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nah May 18. 2024

타인의 자녀를 훈육한다는 건

요 며칠 날이 푹해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로 단지 내가 시끌벅적했다. 늦은 오후, 공터에서 다른 아이들과 축구를 하던 앞집 아이 올리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아들에게 물었다.

"같이 스윙볼 할 수 있어?"

"응, 근데, 지금 친구랑 온라인에서 로블록스 하는 중이거든, 10분 있다가 게임시간 끝나니까 그때 정원게이트에서 보자."

한국의 어린이날을 맞아 아들에게 스윙볼세트를 사 주었는데, 우리 집 정원을 기웃거리던 올리가 그걸 발견한 이후 함께 놀자며 매일 초인종을 누른다. 스윙볼을 열심히 치던 올리는 30여분이 지나자 팔이 아프다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정원을 향해 창문을 열어두고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나는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청소기를 돌리기 위해 거실로 갔다. 그리고 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남편이 청소 중이던 나를 멈추며 말했다.

"올리가 나가면서 우리 가든 램프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어, 가서 얘기하고 올게."

이층 서재에서 일하던 남편이 일어서서 기지개를 켜다가, 스윙볼을 끝내고 정원 게이트로 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앞서 걷는 아들 뒤를 따르던 올리가 정원 바닥에 있던 태양열 램프 하나를 슬쩍한 것이다. 하필 그 순간을 고스란히 목격한 남편. 주방으로 내려와 보안 카메라에 찍힌 영상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그가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 올리를 찾았으나 순간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십분 정도 지났을까, 자기 집으로 향하는 올리가 보여 앞집 드라이브웨이에 서서 남편이 물었다.

"헤이, 올리, 가든 램프 가져가는 거 봤어. 왜 그랬지?"

"안 가져갔어요!"(아, 올리야, 거짓말은 안돼...)

"올리야, 네가 오른쪽 주머니에 램프 넣는 걸 봤어. 내가 궁금한 건, 네가 왜 그랬는지야."

"진짜 안 가져갔어요!"(다시 한번 부인하는 올리)

"정원에는 여덟 개의 램프가 있으니 올리 네가 정말 원했고 물어봤다면 줄 수도 있었을 거야. 친구라고 생각한 사람의 집에서 물건을 몰래 가져간 게 첫 번째 잘못이고, 거짓말로 부인한 건 더 큰 잘못이야. 가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면 다시 우리 집에 놀러 올 수 있겠지만, 진정한 사과를 하기 전까지는 좀 어려울 것 같아."

그때, 올리의 엄마 캐롤라인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편의 말,

"아, 올리가 우리 집 정원에서 아이와 스윙볼을 했는데, 나가면서 정원 램프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어요."

그러자 캐롤라인의 반응이 놀라웠다. 올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마치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듯,

"정말 미안해요, 변상할게요."

라고 말했다. 올리 엄마의 반응을 보고 걱정이 된 남편은,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캐롤라인. 올리가 이 문제를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자기가 저지른 일을 제대로 뉘우치지 못한 채 엄마가 수습하는 식으로 빠져나간다면, 앞으로도 좋아지지 않을 거예요. 이번 일에서 올리가 제대로 배워 다시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기를 바라요."

"네, 조언 고마워요. 최근에 톰(욕을 많이 하고 작은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 없는 11세 남자아이) 무리와 같이 어울리며 올리가 걔들에게 터프해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집에서도 잘 얘기할게요."

서로 예의를 차리며 웃고는 있었지만, 불편하고 살 떨리는 긴장감 속에서 대화가 종료되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의 친구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도덕적으로 나쁜 행위를 하거나 (자칫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장난을 할 때, 특히나 그 상황에서 지도해 줄 부모가 당장 곁에 없을 때, 남편은 삼키지 않고 아이들에게 훈육을 하는 편이다. 그는, 그 상황을 목격한 어른들에게, 아이들을 안전하고 바른 길로 인도할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좋은 어른으로서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어 한다.


내가 사는 이곳에는 실수하는 아이들과 그 잘못을 바로잡아 주고자 하는 어른들이 있다. 원칙에 따라,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이 다정하고 단호하다면(warm & firm), 누가 내 아이에게 뭐라고 하든 받아들이는 편이다. 아이의 잘못을 시작으로 어른들이 싸우고 막장으로 치닫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그건, 아이들의 안전성장을 위한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사람들의 의견이나 조언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 때 친하게 지낸 중국인, 인도인 가족이 있었다. 서로 아이를 맡기기도 했고, 같은 건물에 살아서 이래저래 왕래가 잦았다. 그들에겐 우리 아이보다 네 살이 많은 아들이 각각 한 명씩 있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과 그 두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가거나 물놀이를 니며 자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평범한 주말, 세 아이와 함께 관악산을 등반하고 내려와 공원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그때 중국인 친구 리우(당시 10세)아들과 루니(인도인 친구)에게 말했다.

"너흰 다 남자라서 다행이야. 여자는 약하고 피곤하고 손이 많이 가고, 같이 있으면 손해거든."

깜짝 놀란 남편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라고 묻자, 리우가 답했다.

"우리 엄마는 그렇거든요. 아빠가 전부 다해요. 엄만 몸이 약해서 물건도 제대로 못 들고,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어서 저한테도 맨날 공부하라는 소리밖에 안 해요."

세상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남자와 살며 황소처럼 힘이 센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난 힘 엄청 센데? 웬만한 남자보다 힘이 더 센데?"

라고, 일단 선입견을 깨고자 아이의 수준에서 유치한 농담을 늘어놓았다. 그게 통했는지 리우가 깔깔대웃었다. 남편을 쳐다보니,  역시 같은 의도로 리우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반증을 찾으려는 듯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발견사진 한 장을 리우에게 보여주며,

Natalia Trukhina 사진 출처, Pinterest

"그럼 이 여자는 어떨까? 아직도 여자가 남자보다 약한 존재 같아?"

보디빌딩 챔피언이자 암리프팅, 데드리프트 세계 챔피언인 근육질 여성의 사진을 본 리우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대답했다.

"아니요! 힘 진짜 세 보여요! 우리 아빠보다 셀 것 같아요!"

"리우야, 그런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는 건 네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안돼. 이 세상에는 남자보다 힘이 세고 남자보다 할 줄 아는 게 많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사진을 보고 신기해하며 남편의 말을 곰곰이 듣던 리우가 갑자기 시무룩해져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우리 엄만, 내가 공부를 안 하면 때려요. 그래서 너무 싫은 거예요..."

중국 대학에서 교수인 엄마는 방학 때만 만나고, 중국 회사의 한국 지부장인 아빠와 단 둘이 한국에서 사는 리우는, 그렇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반감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실제 공부만 했고 그 결과 가족들과는 떨어져 살 수밖에 없게 된 아내를 원망하는 아빠의 마음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리우에게 매를 든 리우의 엄마는, 국제 학교를 다니는 리우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상담전화도 여러 번 받았다고 했다. 고개를 숙인 채 하지 말아야 될 말을 뱉은 듯 난처해하는 리우에게, 난,

"리우야, 리우를 때리는 건 엄마가 잘못하는 거야. 엄마가 사랑과 걱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잘못된 거야. 엄마가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그 부분은 리우의 엄마가 고쳐야 해."

라는 말을, 아이의 눈을 보며,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전달했다. 


우연히 시작된 대화 속에서 드러난 리우의 상처. 그동안 그 아이가 조금은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오해의 실체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아직도 가끔씩 그날 리우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우린, 그날, 선을 넘었을까? 리우에게 해 준 이야기들은 아이의 마음속에 어떤 파장을 몰고 왔을까?


내 아이가, 나 없는 곳에서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나는, 누군가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이에게 제대로 된 지도를 해 주길 바란다. 만약, 내가 잘못하는 게 있다 해도 누군가 나서서 지적해 주길 원하는 건 마찬가지다. 피드백은 언제나 고맙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거나 내가 실수를 했을 때, 그걸 바로 잡을 기회를 놓치면 너무나 안타까울 것 같다. 물론, 그 바람의 이면에는, 무안 주거나 심하게 꾸짖지 않고,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다정함이 저변에 깔린 채, 일관된 원칙아래 훈육과 교육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우리 부부가 아이의 친구들을 대할 때 다짐하는 마음과 자세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대한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저녁을 먹고 아이와 함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My Octopus Teacher를 보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보니 올리가 아까 가져갔던 정원 램프를 손에 들고 엄마와 함께 서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올리야, 신뢰란, 쌓기는 정말 힘든데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야. 오늘 너의 사과는 받아주지만, 신뢰를 다시 쌓기 위해 지금부터 많이 노력해야 할 거야. 그리고, 올리 데려와 사과하게 해 줘서 고마워요, 캐롤라인."


타인의 자녀에게 훈육을 한다는 건, 까다롭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어떤 문화에서는 금기시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에 대한 지적을 부모의 자존심으로 받는다면 어른 간의 분쟁으로 번지기도 하고, 실수하는 아이에게 분노를 담아 표현하면 메시지는 전달이 되지 않은 채 겁만 주는 형국이 되어 장기적으로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전개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좋은 말로 어루만지는 데 큰 갈등이 초래되진 않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아이들의 실수는 용서받고, 두 번째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내 아이가 어딘가에서 실수할지도 모르는데, 그 실수를 용서받으며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세상 살 맛이 난다. 잘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알바 아니야'라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무관심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곧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므로. 그 세상에, 몰상식하거나 무자비한 일은 줄어들고 괜찮은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그 바람이, 현실과 너무 크게 동떨어지지 않도록 일상에서 주어지는 모든 기회를 붙잡기 위해 노력해 본다.




*캐롤라인, 올리, 톰, 루니, 리우는 가명입니다.

**대문 사진, Lynn Ogwen by hanna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