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힘에 부치는 일이 닥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
2024. 7. 16. 화
우리집 거실에는 2명이 나란히 앉아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긴 책상이 있다.
집 나간 전남편 유책이가 제정신일 때 아이들을 위해서 구입한
거실공부책상 이었다.
안타깝게도 전남편의 제정신이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불혹의 나이 40대가 되자 불륜을 하고 상간녀와 살겠다며 집을 나갔다.
아마도 유전 아닌가 싶다.
시아버지란 사람은 며느리를 보고서도 바람을 피웠고 그런 아버지를 싫어하던 유책이는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노라 했지만, 시아버지의 바람기가 절정이던 그 나이대에 데칼코마니처럼 바람을 피웠고, 본인의 아버지보다 한술 더 떠서 상간녀와 살겠다고 집까지 나가버렸다.
어찌됐건 그 원목책상은 꽤나 무겁고 튼튼했다.
퇴근 후 아이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녁을 준비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삶은 늘 나에게 녹록치 않았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삶의 의미가 되어주었다.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써도 될만큼 끄덕도 없던 책상다리가
어느날부터인가 삐그덕 거리더니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제발 더 이상 고장나지 말길 바라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어느날 저녁
책상은 한쪽으로 더 기울더니 와장창 큰소리를 내며 책상위의 모든 것들을 쏟아냈다.
정적이 흘렀다.
이제는 집안의 물건이 고장나거나 부서졌을 때 치워줄 사람이 없다.
일단 책상 다리부터 정리해서 현관밖에 내놓고
상판을 들어올리려고 했더니 꿈쩍도 안했다.
원목이 이렇게 무거운거구나...
질질 끌어서 현관앞까지 끌고 오는데도 땀이 났다.
현관 앞 2MM의 턱을 넘지 못해 억지로 억지로 들려고 하다가
순간 원목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꺽여버렸다.
너무 아프니 비명조차 안나왔다.
그럼에도 부서진 책상 잔해를 다 밖으로 꺼내놨다는 안도감과
아이들에게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너희들의 보호자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날 나는 엄지손가락 관절이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일 아침 출근하면 잠깐 외출내서 당장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과는 달리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병원가기를 미뤘다.
그랬더니 엄지손가락 관절 통증의 강도가 점점 더 세지고 오래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판을 치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병세가 악화될때로 악화된 후에야 회사 앞 정형외과를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의사선생님은 나의 오른손을 이리저리 돌려보시더니
관절염이 왔다고 하면서
물리치료 및 약을 먹어보고 안낫으면 주사도 맞자고 하셨다.
물리치료는 촛농같은 물에 손가락을 담그는 것 10회와
적외선 치료었는데
적외선 치료를 위해 침대에 15분 누워있을때가 제일좋았다.
2-3번의 물리치료를 받자 아직은 젊은 중년의 내 몸은 엄지손가락 관절염을 훌륭히 이겨냈고
자판을 칠때마다 느꼈던 통증도 사라졌다.
그러나 그동안 먹었던 관절약이 독했던건지 밥을 먹으면 다음날까지도 소화도 잘 안되고 두통이 오면 눈까지 아플 정도로 심하게 오기 시작했다.
그런 두통이 오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오른쪽 눈의 건조함과 불편함이 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