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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노마드 함혜리 Jul 16. 2024

공연리뷰]정명훈이 들려준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KBS교향악단 Ⅹ 정명훈의 Choral Ⅱ(7.12, 롯데콘서트홀)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들려준 ‘스타바트 마테르(고통의 성모)’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KBS 교향악단이 더없이 아름답고 숭고한 종교음악의 진수를 선사했다.

지난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의 마스터즈 시리즈 두 번째 공연으로 준비한 ‘KBS 교향악단 ×정명훈의 Choral II’에서 들려준 ‘스타바트 마테르’는 시간과 공간을 잊게 해 줄 정도로 소중한 예술적 경험을 관객들에게 안겨 주었다.

2024 KBS교향악단X마스터즈시리즈 II  포스터

‘스타바트 마테르’는 ‘Stabat Mater Dolorosa’(스타바트 마테르 돌로로사), 즉 ‘슬픔에 빠진 성모가 서 계시네’라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중세의 시가에서 비롯된 종교음악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성모 마리아의 가슴 아픈 심정을 절절히 묘사한 것이다.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피에타’ 역시 ‘스타바트 마테르’를 테마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우리가 느낀 먹먹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음악으로 옮기면 스타바트 마테르가 된다.    

지난 3월 첫 마스터즈 시리즈 연주에서 베르디의 레퀴엠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는 정명훈과 KBS교향악단은 한층 더 두터워진 신뢰와 호흡을 바탕으로 한 무대에서 만났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서정성이 극에 달하는 작품들로 이뤄졌다.

1부는 너무나 아깝게도 31살의 나이에 세상을 등진 오스트리아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1797~1828)의 ‘교향곡 제8번 b단조(D.759)’ 일명 ‘미완성 교향곡’이었다. 전 4악장으로 완성되어야 할 교향악은 그 절반인 단 두 악장만이 남아 아쉬움 속에 연주되고 있다. 1악장은 독일적 낭만주의의 극치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이끄는 저현이 서주를 연주하다 바이올린이 섬세하게 주제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마치 씨줄과 날줄로 천을 직조하듯이 곡을 차분하게 이끌어나갔다. 소나타 형식의 단정한 논리적 구조에서 벗어남이 없는 곡을 정명훈은 아주 정갈하게 비단처럼 짜냈다. 2악장은 현과 목관들이 번갈아 대화하듯 주고받으며 봄날의 시냇물이 흐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정경을 떠오르게 했다. 충만하고 조화로운 음악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감동을 줄 수 있을 테지만 곡은 쓸쓸하게 마무리되고, 아름다워서 더욱 슬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2부 ‘스타바트 마테르’였다. 로시니는 도니제티, 벨리니와 함께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3대 작곡가로 꼽힌다. 그는 ‘세비야의 이발사’, ‘윌리엄텔’ 등으로 인기를 얻으며 커리어의 절정을 달리던 38세의 나이에 작곡을 멈추고 은퇴를 선택한 뒤 파리에서 미식 비평가 겸 사교계 명사의 위치를 즐기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냈다. 1831년 스페인여행 중 만난 수도사의 요청으로 이 곡을 작곡하게 됐다. 비발디, 페르골레시 등 이탈리아 음악가의 ‘스타바트 마테르’ 전통을 이은 로시니의 곡은 총 10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의 부분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창과 솔로 파트를 이루고 있다. 10곡 안에 합창, 4 중창, 베이스 레치타티보(오페라에서 대사를 노래하듯이 말하는 형식)등이 골고루 들어가 있고 일반 성악곡처럼 테너, 베이스,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가 자신들의 기량을 발휘할 여건이 주어지면서 지극히 벨칸토적인 특징과 종교음악 특유의 숭고한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공연에는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테너 김승직,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이 무대에 섰고 안양시립합창단과 인천시립합창단이 함께했다. 인간의 목소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로 불리는데 이날 연주에서 그 말의 뜻을 실감할 수 있었다. 소프라노 황수미의 아리아와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와의 이중창도 좋았고 테너 김승직의 아름다운 발성,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의 묵직한 카리스마가 무대를 충만하게 했다. 특히 합창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이 곡에서 두 합창단은 나무랄 데 없는 연주를 들려줬다. 제9곡 ‘예수여 육신은 죽어도’와 마지막 제10곡 ‘아멘’으로 이어지는 피날레 파트의 장대함은 합창(목소리)과 오케스트라(악기)가 합쳐지며 성스럽고 웅장하게 퍼져 울렸다. 롯데 콘서트홀 공연장에 퍼부은 화려한 빛의 성찬과도 같은 마무리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지휘자 정명훈은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스타바테 마테르’ 해석자로 손꼽힌다고 들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정 마에스트로는 심포니와 성악, 합창이 어우러지며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입체적인 연주를 악보 없이 너무나 완벽하게 이끌어냈다. 이탈리아적인 서정미와 생명력을 잃지 않고 가슴 밑바닥까지 요동치는 애절한 슬픔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켜 종교음악의 정점을 찍은 듯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정명훈 지휘자는 피에타리 잉키넨에 이어 차기 KBS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낙점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이날 공연의 열기를 더했다. (사진 제공 : KBS 교향악단) 

* 이 글은 컬처램프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culturelamp.kr/news/articleView.html?idxno=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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