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의 글쓰기
이직은 미친 짓이다.
아니, 정확하게 나의 첫 번째 이직은 미친 짓이'었'다.
그간의 경력도,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연봉도 덮어두고 벌거벗은 채로 새 출발을 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방송 경력 8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거다.
가족들이 제일 먼저 발 벗고 나섰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지금 회사가 얼마나 훌륭한 회사인지. 네가 좋아하는 친구들(정말 나에겐 회사 친구들이 있었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라는 네임 밸류, 안정적인 직장.. 도대체 왜 그런 모험을 하려는 건지 다들 의아해했다.
모든 걸 뒤로한 채 그래서 내가 선택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노르웨이 관광청이다.
채용 공고 타이틀은 '북유럽 관광청 채용'이었다. 좀 더 넓은 세상, 새로운 문화에 늘 관심이 많았던 나는 북유럽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아니 로망이 있었다. 게다가 관광청이라니, 여기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채용 과정은 대략 이러했다. 우선 이력서를 내고, 회사에서 원하는 질문 열 가지 남짓에 대한 답변을 짤막한 에세이 형식으로 다시 제출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알고자 했던 것 같다. 면접날에는 특정 기사 형태의 글을 영-한, 한-영 번역하는 테스트도 있었다. (주한 외국 관광청에서는 미디어를 대상으로 보도자료를 내곤 했는데 이때 본청에서 오는 자료들이 대부분 영어다. 이를 한국 마켓에 맞게 기사 형태로 글을 작성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주한 외국 관광청은 몇 가지 형태로 존재했다. 대사관에서 직접 관광청 업무를 관장하거나, 본청(해당 국가) 담당자가 한국에 파견되어 조직을 꾸려가는 경우 그리고 한국의 특정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관광청 업무를 대행하는 형태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가장 후자의 경우였다.
당시 대표님은 내게 '아버님은 뭐 하시노?' 질문도 하셨다. 키와 옷차림새 등 매서운 눈으로 살피는 게 느껴졌는데 약간의 의문들은 후에 팀에 조인하면서 제대로 알게 됐다. ( 이 이야기는 추후 번외 편으로 풀어야 할 것 같다)
이직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은 현 직장보다 높은 연봉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치지 않고 그런 결정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파격적인 결정이었으니.. 오히려 기존 연봉에 한참 못 미치는 대우를 알고도 이직을 향한 열정만큼은 꺾지 못했다.
경력, 연봉 그다음에 또 뭐가 남았을까? 바로 사람이다. 첫 회사이자 첫정 동료들은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라기보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진짜 친구'였다. 그들을 뒤로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세상의 모든 회사에는 '원래' 이처럼 좋은 사람들이 존재할 거란 단단하고도 순박한 믿음이 있었을 터다.
그렇게 새로운 커리어가 시작됐다.
누군가 '이직 바보'라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을 만큼 무모했지만, 도전하지 않았다면 결코 열리지 않았을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이 펼쳐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