단에 속하지 못한 아이들은 더 큰 불안을 느낀다. 집단에 속한 아이들은 비슷한 옷차림과 비슷한 말투와 비슷한 외모를 추구한다. 어쩌면 이게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이 적응해 나가는 한 방법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왕따 사건도 이런 아이들의 불안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닐까 한다.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보다 다른 친구들보다 더 잘 나가고 싶은 경쟁의 마음이 더 앞서고, 누군가가 더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 그 재능을 꺾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아이들이 못됐다고 볼 수만도 없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임을 선생님을 통해 부모님을 통해 성적을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너무 튀거나, 너무 잘하거나, 혹은 너무 못하면 따돌림을 통해서 평균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한다. 평균에 가까운 나머지 친구들과의 유대를 공고히 해 나가려고 한다.
학교가 조금 더 개성 있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한 가지 잣대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재능으로 모두가 다른 의미 있는 단 하나의 존재임을 알아주는 곳이면 좋겠다. 이마가 좀 넓더라도 얼굴에 큰 점이 있거나 피부에 부스럼이 있더라도 그것이 그 아이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주는 곳이면 좋겠다. 누구는 피아노를 잘 치고, 누구는 노래를 잘 부르고 누구는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이 서로의 재능과 다름을 인정받는 곳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