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남편이 끓여준 새해 떡국의 맛

대충 하는 법이 없는 남편이 끓인 떡국의 정석

 최근 남편은 정말 바빴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긴 한 숨을 내뱉다가 결국 맥주를 한 캔 마시고서야 잠에 들었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을 할 때에도 얼굴을 찡그렸다.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얼굴은 어두컴컴했다. 얼굴을 좀 피고 다니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 말이 들리겠나 싶어서 나는 그저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그런 남편이 새해라며 떡국을 끓여주었다. 

 요리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반가웠다. 신혼 초에 남편은 자주 나에게 요리를 해 주었다. 남편은 파스타 같은 면 요리도 잘하고, 스테이크도 아주 맛있게 잘 굽는다. 요리는 정석대로 해야 한다며 여러 가지 레시피를 보고 분석해서 가장 최고의 레시피를 적용한 맛있는 음식을 내주곤 했다. 신혼 초의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반갑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떡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떡국이 얼마나 맛있겠나 기대하지 않았다. 


 남편이 한 시간 가량 걸려 정성스럽게 떡국을 끓여 왔다.

 아이와 함께 둘러앉아 떡국을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깍두기와 함께 떡국을 먹는데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떡국은 처음 먹어봤다. 배가 고팠던 이유도 있었지만, 진한 멸치 육수와 얇게 썰었지만 적당히 익어서 쫀득한 떡의 식감, 그리고 적당량의 김과 달걀 고명, 짭조름하게 볶은 소고기가 어우러져 어느 곳에서도 사 먹지 못할 맛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한 개만 먹겠다고 해서 길쭉한 만두도 하나 넣었는데, 그 만두는 또 어쩜 그렇게 맛이 있는지 새해 다이어트를 이유로 만두를 한 개만 먹겠다고 한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그렇게 내 입맛을 확 트이게 만들어준 떡국. 나는 아이가 남긴 떡국까지 마다하지 않고 후루룩후루룩 다 들이켰다. 남편은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정작 자신은 많이 먹지도 않고 우리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남편은 하나의 떡국을 끓여도 깊은 맛, 밖에서 사 먹을 수 없는 최고의 맛을 낸다. 나 같으면 대충 멸치 육수를 내서 떡과 만두를 넣고 후다닥 떡국을 만들어 내겠지만, 남편은 멸치의 똥을 따서 프라이팬에 멸치를 볶아 냄새를 제거한 뒤 정성스럽게 육수를 내고, 소고기 핏물을 빼서 간장과 맛술에 재고, 달걀도 노른자와 흰자를 나누어 부쳐서 정성스러운 모양으로 고명을 만들고, 떡과 만두를 다른 시간에 넣어 그 둘의 익힘 정도가 딱 알맞게 해낸다. 떡국 끓이는 모습 하나만 봐도 남편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정석을 좋아하는 사람, 빈틈이 없는 완벽한 계획성을 가진 사람이다. 작년 초, 아이를 낳고 차를 바꾸게 되어 우리는 5년가량 탄 차를 시누에게 팔았다. 시누는 그 차를 받으면서 오빠가 왜 일을 잘하는지 알겠다고 말했다. 오빠가 차를 팔고 사는 모든 일 처리를 완벽하게 해 줬는데, 집에 가려고 내비게이션을 켰더니 <우리 집>에 시누의 집 주소가 이미 저장되어 있었다고 하며, 이렇게 일을 하니 인정받지 않을 수가 있느냐며 극찬을 했다. 시누는 모든 행정 처리를 편하게 해 주는 원스톱 서비스를 받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어느 하나 빠진 것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해내는 남편의 계획성과 실행력은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니 남편이 회사에서 얼마나 힘이 들까. 

 회사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인정과 기대를 받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비디오처럼 보인다. 일을 하는 것 역시 떡국을 끓이는 것처럼, 시누이의 차 내비게이션이 집 주소를 입력해 놓은 것처럼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세세히 신경을 쓰느라 얼마나 힘이 들고 고될까. 그리고 그 일의 결과물 또한 밖에서 사 먹을 수 없는 떡국의 맛처럼 얼마나 만족스러울지 예상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더 일이 몰리고 몰린 일을 완벽히 처리해 내기 위해서 힘이 들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그렇게 힘들면 일을 대충대충 하라고 말을 할 법도 하지만 그렇게는 말하지는 않는다. 우리 남편의 가장 큰 장점이 일을 이토록 계획적이고 완벽하게 해 내는 것인데 대충대충 하라고 말을 한들 남편이 바뀌지도 않거니와 그 말은 곧 남편의 장점을 없애버리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다만 들어오는 일을 다 받지 말고, 현재에도 일이 많다는 것을 끊임없이 어필하라는 말은 한다. 


 새해 떡국을 먹으며 남편의 회사일이 얼마나 힘이 들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것이 보람으로 다가와 남편에게 의미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남편의 경험들이 사람들에게 기대와 인정을 받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의 삶과 마음에 진열되고 정리되어 남편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떡국의 맛으로 우리 가족의 마음이 풍요로워진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바라는 한 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