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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올 Mar 29. 2024

나는 여름 그 도시에선 늘 길을 잃었다. 제 1화

김애란  잊기좋은 이름ㅡ여름의 풍속  


  이상하게 늘 여름이었다. 내가 길을 헤맸던 날은. 햇빛에 하얗게 표백된 도시 한가운데서 풍향을 가늠하며 서 있던 때는. 그리고 여름이라서 그때마다 나는 몹시 더웠다.

-여름의 풍속-


나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가 살던 섬에서는 고개를 들면 바로 하늘이 보였다. 하늘엔 가끔 바삐 날아가며 삐삐하며 울던 새뿐이었다. 도시의 하늘은 그 넓은 공간을 빌딩에게 다 내주고 겨우 빼꼼 “나 여기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마저도 뜨거운 여름 해가 다 차지하고 있었다. 빌딩 골목 어디에서도 숨통을 틔여 줄 바람 한줄기 없었다.


처음 도시에서 길을 잃던 날, 나는 잔뜩 멋을 부리고 그를 만나러 갔다. 그날은 왠지 그가 꼭 고백을 할 것 같았다. 전날 저녁 뉴스에서 오늘이 올들어 최고로 더운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위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 소식을 듣기전까지는.


 명동 성당 앞에는 늘 사람으로 붐볐다. 소년소녀가장을 돕는다는 글이 쓰인 박스를 앞에 두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남자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하다. 종종 검게 그을린 그의 목에 굵은 핏대가 섰다 가라앉는다. 그러고 나면 박스에는 동전과 지폐가 던져졌다. 맨발에 짧은 숏 팬츠를 입은 한 무리가 지나간다.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진 자리엔 여전히 노래 소리가 들린다.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리 미워하지 말아야 해.

하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날까지

순하고 아름답게 오늘을 살아야 해.


 그와 함께 그런 삶을 꿈꿨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랑하며 베풀며 살날을 그렸다. 노래가 다 끝나도록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명동 성당 종탑의 시계는 1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다.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나?’       

-그대여 나의 어린애

그대는 휘파람 휘이히 불며 떠나가 버렸네.

그대여 나의 장미여.

 이문세의 노래가 들린다. 간주로 기타 소리만 나던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그의 전화다.     

"여보세요? 왜 안 와?"

"이희영 씨인가요? 여기 백병원 응급실인데요. 혹시 한영민 씨라고 아시나요?"

수화기 너머로 계속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는데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게 노래 가사는 뚜렷하게 들렸다.

-그대는 휘파람 휘이히 불며 떠나가 버렸네.       

그 뒤로 나는 여름 그 도시에선 늘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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