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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25. 2024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얼마 전 브라이튼에 사는 샐리로부터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샐리는 과거에 내가 브라이튼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두 번째로 살게 된 집의 호스트마더였는데, 그곳을 떠나온 이후에도 2-3년에 한 번씩은 내게 연락을 해왔다.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영국에 정착한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안부 인사와 함께 브라이튼에 놀러 올 일이 생기면 꼭 들르라는 당부를 전했다.


브라이튼, 떠나온 이후 내가 그곳을 좋은 기억으로 떠올린 적이 있었던가.


한국 유학원과 어학연수받을 학교를 통해 예약한 나의 홈스테이 하우스는, 내가 바란 조건(샤워가 딸린, ensuite 방)은 충족했지만, 너무나 좁고 지저분한 집이었다. 특히 집의 다락방을 개조해 만든 방은 겨울에 야외 텐트에서 자는 같은 착각이 정도로 추웠고, 그마저도 아들(당시 24세였지만 독립하지 않은)쓰던 방을 내가 뺏은 격이 되어 마주칠 때마다 그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매달 내는 돈은 700파운드였는데, 수입없으면 생활이 빠듯한 보였던 가족. 호스트마더는 스페인 사람이었고, 남편은 영국인이었는데 둘 다 은퇴를 건지 집에 있었다. 그 집에서 지낸 지 3주 정도 됐을 때 호스트마더가 친정에 다녀온다며 스페인으로 떠났다.


주인아줌마가 떠난 지 일주일 째 되던 날, 아저씨는 갑자기 저녁 식사 준비를 도와 달라며 나를 주방으로 불렀다. 아침에 시리얼을 먹으러 혼자 들락날락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둘이 서 있어 보니 비좁았던 주방. 불편한 마음으로 언제 나갈까 기회를 엿보고 있던 나는, 그의 말 한마디에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이렇게 같이 식사 준비 하니까, 네가 꼭 내 와이프 같다. 너, 와이프가 식사 준비 말고 또 뭘 하는지 아니? 바로 make love(성관계)."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극도의 공포가 몰려왔다. 내 앞으로는 칼과 프라잉팬 같은 것들이 있었고, 서랍을 열면 포크도 있었다. 일단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무기의 위치를 확인했다. 평소 범죄 수사물 애청자인 나는 머릿속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이자는 남자이고 키가 크긴 하지만, 나이가 많고 근육이라곤 전혀 없는 슬림한 체형이므로, 만약 그가 공격해 온다고 해도 빠르고 힘이 센 나는 도망가거나 급소를 공격해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아무 반응이 없는 나를 보고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다시 그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단시간에 긴장한 채로 두뇌를 풀가동 해서인지 갑자기 현기증을 느낀 나는 머리가 아파 저녁을 못 먹을 것 같다고 말한 뒤 방으로 올라갔다. 영국의 방들은 잠금장치가 없기 때문에 장롱을 문 앞으로 옮겨 놓을까 하다가 그럼 큰 소리가 날 것 같아 의자를 방 고리에 비스듬히 끼워두었다. 그리고는 책상 앞에 앉아 내가 다니던 어학원에 (그 집에 단 하루도 더 있을 수 없는 이유와 함께 당장 홈스테이 하우스를 바꿔달라는) 긴급 요청 메일을 썼다. 다음 날 바로 집을 바꿀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3일 후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생겼고, 그렇게 샐리의 집으로 쫓기듯 이사했다.


샐리는 12살의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전업주부였다. 남편은 가구 사업을 크게 하는 그리스 사람이었는데, 젊은 시절 항공사 승무원이었던 샐리에게 비행기에서 첫눈에 반한 스티븐이 적극적으로 대시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브라이튼 부촌 한가운데 대출 없이 산 아름다운 집에 살던 샐리는 딱 한 번 일본인 여학생을 홈스테이로 받은 적이 있었는데, 예의 바르고 얌전한 그 학생에게 반해 '동아시아에서 온 여학생'만 받겠다는 의사를 어학원에 전달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조신한 학생이었던 나는 그렇게 어학원의 주선으로 샐리네 집으로 들어갔다. 리모델링을 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깨끗하고 세련된 곳이었고, 똑같이 700파운드를 내고 첫 번째 집보다 네 배나 큰 방과 욕실을 나 혼자 쓰게 되었다. 12살의 쌍둥이 아이들은 브라이튼의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방과 후에 늘 럭비 시합을 가거나, 승마를 하고 악기를 배우러 다니느라 집에는 저녁 식사 때가 되어야 귀가했다.


샐리는 많이 외로워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던 그 집이 홈스테이를 했던 이유도, 샐리에게 이야기 상대가 필요해서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외로움은 확연했다. 첫눈에 반한 상대와 불같이 사랑하다 결혼해 십 년 넘게 살았는데 그토록 관계가 틀어질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샐리와 스티븐은 아이들 교육에 관해 필요한 대화만 하고 거의 남남처럼 지냈다. 샐리는, 자신과 열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나를 친구처럼 대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함께 마시자며 밥 먹고 방에서 쉬는 나를 저녁마다 불러냈다. 다른 사람의 사연에 관심이 많고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샐리에게 점점 중요한 존재가 되어갔다. 함께 외식하거나 주말에 어딜 놀러 가는 일도 잦아졌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일찍 귀가했는데 집에 손님이 와 있었다. 백발의 노신사, 자신을 켄이라고 소개한 그는 너무나 근사한 정장을 입고, 숀 코너리 같은 우아함을 풍기며 나를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다시 샐리와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샐리는 내게 외식을 하러 좋은 레스토랑에 갈 테니 예쁜 드레스가 있으면 입으라고 귀띔해 주었다. 쌍둥이들은 나비넥타이에, 매일 청바지 차림이던 스티븐 역시 정장을 입고 샐리는 말 그대로 갈라쇼 드레스 차림으로 내려와 1층 홀웨이에 모여 있었다. 나는, 살짝 언더드레스드 느낌이 들었지만, 높은 하이힐을 신었기에 넘어지지 않으려 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민망함은 금세 잊었다. 근사한 레스토랑 입구에 들어서서 샐리가 예약자 이름을 말하는데, 어라, 켄, 이라고? 뭔가 나만 모르는 계획이 있었구나,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식기와 글라스들이 복잡하게 세팅된 원형 테이블에 켄이 앉아 있었고, 나는 그들 모두의 계획에 의해 그 잘생긴 부자 할아버지 옆에 앉혀졌다. 나를 향해, 'stunning'을 연발하는 켄이 이상했는지 쌍둥이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키득거렸다. 마흔 살이나 적은 나는 쌀포대를 뒤집어쓰고 있었어도 그의 눈에 젊고 예뻐 보였을 테지. 그렇게 서빙되는 음식을 모두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웃지 않은 채 저녁을 먹고 귀가했다. 샐리에게, 왜 내게 미리 물어보지 않았는지 묻자, 켄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고 사실 그는 돈이 정말 많을 뿐만 아니라 젠틀하고 나이스한 사람이어서  한 번 식사를 함께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많은 남자와 결혼한 샐리는, 내 질문의 핵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 몇 번 켄을 집에서 마주쳤는데, 너무 불편해서 그를 피하기 위해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날이 아졌다. 그리고 샐리의 모든 요청에 no를 하며 조용히 브라이튼에서의 어학연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내가 그 집을 떠나는 날, 샐리는 많이 울었다. 친구는 예전에 잃었지만, 이제 정말 물리적으로도 못 본다고 생각해 슬퍼졌는지, 아니면 친구처럼 잘 지내던 내게 일언반구도 없이 억만장자 할아버지를 소개해 주려 한 일에 대한 후회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계속 울었다. 그렇게 울면서도 끝내 미안하단 말은 하지 않았다.


남편과 연애할 때, 이 두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당장 찾아가서 혼내줄까? 라며 연애하는 상남자의 열정을 보이던 남편. 어제 그에게, '샐리에게 연락 왔었어'라고 얘기하니, '당신 동의 없이 부자 할아버지랑 소개팅해주려고 했던 호스트맘?'이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기억이 확장되어 첫 번째 집에서 내가 겪은 일이 생각났는지,  브라이튼에 가서 마무리 못한 일을 해치우고 와야겠다며, (집 주변을 날아다니며 똥을 싸거나 음식을 낚아채 가는) 갈매기들을 겁주기 위해 냉장고 위에 보관하는 젤블라스터 건*집어 들고 장전하는 시늉을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건의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이번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 어떤 시점에서도 내 잘못은 없었는데, 난 왜,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런 일들이 생긴 거지'를 고민하고 고심했던 걸까. 내가 너무 쉬워 보였나? 내가 너무 친절하게 대했나? 그게 아닌데, 그냥 길을 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똥을 맞은 것뿐인데, 내가 피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닌데, 왜 난 내 탓을 했던 거지?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상식이 없거나 교양이 없거나 범죄자 거나,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마주치는 건 '사고'인데,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피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한다고 해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사람을 똑같은 상황에서 만나지 않는 한 예방하기도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충분히 대처했다면 무브 온해서 심리적, 감정적인 수습을 하는 게 좋다. 에겐,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남은 인생이 있으니까.


내가 영국 날씨에 대해 불평하면, 우스갯소리로,

"이 나라를 대표해 거지 같은 날씨에 대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라며 고개를 숙이는 남편. 어제도 내가 브라이튼에서 겪은 일이 떠올라 분노하며 주먹을 불끈 쥐자,

"그런 범죄자나 이상한 자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쓰레기 같은 영국 인간들을 만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을 표합니다."

라며 그가 난데없이 절을 (절이 가장 정중한 인사라고 알고 있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브라이튼에서 겪은 일이 편견과 선입견이 되어 영국 남자를 거들떠도 안 봤다면,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매일 웃고 사는데, 이런 즐거움을 모조리 놓칠 뻔했다.


홈스테이의 기억 때문에 떠나온 이후 다시는 발길이 내키지 않았지만, 브라이튼이 매력적인 곳이었단 사실은 부인할 수 없. 늘 관광객으로 북적였던 남쪽 바닷가의 아름다운 도시, 작고 아기자기한 인(lane)들이 꼬불꼬불 연결되어 마치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해 줄 것만 같았던 신비한 곳. 언젠가는 아들에게도 그곳을 보여주고 싶다. 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머물렀던 브라이튼, 가족과 새롭게 만들어갈 예쁜 추억으로 과거의 나쁜 기억이 덮이길. 이제 더 이상 그곳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갈매기에 해는 없지만 놀라게 해서 도망가게 만드는 효과가 있음. 총알은 2-3일 내에 자연분해됨(biodegradable).

**대문사진, TripAdvi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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