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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구 Jan 27. 2021

My Mates, In Morocco


Kamar


이쯤에서 카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카말은 해외봉사단 동기로 국내 합숙소에서부터 얇은 벽 하나를 두고 나와 바로 옆 방에서 붙어 지낸 밀접한 인연이다. 사실 카말과 나는 꽤 나이 차이가 날뿐더러 살아온 곳과 종교, 전공 등 다른 게 많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메이트가 되었는지 나는 이 글을 통해 나마저도 더 깊게 이해하려는 지도 모르겠다.

 카말을 처음 만났을 적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말을 처음 만난 곳은 두 달의 국내 교육을 위해 지냈던 합숙소의 텅 빈 복도이다. 예상한 이동 시간보다 버스가 밀린 데다가, 길을 잘 몰라 빙빙 헤매는 덕분에 합숙 집합 시간에 늦고야 말았던 나는 헐레벌떡 복도를 뛰어다니던 참이었다. 배정된 방에 짐을 내려두고 배부받은 이름표를 목에 건 뒤, 강당으로 가는데 아뿔싸 길을 또 잃었다. 늦은 것에 당황하니 아주 단순한 구조의 복도에서도 길을 잃고야 말았던 것이다.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다행히 길을 잃자마자 나와 같은 입장인 카말을 만나게 되었다. 방황하는 찰나에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반갑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텅 빈 복도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그저 반갑고 기뻤던 나는 아주 호쾌하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밝게 인사하는 내게 카말은 더 호쾌하게 웃으며 화답해줬다.  

인사를 나누는 짧은 찰나에 카말의 목에 걸린 이름표에 적힌 (모로코) 세 글자가 보였다. 아무나 만나도 반가울 텐데 모로코에 함께 가는 동기 중의 동기라니. 하늘이 나를 제대로 돕는구나. 환호를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첫 느낌. 첫인상. 첫 뭐뭐. 뭐라도 처음이 중요하지 않은가?

 카말의 이름 역시 모로코어 선생님이 지어주신 아랍어 이름이다. 카말의 뜻은 한국어로 ‘달’이다. 그녀의 웃는 모습이 방글방글 둥근 달 같다는 이유로 붙은 이름이다. 그녀와 지내면 지낼수록 이름의 의미를 납득하게 되었다. 그녀는 정말 잘 웃는다. 시종일관 방글방글 웃으며 지낸다. 그런 그녀와 나 사이에는 아주 얇은 벽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의 침대와 그녀의 침대가 아주 얇은 벽 하나를 두고 나란히 붙어 있었던 것이다. 침대에 누워 잠자리에 들 즈음, 그리고 아침잠에서 겨우 정신을 차릴 즈음이면, 카말은 우리 사이의 얇은 벽을 콩콩 치곤했다. 이 귀여운 두드림은 그녀의 따뜻한 인사였다. 그녀의 인사가 먼저 오지 않는 날이면, 내가 먼저 벽을 콩콩 치기도 했다. 이렇게 벽인사를 나누던 우리는 금세 손 인사를 나누고, 결국 매 끼니를 함께 챙기는 식사 메이트가 되었다. 밥 정이라고 하던데. 우리는 어쩌면 밥 정이 제대로 들었나. 그녀는 밥을 먹을 때도 그녀다웠다. 음식 하나하나 정성으로 삼키며 식탁에 차려진 모든 반찬을 남기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의 종교는 불교라고 한다. 혹시 발우공양의 습관이 삶에 배어든 것일까. 아무렴, 그녀의 식사 습관으로 인해 나의 식사 습관을 돌아보게 됐다.

 모로코에서도 카말의 좋은 식습관은 여전했다. 영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국의 향신료가 담뿍 들어간 음식은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데도. 특히 모로코식 야채수프 ‘하리라’는 나에게 당근 공포증을 주기도 했다. 당근 하나에 야단법석인 나와는 달리, 카말은 낯설고 어려운 모로코 음식도 좋은 경험이라며 잘 받아들였는데, 여간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 덕분에 나는 기미 상궁 카말을 둔 셈이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새로운 식당이나 새로운 메뉴를 접하게 될 때마다 카말이 먼저 맛을 봐주었었다. 맛을 본 카말이 이건 파라샤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는데 라고 말하면 그제서야 믿고 한 입 먹어보는 식이었다. 그럼 정말이지 맛이 꽤 좋아서 잘 먹어댔다. 카말이 아니었다면 모로코에 있는 내내 살구나 먹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카말은 예감이 좋아서 간판이나 인테리어만 보고 단번에 맛집을 찾아냈다. 프랑스 식당과 이탈리아 식당은 물론, 중국식당이며, 일식당까지도 예감만으로 맛집을 구분하는 카말이었다. 덕분에 바질페스토가 얼마나 맛있는가, 치즈는 얼마나 다양한가, 와인에 곁들일 적절한 핑거 푸드는 무엇인가를 배웠다. 

 비단 음식뿐만 아니라, 사소한 생필품을 사는데 필요한 지혜, 오래 입을 옷을 고르는 노하우 등 모로코에 있는 내내 그녀는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모로코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벌써 2년이 지났음에도 그녀에게 배울 것이 수두룩하다.



Rita


 배울 것이라면 리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특히, 리타의 간편한 옷차림, 가벼운 짐가방은 볼 때마다 겸허 해진다. 리타 역시 모로코에서 만난 인연이다. 그녀는 내가 처음 모로코에서 사귄 한국인 친구 K의 대학 동기로, 모로코에는 K가 속한 NGO 단체의 실습 겸 K와 함께 여행하려고 왔었다. K와 리타는 카사블랑카와 마라케시를 여행하기로 계획하고 있었고, 어쩌다 보니 그 여행 계획에 나까지 슬쩍 끼어든 것이었다. 리타와의 여행은 7월로, 몹시 더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나 더웠냐면 숨이 멎을 정도로 더웠다.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 들 정도로 건조하고 뜨거웠다. 멋모르고 집에서 나왔다가 도로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계획되어 있고, 내가 탈 버스는 곧 출발하니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모로코에 제법 익숙해진 줄 알았으나 언제까지라도 안일하면 안 되겠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카사블랑카로 향했다.

 캣콜링과 소매치기, 택시 사기 등으로 악명 높은 카사블랑카에 가려니 막상 겁도 났다. 버스를 타는 것도 무섭고 길을 걷는 것도 무섭고, 하물며 택시를 타자니 눈 뜨고 코 베일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너무 더웠다. 버스에 타면 좀 시원해지겠거니 했지만, 여전히 푹푹 쪄댔다. 버스에서 나오는 미적지근한 에어컨 바람은 땀방울 하나 식혀주지 못하였고, 등에 닿은 셔츠가 축축하게 젖고서야 나는 카사블랑카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용기를 내 약속장소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15분 즈음만 걸으면 될 테니 바짝 긴장하고 빠르고 힘 있게 걸으면 아무 일 없으리라, 더위도 버텨내리라, 무작정 참으며 걸었다. 아 멀다. 와 아 덥다. 를 번갈아 가며 내뱉다 보니 겨우 그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가 보였다. 그들보다 4시간 먼저 도착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깜깜히 앉아 그들을 기다려야 했다. 등딱지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배낭이며 당장 몇 걸음이라도 걸으면 축축하게 젖어버리는 셔츠를 생각하자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의 약속장소는 카사블랑카에 위치한 스타벅스였다. 그곳에서 꼼짝없이 앉아 4시간을 기다릴 작정이었다.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편히. 아니, 편하게 기다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후 5시 정도가 되니 해가 저물고 뜨거운 열기가 식더니만 금세 쌀쌀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초보 여행자인 내가 겉옷을 챙겼을 리 없었다. 결국 나는 모로코의 한여름 밤 추위에 벌벌 떨었다. 손이 너무 시려서 점차 손가락에 감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감기에 걸릴까 노심초사하는 중에 K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곧 도착하겠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전화였다. 전화를 받고서 얼마나 기쁘고 설렜는지 모른다. K와 그의 친구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니! 느낌표가 오백 개쯤 필요한 기분이었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친구라니 왠지 낭만적이다. 벅찬 설렘 덕분에 추위도 잠시 잊었다. 그러고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내 앞에 카사블랑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새빨간 택시 한 대가 멈춰 섰다. 곧이어 익숙한 K가 먼저 택시에서 내리고, 이내 아주 낯설고 반가운 이의 모습이 따라 내렸다. 리타였다. 커다란 배낭 가방을 등에 메고도 어깨에 큼직한 에코백을 하나 더 들고 있는 K와 달리 리타는 시원한 나시티에 반바지 차림의 아주 가벼운 차림새로, 등에는 텅 비어 보이는 백팩 하나를 달랑 매고 있었다. 나는 그 신선한 첫 모습에 반해 아주 오래, 줄곧 지금까지 리타를 동경해왔다. 리타의 애써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군더더기란 없는 간소한 준비물을 보자마자, 난생처음 덜어내는 것을 배우고 싶었다.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굳이 필요 없는 것을 버렸을 때 겪는 불편함을 즐기는 것 말이다. 하나의 수련과도 같은 것, 리타와 여행 하는 내내 이러한 마음이 들었다.

Rita , we are happ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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