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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색 Nov 07. 2021

나에게 보내는 격려:  마라톤을 잘 완주하고픈 나에게

제2회 기상청 기후변화과학 통합 공모전 수상에 대한 외로운 글쟁이의 단상

내게만 보이는 목적지를 향해 외로이 달려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독한 일이다.

하지만 이 고독함 속에서만 이뤄낼 수 있는 들이 있고,

나는 이 일들을 이뤄내고 싶다.


글을 쓰고 있다고, 나 열심히 살고 있다고 굳이 티 내거나 호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물론 저처럼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에겐 참 안타깝게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공유해야만 더 눈에 잘 띄고 기억되는 세상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오늘따라 괜스레 여기 있습니다, 고 생존신고하고픈 마음이 듭니다. "브런치에 글을 안 올린다고 해서 글을 안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항변하고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저를 조용히 지켜보고 응원하고 계신 분들과 또한 저처럼 외로운 마라톤을 뛰고 있을 분들을 위해 아래의 말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달려보라는 뜻으로

대상을 선물 받았습니다


몇 달 전인 7/13/21 오후, 아래 사진을 SNS 계정올려 '자랑질'을 할 수 있기쁨을 누리게 됐다.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대상은 스토리, 디자인, 미디어 부문을 통틀어 단 한 명에게 시상됐다.


처음 대상 수상 소식을 들은  공시된 수상작 발표일 일주일  전이었다. 온라인 독서 수업을 하던   모르는 번호  개로 전화가 여러  오고 있었. 수업 중이기도 했지만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오는 전화는  받지 않는지라, 계속해서 핸드폰이 울리는  이상하다 생각하고만 있다가 역시 모르는 또 다른 번호로  문자 하나를 확인하고서야 , 했다. 

안녕하세요 기상청 기후변화감시과 000입니다
공모전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전화나 답글 부탁드려요


내심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터 나도 모르게 입이 씰룩거렸다. 전화를 거니,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먼저 들려오는 말은 "축하드립니다"였다. 지금은 '대상 수상 후보'지만, 표절이나 다른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수상을 하게  거라는  통화의 요지였다. 통화를 마치니 얼굴은 한껏 상기되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이제는 글을 쓰는 일을 더이상 미루지 말고 정말로 집중해보자고 마음을 먹은 데에 대해 누군가 어깨에 손을 툭 올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한번 열심히 해 봐라." 하는, 무심한 듯 따스하며 묵직한 격려를 받은 기분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상작 발표는 처음에 공지됐던 시기에서 일주일 정도 늦춰졌다. 언제나 수상 소식을 알릴  있을까, 혹시나 '후보자'에서 '수상자' 승격되지 못한 걸까 하는 생각에 설렘과 불안이 섞인 묘한 긴장감을 꽤나 느꼈던  같다. 하지만 다행히 이변은 없었고, 발표일이 되자 기상청 홈페이지에는 위 및 아래 사진들과 함께   '2100: 산호가 모두 죽었다'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제2회 기상청 기후변화과학 통합 공모전 대상이라니. 뿌듯했다. 아주 많이.


지금 다시 보니 왜 굳이 수상자 이름을 가리셨나 싶긴 하다. 어차피 글 본문에 이름이 나와있는데! ㅎㅎ :3
홈페이지 안내문으로 뜬 내용이다. 도합 371개의 작품이 출품된 셈이다.


글 전문은 기상청 수상작 갤러리(http://www.climate-science.info/bbs/board.php?bo_table=cgallery2021)에 게재되어 있었다. 운영사무국 직원 분들께서 가독성을 위해 문장 중간중간에 줄 바꾸기를 넣어 글을 적절히 시각화해주신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내가 생각한 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해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더욱 감사하게도 글 내용에 어울리는 일러스트까지 넣어 예쁘게 꾸며 주셨다. 내 글을 소중히 대하고 정성껏 다뤄주신 것을 보고, 데드라인에 임박해 하루 만에 글을 부랴부랴 작성한 점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한편 마음이 따뜻하게 꽉 차올랐다.


알고 보니 수상작 중 일러스트를 따로 넣어주신 건 내 글밖에 없었다..!



외로운 마라토너에게만

보이는 저 머나먼 목적지


이쯤 되니 간만에 자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랑하기가 어려웠다. 먼저는 '예의범절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어린 시절 주입된 잘못된 의미의 겸손과 ―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내세우는  잘못된 것이기에 스스로를 일부러 낮추고 숨겨야 한다는 ― 끊임없는 자기 회의를 기반한 피곤한 성격 때문이었고 (칭찬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고장'이 나는 편이다.), 다음으로는 공모전의 짧은 역사와 범장르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유서가 깊지도 않고  쓰는 사람들만을 위한 공모전이 아니기도 하 수상했다는 사실을 내세우기가 괜스레 민망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한참을 고민했지만 그래도 결국 SNS 계정에 수상작 발표 사진을 올렸다. 문득 떠오른 대로 적어 내린 이 문구와 함께.

"목적지 없는 마라톤을 뛰기 시작한 나에게, 꼭 필요한 격려인 것 같아 더욱 감사!"


사진이 업로드되자마자, 아끼는 학생 하나가 게시물을 확인했는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귀여운 장난 섞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쌤! '목적지가 없는 마라톤'이라니! 목적지 있는 거 아니에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노벨 문학상!"


민망함에 피식 웃으면서도 나는 진심을 담아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에이, 설령 큰 상을 받거나, 유명해지거나, 돈을 엄청 많이 벌게 된다고 해도 글 쓰는 걸 멈출 것도 아닌데 뭐!"


하지만 동시에, "목적지 있는 것 아니"냐는 학생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며 내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어 보니 이러한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목적지 없는 마라톤"을 뛰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보면 마라톤에 목적지가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마라톤은 결국 경주이니 결승선이라는 목적지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러니 목적지 없이 계속해서 달리는 건 '마라톤'이 아니라 '조깅'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분명 난 가벼운 마음의 조깅 정도를 하려고,

말하자면 개인적인 감정과 감상을 배설하고 이런저런 공상과 아이디어를 늘어놓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글을 쓰겠다 마음먹은 게 아닌데.


그러니 내게는 목적지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목적지는 무엇일까?

돈을 버는 것? 아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은 (특히나 지금의 문화 전반을 고려했을 때) 돈이 잘 벌리는 종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내 목표가 돈이 되는 글을 쓰는 것이다면 나는 애초부터 글러먹은 것이다. 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니 이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조차 않는 게임을 하는 셈일 테니.

책 출판 역시 나의 목적지가 아니다. 나의 글들이 모여 책이 되고 그래서 글쓴이로서의 내 이름을 담은 책이 세상에 나온다면 정말 뿌듯하고 행복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는 건 주객이 전도되며 내 기준에서는 글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온주완 씨의 의견에 동의한다. 글이 있으니 '당연히' 책을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낼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는 글이 읽힐 만한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상을 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내 글이 대단하다는 뜻도 아니고 상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내 글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수상 여부는 내 경주의 종착지가 아닐뿐더러 내 향방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것이 하나의 긴 여행이라면 수상 여부는 날씨처럼 부차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일뿐, 나는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계속해서 길을 갈 것이다.


그러니 돈을 벌고, 책을 출판하고, 상을 받는 것이 글을 쓰게 만드는 일종의 동기나 요인이라고 한다면 이 모두는 내게는 부차적이고 외적(extrinsic)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행위인 동시에 내 마음을 지탱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글이라는 형태로 부족하나마 무언가를 표현하기 시작한 건 내 안속에 담아둘 수 없는 생각과 감정들이 그냥 흐르고 터져 나와 글로써 표출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이었고, 이렇게 정제되지 않은 글들을 다듬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지속한 것 역시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제대로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내 마음을 돌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글을 쓰는 데에 있어 내 일차적인 목적은 몸이 받쳐 주는 날까지 글을 멈추지 않고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내 삶을 제대로, 잘 살아내는 것일 테니.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앞서 말했듯 "가벼운 마음의 조깅" 정도만을 위해 글을 쓰려 하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었을 때 글을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이라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앞으로도 많이 배워가야 하겠지만, 현재로서 나 스스로 설정해둔 어떤 기준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간단히 말하자면,

화려하게 드러내 보이고 싶은 허세에서 생겨나는 장식적 꾸밈 없이 정직하고 진실된 본질을 갖출 것
삶에 깊이를 더하고 다른 인생들과 세계들을 이해하는 데에 일조하는 질문과 생각들을 품고 던질 것
내용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만 글을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 형식인 '글'의 맛과 소리를 살릴 것
글이라는 형식의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살려, 다른 예술 형식으로는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없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신선하고 흥미로우며 독자적인 방식으로 풀어낼 것


이런 기준들에 부합하여 독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여운을 남기는, 또한 마음의 정원과 밭에서 생각과 감정과 삶이 풍요롭게 피어날 수 있도록 돕는 비료와 거름과 같은 글을 쓰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탐구하고 노력하고 싶다.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가시적인 성과물을 한시라도 빨리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 성과물을 내기까지 내 안에서 일어나고 축적되는 생각들과 그 생각들을 글로 구현해내는 과정 자체가 내 하루하루의 삶에 의미를 더하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외로운 길을 달리는 사람으로서 나의 목적지는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또한 그 삶을 좋은 글로 승화시키는 것뿐이다.

이 삶의 과정이, 그리고 그 삶을 담아낸 글의 가치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해도 이 마라톤을 뛰기 시작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입상한 글이 너무 별 것 없고 부족해, '작가'라는 거창한 칭호로 불려 기사까지 난 것이 기쁘다기보다는 민망할 따름이다. 그래도 어쨌든 좋긴 하다.



적당한 속도와 리듬으로 달리는 법,

그러니까 '페이스'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사실 지난 몇 달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각각 한 달씩 두어 달 동안은 내내 거의 방 안에만 틀어박혀 제때 잠도 자지 않고 새벽까지 글을 쓰기도 했고, 어느 때는 일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한 탓에 글에 손도 못 대고는 불안해하기도 했고, 무식하게 코 앞에 닥친 공모전들을 닥치는 대로 준비하며 습작이라고도 말하기 부끄러운 글들을 무작정 갈겨 놓고는 미완성으로 남겨두기도 하고(사실 브런치에 올린 글들도 대부분 급하게 쓴 것들이라 가끔씩 써놓은 것들을 보다 보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확 달아오를 때가 있다.), 일이 점점 밀려들어오는 때에는 일을 하는 것과 글 쓰는 것에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혼자 시간의 줄다리기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가운데에서도 글, (내가) 글을 쓰는 과정,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많은 사실들을 배우고 깨닫게 됐다.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물론 나아가선 좋지 않을 방향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면서 나의 글 쓰는 능력이 어떤 면에서 얼마나 부족하며 또한 그런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어떤 일들을 차차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들을 하게 됐다. 참으로 좋고 신나는 일이다. 그러니 이 기나긴 마라톤을 달리는 데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느리더라도 조금씩이나마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이 끝없는 배움의 과정과 이로 인한 성장의 가능성이 기대되고, 또 그렇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달릴 것이다.


최근에 우연히 TV를 보다가 보게 된 오영수 배우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내 마음속에 전부터 있던 생각들이 담긴 말을 인용하며 글을 이만 마무리하고자 한다.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승자는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승자고 그렇게 살면 좋겠어요. ......
여러분,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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