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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11. 2024

외식만 하면 아픈 남편

채식주의자에 입이 짧던 아빠는 요리사인 엄마를 만나 세상의 모든 요리를 즐기는 미식가가 되었다. 엄마의 음식은, 어떠한 재료로 요리를 해도 맛이 언제나 일품이었고 어떤 레스토랑의 것들보다 신선하고 맛있었다. 엄마에 대한 감정이 차가워진 지금도 그녀가 만든 음식들을 떠올릴 때 침부터 고이는 걸 보면, 그녀의 요리 실력이 나의 감정과 이성을 마비시킬 만큼 대단하고 으뜸이었음에 틀림없다.


엄마의 실력에는 한 참 못 미치지만, 나 역시 요리를 꽤 하는 편이다. '꽤 한다'는 말은, 별 고통 없이 재료 준비를 하고, 요리를 하는 내내 허둥지둥 대는 일이 없으며, 계획한 요리가 한꺼번에 비슷한 온도로 식탁에 차려지기까지 모든 과정이 무리 없이 진행됨을 뜻한다. 또한 그렇게 차려진 음식들은 각기 재료의 특성에 맞게 적당히 조리되어, 식감이 모두 살아있고 양념과는 이질감 없이 섞여, 각각의 다른 맛과 재료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한 채 어우러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매일 대여섯 가지의 음식을 만든다. 평일 하루에 저녁 한 끼만 먹는 간헐적 단식을 7년째 하고 있는 남편을 위해, 그 한 번의 식사로 균형 잡힌 영양소를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 마치 수라상을 차리는 상궁의 마음으로 열과 정성을 다해 7첩 반상을 차려낸다. 무엇보다, 애정을 다해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도 남편이 눈치채 주길 바라며.


아이도 엄마의 음식을 맛있어하고 새로운 메뉴에 대한 거부감 없이 다채로운 음식을 즐긴다. 편식을 굳이 고치지 않는 이곳 문화에서 자란 아이의 친구들은, 이미 음식에 대한 뚜렷한 고집이 생겨, 먹는 음식보다 먹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고, 야채를 입에도 대지 않거나 오로지 beans on toast 나 소스 없는 파스타 등만 먹는 아이들도 많다. 그에 비해 아들은, 친구집에 놀러 가면 항상 그 집 엄마들로부터 '가리지 않고 음식을 참 잘 먹네, 그래서 네가 크고 튼튼한가 보다'라는 말을 듣는다. 집에서는 주로 뭘 먹는지 질문도 많이 받는다. 나는 대개 한 달 안에 같은 메뉴를 두 번 내놓는 일은 없기 때문에 '주로 먹는 음식'을 고르기 어려워 대답하기 쉽지 않다.


남편은 외식을 싫어한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데, 첫째는 구두쇠인 남편이 생각하기에 외식의 가성비가 낮기 때문이다. 같은 예산이면 집에서는 훨씬 맛있는 음식을 두세 번 먹을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돈을 내고 왜 식당 음식을 먹느냐는 입장. 두 번째 이유는 양이 적어서인데(가성비의 연장선), 하루 한 끼 먹는 그의 식사량에 맞추려면 거의 백 파운드(오늘 환율로 17만 원 정도)에 가까운 식사비를 지불해야 겨우 만족할 만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유가 가장 중요한데, 남편은 외식만 하면 몸이 아프다. (돈을 쓰는 부담감 때문에) 심리적 혹은 정서적 거부감에서 오는 신체화 증상이 아니라, 실제 배탈이 난다.


지금까지 우리가 다녔던 여행지에서 그가 배탈을 겪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보라카이에 놀러 갔을 때였다. 열흘 계획으로 놀러 간 여행의 초반, 배탈로 드러누운 남편의 약을 구하러 호텔에서 3km 떨어진 곳까지 혼자 걸어 나갔다. 호텔을 나설 때는 몰랐는데, 이십 분 넘게 걷다 보니 주변에 신발을 신은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길에 있던 모두가 이방인인 나를 일제히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모든 게 폰 하나로 해결되는 스마트한 세상이 아니었던 시절, 겨우 잡히는 신호 하나에 의지해 한국 여행사 보라카이 지점을 방문하고 병원이나 약국에 대한 조언을 구한 뒤 두 시간 넘게 땡볕에 걸어 다니다 마침내 약과 이온음료를 구해 호텔로 돌아갔다. 해열제를 먹으며 몸 안의 모든 걸 게워내는 과정을 사흘간 반복한 뒤 그는 서서히 회복되어 갔다. 회복되자마자 그동안 놓친 뷔페 음식이 아깝다고 탄식하는 그를 보며 어처구니없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도쿄에 갔을 때였다. 일본은 위생관리에 철저하겠지,라고 안심했지만 남편은 어김없이 배탈이 났다. 같은 음식을 먹은 나는 '아, 이상하네, 나도 먹었는데?'라고 의아해하며 도쿄의 한 료칸에서 그를 정성껏 간호했다. 도쿄에 사는 친구가 남편을 만나러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앞까지 찾아왔지만, 잠깐 얼굴을 보는 것 말고는 차도 한 잔 함께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병원에 다녀오겠다며 숙소를 나선 남편. 다행히 그는 일본어 능통자라 혼자 다녀올 수 있었고, 의사의 진단은 역시나 장염이었다. 장이 그렇게 약하고 예민한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터키에 갔을 때는 그나마 병원 신세를 지진 않았다.  마마리스의 리조트에서 풀보드(All Inclusive, 하루 세끼, 스낵과 음료, 주류 모두 포함된 패키지)로 열흘간 지내며 매일 과식하는 남편을 지켜봤다. 모든 사람이 저렇게 먹다가는 리조트 망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끼, 산처럼 쌓은 접시를 서너 번 비웠다. 결국 오일째 되던 날 견디다 못한 배가 탈이 났고, 남편은 게토레이만 마시며 누워 지내다 사흘 째 되던 날 겨우 침대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뭘 잘못 먹었는지, 너무 많이 먹은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열이 나거나 오한, 구토가 동반되지 않아서 다행히 약의 도움 없이도 회복할 수 있었다.


 주전, 체스터라는 작은 도시로 데이트립을 다녀왔다. 한두 시간 거리의 산이나 호수로 피크닉을 갈 때는 항상 도시락을 싸는데, 그날은 목적지가 도시였으므로 오랜만에 점심을 사 먹기로 했었다. 정오부터 늦은 오후까지 도시를 둘러보고 체스터 성당을 구경하고(영국에서는 아무리 규모가 작고 인구가 적어도 성당(Cathedral)이 있는 곳은 city이고 성당이 없는 곳은 town으로 불림), 로마인들이 지은 성곽을 따라 걷다가, 체스터에서 리뷰가 가장 좋은 맛집을 골라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레스토랑에서 똑같은 음식을 반반씩 먹었지만, 역시나 홀로 시작된 남편의 배탈. 이후 이틀간 고생을 하고 2-3kg 정도 체중 감소까지 겪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얼떨결에 배가 쏙 들어갔다면서 티셔츠를 풀럭거리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배를 신기한 듯 요리조리 바라보는 남편.

"자기 뱃속에는 좋은 세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라고 내가 심각하게 말하자, 돌아온 그의 대답.

"저번에 당신이 어떤 다큐멘터리 보다가 그랬잖아, 장에 다른 사람의 건강한 대변을 이식하기도 한다고. 당신이 기증해 주면 어때?"


실제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 장염의 80퍼센트를 대변이식술*로 치료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는 유산균이 많은데 그걸 다른 사람의 대장에 이식해 유익균의 비율을 높여 유산균 균형을 회복시키고 장내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장이 튼튼하다는  알고 있었다. 장염에 걸려본 적도 없고, 배탈, 설사, 변비와 같은 증상은 거의 겪어본 적이 없다. 같은 음식을 먹고 다른 사람(남편 포함)이 탈이 나는 걸 본 적도 많다. 어릴 때 땅에 떨어진 것도 막 주워 먹고,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은 무조건 한 그릇씩 싹싹 비워내고, 편식 없이 골고루 먹어서인가. 하나의 이유든 모든 복합적인 이유에서든 현재 내 장이 꽤 건강하기 때문에 남편의 말이 솔깃하긴 다. 남편이 아프면 아픈 도 고생이지만, 나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피곤하기 때문에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나 싶다. 아무리 그래도,


대변으로 엮일 관계라니. 모든 걸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부부관계라지만, 그것까지 내어달라 할 줄이야.


누가 나에게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내가 안 만든 음식'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에게 외식은 (메뉴 불문)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므로 내 행복을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가끔씩이라도 마음 편히 외식하기 위해선 남편의 장을 고쳐야 한다. 미래에 내려야 할지도 모를 큰 결단에 앞서, 남편의 장 내 환경이 조금이나마 향상되도록 지금 당장 실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오늘 식탁엔 유산균이 잔뜩 들어간 김치와, 두부와 애호박을 듬성듬성 썰어 넣은 된장찌개를 올려야겠다. 신선한 채소들을 액젓과 식초와 간 마늘에 무쳐 겉절이로 만들고 고등어와 양파도 바싹하게 구워 내야지. 후식으로 유산균 음료를 곁들이는 것도 잊지 말고.


그나마 희망적인 건, 남편이 매년 외부 음식으로 고생하는 횟수와 강도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내 음식을 먹은 지 십 년 정도 되었고, 이렇게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들을 먹으며 앞으로 이십 년을 더 지낸다면 장내 유산균 균형이 잡히지 않을까. 대충 먹고 산 기간이 삼십오 년, 나를 만나고 십 년 넘게 좋은 다이어트에 노출되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앞으로 이십 년 정도 남았다고 볼 수 있는 건가. 대변이식술로 한 방에 해결하느냐, 장기적 식이요법 플랜으로 서서히 해결하느냐 그것이 문제로구나.



*대변이식술(FMT), Cambridge University Hospitals NHS Foundation Trust, Fa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 (FMT) | CUH - https://www.cuh.nhs.uk/patient-information/faecal-microbiota-transplantation-fmt/



**대문사진, Monash Fod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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