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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고무 Dec 03. 2019

우리는 쿨한 무표정을 연습해

당신의 무표정은 어떤 표정인가요

가만 보면 무표정이 제일 재밌다. 나는 가끔 수많은 표정들이 사라졌을  잠깐 나타나는 하나의 무표정이 반갑다. 사실 표정에서 상대방의 감정과 상태를 추측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표정에는 너무 많은 설정값들이 담겨있다. 그래서 오히려 미디어화된 표정이 잠시 사라진 그 무표정의 순간에 그 사람의 진짜 표정과 정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다국적 인터넷 밴드 '슈퍼올가니즘'의 보컬 오로노의 무표정을 가장 좋아한다.


PHOTO: PHIL SMITHIES


인디팝밴드 슈퍼올가니즘은 이름처럼 유기체 너머의 '초유기체'라는 독특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어떤 기획사에서 명확한 목적 아래 기획된 팀이 아니라, 인터넷 온라인 포럼을 통해 만났다. 그들은 음악 제작도 스카이프와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디어를 함께 주고받으며 만들었다. 이들은 출신도 다르다. 미국과 일본, 런던,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각자의 독립적인 문화와 다양한 경험이 팀의 색깔을 구성하기도 한다. 실제로 음악을 듣다가 한국 출신의 멤버 소울(Soul)이 어설프게 말하는 한국어 내레이션을 이들의 음악에서 발견하는 건 새로운 재밋거리다.



특히 이러한 슈퍼올가니즘의 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방식이 바로 음악 영상이다. 밴드 안에서 비주얼 아트를 담당하는 로버트는 멤버들의 아이디어를 모아서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공연에 사용되는 여러 시각적 장치들을 만든다. '초유기체'적인 이들의 영상은 기기묘묘한 다양한 영상들의 밈(meme)으로 움직이며 서사의 완결성보다는 기존의 의미망을 벗어난 콜라주 이미지들로 현란하게 펼쳐진다.

슈퍼올가니즘의 <Prawn>과 <Night time>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mJQYRzAoErc


영상 속 오브제들은 인터넷과 게임 스페이스, 우주 공간을 과감하게 횡단하며 서로 충돌하고, 복제하고, 스스로 변형한다. 이를 통해 이 콜라주들은 선형적인 우리의 감각을 아름답게 짓밟고 해체한다. 그런데 이 강렬한 감각들 속에서 오직 보컬 오로노만이 무표정이다. 나는 이 에너지들을 가볍게 진화하는 오로노의 그 표정이 맘에 든다. 그녀의 무표정은 그 어떤 표정보다 더 명확한 감각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무표정은 확신에서 출발한다. 자신들의 음악적 실험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분명한 감각에 대한 확신. 그래서 그 무표정은 우리를 보컬의 말, 즉 음악과 영상, 그리고 코러스의 캐릭터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나는 그 뜨거운 무표정이 오염된 감정 언어보다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밴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무표정은 가장 강력한 표정이자, 메시지이자,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명확한 표정을 보면 누구든 그 음악적 세계에 입장할 수밖에 없다.



나는 표정과 표정 사이에서 어떤 무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나는 언제나 다음 패를 꺼내듯 적절한 표정을 준비해왔다. 표정과 표정 사이에서 자주 불안해했다. 자주 사라졌다. 가끔은 이러한 불안을 가리기 위해 무심한 듯한 쿨한 무표정을 연기하기도 한다. 그 얼굴은 꽤나 어색하게 보일 것이다. 무표정은 표정처럼 연기할 수 없다. 그것은 표정보다 더 깊은 데서 올라오기 때문이다.


오로노의 무표정은 언제나 그들의 음악처럼 솔직하고 명확하다. 모호하지만 분명한 감각에 대한 것이다. 외부가 아닌 내면의 것이다. 도망가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다.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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