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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04. 2024

자꾸만 놀러 오는 고양이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고양이 한 마리가 정원에서 나를 기웃거렸다. 내가 주방에 있을 때면, 내 눈높이와 같은 정원 울타리 위에 앉아 나의 움직임을 쫓으며 나를 관찰했다. 어느 숏폼에서 고양이와 대화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야옹, 미야오'와 같은 소리가 아닌 태국어 같은 소리로 고양이를 부르고 있었다. 영상 속 고양이는 신기하게도 부름에 응답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하루는 번득 그 생각이 나서, 주방 문을 열고 '멕악' 같은 희한한 소리를 내 봤다. 그랬더니 이 고양이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아... 이건 너무 예상밖인데?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어떡하지?' 그러는 사이, 이미 고양이는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멕악'이 들어오라는 소리였을까?


계획에 없던 서먹한 대면. 덜컥 남의 집에 들어와 버린 그 고양이도 순간 내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주방을 한 바퀴 돌더니 냉장고 앞에 멈춰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나를 향해 야옹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관계를 시작해 준 게 고마워, 나 역시 작은 새우 다섯 마리로 화답했다.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됐다.


내향인인 나는 동물에게도 할애할 에너지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함께하는 시간이 5분 이상 지속되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특히 이 고양이는 나의 주의를 기 위해 끊임없이 야옹거리는 수다쟁이에다가 내가 앉아 있으면 무릎에 올라오고 서 있으면 다리에 찰싹 붙어 링을 하며 몸을 비벼대는데,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개냥이에 가까워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와 친해진 고양이는 남편과 아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그들과의 첫 대면에 발라당 누워 배를 까고 애교를 떨었다. 극 E의 세 생명체(남편, 아들, 고양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내가 '이제 그만 놀 시간이야'라고 소리치면 아쉬워하며 각자 흩어진다. 어느 날부터인가, 고양이를 안아서 내보내지 않으면 돌아가라고 문을 열어줘도 나가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시부모님께 드렸더니, 사랑이 넘치시는 어머니께서는,

"아이, 예쁘겠다, 장난을 많이 치는 걸 보면 어린가?"

라고 물으셨는데, 아버님은,

"오, 저런, 그 고양이가 너희를 새로운 주인으로 삼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라며 걱정을 하셨다.


은퇴 후 아버님의 삶에서 동물은 늘 골칫거리였다. 예전에 한 관광객이 말을 타고 동네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아버님댁 드라이브웨이 가까이에서 말이 똥을 쌌다. 그런데 그 관광객이 그걸 수습하지 않고 도망가버려 아버님께서 힘들게 치우고 청소를 하셔야 했다. 코로나 시기, 그레이트 옴(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에 살던 산양들이 인적이 드문 타운으로 내려와 휘젓고 다니다 아버님댁 정원의 풀을 다 뜯어먹어 더벅머리를 만들어놨었다. 코로나는 종식됐지만, 그 산양들은 아직도 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떼 지어 타운을 돌아다니며 훌리건처럼 사람들의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아버님 댁의 뒷마당은 양과 젖소를 키우는 큰 농장의 필드와 담을 두고 붙어 있는데, 젖소들이 좋아하는 사과나무가 하필 시댁 뒷마당에 있었다. 그루의 사과나무 중, 요리용이라 맛이 없던 한 그루는 살아남았고, 다른 하나는 맛있는 사과가 열리는 나무였는해마다 달콤한 사과나무를 뜯어먹던 젖소들 때문 나무는 더 이상 크지 못했고, 결국 뿌리째 들어내야 했다. 아버님께서는 베리류를 좋아하셔서 뒷마당에 라즈베리와 블랙베리 나무를 심으셨는데, 익기가 무섭게 새들이 따먹어 수확기간이 되면 새와 전쟁을 벌이신다. 한 때 달콤한 밤이 열리던 밤나무도 있었지만, 맛있는 밤이라 소문이 난 건지 온 동네 다람쥐들이 몰려와 잘 익은 밤을 모두 수확해 갔다.


아버님께 동물은, 일용할 양식을 축내는 외부의 침입자 혹은 같은 음식(한정된 자원)을 두고 겨루는 경쟁자와도 같았다. 그러니, 우리의 음식을 공짜로 얻어먹으러 온 것 같은 고양이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쁘다고 무조건 받아줄게 아니야. 새우를 주기 전에 진지하게 잘 생각해 봐. 정말 그 고양이가 너희 집에 눌러앉으면, 그때부터 돈이 얼마나 들겠니?"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막상 아버님께서도 집에 오는 동물을 적극적으로 막거나 집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예방조치를 취하신 적은 없다. 농장 주인과 상의해 사과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하나 더 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으셨고, 허수아비를 놓아 새를 겁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오히려,

"들이 나보다 일찍 일어나고 다람쥐들은 나보다 부지런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더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그러기엔 내 체력에 한계가 있어."

라며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우리 집에 매일 놀러 오는 고양이에 대한 걱정을 하시며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다.

"고양이를 키우다가 아프거나 병이 들면 정말 큰일이지.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겠니, 큰 책임이니 잘 생각해야 한다."

결국은 생명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함께 하는 '책임감'에 대해 강조하고 싶으셨던 아버님. 우리는 애완동물을 키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절대 없다고 아버님을 안심시켜 드렸다. 일 년에 적어도 2개월 정도는 집을 떠나 여행을 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식구와도 같을 애완동물을 어디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단 말인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다.


띵동.

저녁을 준비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보니, 같은 단지 내 사는 이웃이었다. 고양이가 집에 안 들어온 지 오래되어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끔씩 며칠 정도 외박을 한 적은 있어도 일주일 넘게 집에 돌아오지 않은 적은 처음이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고 다. 사진을 보니, 앗,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고양이와 너무나 닮았다. 하지만, 전단지에도 나와 있듯이 단지 내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다.  휴대전화 속 앨범을 열어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자신의 고양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전단지를 통해, 우리 집에 놀러 오던 아이는 하우스 30의 고양이였음이 밝혀졌다. 이제 어디 사는지 알게 됐으니 집에 안 가고 버티면 그 집에 데려다줄 수 있다.


왼쪽은 잃어버린 고양이, 오른쪽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고양이


동물이 함께 하는 삶은 비현실적인 재미와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산책하다 만나는 야생마들, 도로에 돌아다니는 산양들, 사람 손위에 올라와 먹이를 먹는 야생 새들, 남의 집에 불쑥 셀프 초대로 들어와 자기 집에 안 가는 고양이까지. 관광 타운이지만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살다 보니 가끔씩 이런 행운 같은 만남이 마법처럼 찾아온다. 행복이 별 건가, 이런 순간들이 모이면 그게 바로 삶의 기쁨이자 만족인거지.


산책하다 만난 야생마들. 우리 옆을 지나가시던 할머니께서 말을 걸자 말이 다가온다.


내 손 위에 올라와 먹이를 먹는 야생 로빈(로빈 출몰 빈도가 잦은 곳이라 새 모이를 준비해 감)


눈이 와도 말 타고 다니는 사람들(똥 싸면 어쩌죠?)


훌리건 산양들 때문에 도로 양방향 모두 운행 정지 상태(하필 우리 차 앞에서...)


코로나 때 타운을 덮친 산양들에 대한 뉴스 기사(출처, 좌 BBC 우 The Guardian 웹사이트)




*그 외 모든 사진 출처 by h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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