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책이는 매주 월요일이 정말 즐거웠을 것이다
23년 3월 한 달은 상간소송을 위한 소장 작성 및
추가 증거수집에 쏟아부었다. 무급 휴직 중에
자격증 따려고 시작한 컴활은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었다. 한가롭게 자격증 공부가 할 때가 아니었다. 유책이가 출근을 하면 후다닥 거실 컴퓨터를
켜놓고 수십 번을 새로고침 하며 윈도우 사진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본인은 얼리어답터 라며 거실 컴퓨터 업데이트하면서 자신의 핸드폰과 연동시켜 놓은 걸 새까맣게 까먹은 유책이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거실 컴퓨터 윈도우 사진첩으로 쏙쏙 들어왔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노랗고 앙증맞은 산수유 꽃사진이 거실 컴퓨터로 들어왔다. 남들은 바쁜 출근길인데 유책이는 꽃도 찍고 여유가 넘치는 모양이다. 상간녀 만나는 출근길에 월요병이 있을 리가.
유책이는 매주 월요일이 정말 즐거웠을 것이다.
변호사는 서로 사랑한다는 대화까지 있음 더 좋겠다며 추가증거를 요구했다. 그때 당시 나는 블랙박스에서 유심칩을 어떻게 꺼내는지, 그 유심칩을 어떻게 보는지도 몰랐다. 아는 동생이 유심칩을 보려면 리더기라는 게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줘서 그때 리더기도 처음 사봤다. 거의 매일 차를 회사나 상간녀 집 상가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유책이었지만 고맙게도 금요일은 집에다 차를 놓고 술을 마시러 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유책이는 항상 자동차키 두 개를 다 들고 다녀서 쉽게 블랙박스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나는 새벽에 다시 일어나서 몰래 차 키를 들고 유책이 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해야 했다. 차 안에서 스피커 폰으로 통화하는 유책이 덕분에 매일 출퇴근길에 상간녀와 사랑을 속삭이는 대화는 물론 조퇴내고 모텔 가자는 것과 그냥 확 들켜버려서 이혼하고 같이 살자는 말, 상간녀와 같이 먹는 밥은 개밥도 맛있다는 역겨운 대화들을 쉽게 모을 수 있었다.
상간녀도 유부녀였는지 남편이 온 거 같으니 빨리 전화 끊자는 대화와 너도 와이프에게 조심하라는 말,
새 학기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우리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 상간녀의 주제넘은 대화 모두를 속기록에 남겼다.
상간소 승소를 위한 증거- 서로가 유부남 유부녀임을 알고 있었는지의 수집도 완료됐다.
끓어오르는 전투력을 모아서 변호사 사무실에 보내준 소장 초안 샘플을 보며
상간소를 하기 위한 소장 초안을 작성했다.
청구취지
원고는 피고(상간녀)에게 손해배상금 31,000,000원 청구하는 바입니다.
1. 원고와 유책이가 혼인한 경위(안 만났으면 더 좋았을 우리)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사회 초년생인 스텔라가 입사한 회사에 2-3년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유책이가 있었습니다. 같은 직장에서 만난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면 1년여 교제를 하고 결혼을 하였습니다.라고 쓰는데 그때의 풋풋한 감정이 떠올라 괴로웠다.
그때 나 좋다고 한 남자가 2명 더 있었는데 왜 이 사람을 골라서 내가 지금 이게 무슨 꼴인지. 나 따라다니던 다른 남자직원은 간간이 들리는 소식으로 애처가에 가정적이라던데. 그 남자가 지금 내 남편이 아니라니 너무 아까웠고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2. 혼인생활 (그래도 잘 살아보고 싶었는데)
원고는 유책이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자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유지하였으며 자녀양육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시가 부모님은 물론 시할머니를 모시는 일에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사랑의 결실인 두 아이가 태어났고 순탄하게 소박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유책이도 다정한 아빠는 물론 듬직한 가장으로서 가정에도 충실했습니다.
상간소를 하기 위해 미화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거짓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행복할 때도 있었다. 분명 과거엔 이렇게까지 미친놈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유책이가 이렇게 정신 나간 사람이 되었나
가슴이 아팠다.
3. 외도를 알게 된 경위(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계기)
22년 9월부터 유책이는 조금씩 귀가시간이 늦어지더니 주말 휴일도 없이 일을 해야 한다며 출근을 하는 게 수상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책이가 낯선 여자와 찍은 사진과 호텔예약 내역을 보게 되었고, 남편의 외도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할 말이 많은 부분이었고 구구절절 써 내려갔다.
4. 결어
원고는 피고와 유책이의 불륜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원고의 고통을 헤아려주시어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상간소가 제일 쉬운 소송이라고 했다. 빼박증거만 있으면 소송에서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이 논리로 따지면 나는 이기는 소송을 시작한 거였다. 내가 의뢰한 변호사도 증거를 보고 질 것 같은 사건은 맡지도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모든 증거거 차고 넘쳤다.
그 여자의 핸드폰 번호로 통신사 조회도 마쳤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최태원이 사장으로 있는 sk텔레콤이었다. 소장 발송을 위한 초본도 발급받았다. 드디어 그녀가 사는 주소를 알아냈다. 우리 집 거실, 안방, 작은방에서 보이는 아파트가 그녀가 사는 집이었다. 유책이가 술만 마시면 차를 놓고 오는 곳이 그 여자가 사는 아파트의 상가주차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아직은 그 여자가 뭐 하는 여자인지, 직장이 어딘지 몰라서 소장은 집으로 보내기로 했다.
예정대로라면 4월 6일 소장이 그 여자네 집으로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4월 6일은 그 둘이 사귀기 시작한 지 200일이 되는 날이었다. 200일 축하선물로 소장을 날렸다는 생각에 통쾌함도 느꼈다.
내가 불륜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 여자 소장을 받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숨겨야 했다.
은밀하다고 생각했던 불륜이 이제는 더 이상 은밀하지 않으며
그릇된 욕정은 세상의 비난을 받게 될 거라는 것.
법원에서 날아온 소장으로 두 사람이 충격을 받고 서로 싸우면서 사이가 틀어지게 되길 바랐기 때문에
나는 철저하게 모르는 척했다.
멍석말이를 해도 부족한 유책이의 생일이 소장 도달 전에 끼어 있어서 매년 그랬던 것처럼 생일상을 차렸다.
미역국을 끓이고 겉절이도 새로 담갔다.
잡채를 하고 튀김도 만들고 과일, 떡, 좋아하는 회에 초밥도 사다 놨다.
‘내 생일은 12월이니깐 내 생일 전까지는 이 모든 걸 다 정리하고 연말에 우리 4 식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올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하루 종일 요리를 하며 수없이 다짐했다. 이 남자의 바람을 내가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철저하게 오만한 생각이었다. 시어머니도 남편 바람 때문에 수면제 없으면 잠을 못 자고 신경쇠약으로 약을 먹고 계셨는데 내가 DNA에 박힌 바람 유전자를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유책이는 약속이 있어서 생일날도 늦는다는 했지만 아이들 성화에 떠밀려 마지못해 집으로 오고 차려놓은
생일상에 앉았다. 정말 오랜만에 집에 온 아빠를 봐서 신이 난 아이들은 직접 쓴 카드와 편지를 줬다.
솔직히 나는 정말 주기 싫었지만 구색 맞추기용으로 준비한 화장품을 선물로 줬다.
‘과연 나도 12월에 유책이에게 내 생일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대로 유책이 와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은 두려운 마음도 들었고
바람피우는 남편을 껍데기만 데리고 사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위태위태한 하루가 이렇게 끝나고 다다음날 이른 아침 소장은 그 여자 집으로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