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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치 Feb 02. 2020

[단편 소설] Stargazing

(1) 2020-02-02

"야, 들어와"


지금이 몇 시나 됬다고, 벌써 저 타령이야.
난 밤 11시, 야자가 끝나고서야 터덜터덜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제한된 '자유'를 얻는다. 그 터덜거림조차 일정한 템포에 맞춰서 예정된 제 시간에 집 문 앞에 당도하지 않으면 귀찮은 전화벨이 이어진다. 11시 17분. 손목을 휘감고 있는 시커먼 전자시계가 송장같이 멍하게 깜빡거리고 있는 숫자다. 평소의 귀가시간은 보통 11시 10분에서 15분 가량. 걸음이 빠른 편이기 때문에 전속력으로 집에 간다면 5분 정도면 거뜬할 거리긴 하다. 하지만, 지금 이 10분 남짓의 귀가길은, 내 하루의 일과 중 내가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결코 발길을 서두르지 않는다. 


언제나, 아침 6시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기름진 머리를 매일같이 의무적으로 감고, 아침밥을 '들이켜마시고', 간신히 허겁지겁 셔츠 블라우스 단추를 한 두개 덜 여민 채로
 등교한다.
텅 빈 눈빛의 선생님은 오늘도 소리를 지르고, 매 교시마다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칠판과 주번의 손은 탁한 마찰음을 반복한다. 교실을 잠자코 내다보다가 그 전날 밤 TV에 나온 흠 잡을데 없이 잘생기고 예쁜 누구가들을 찬양하며 뻐끔거리는 입술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분명 난 지금 그 누구에 비할 것도 없이 바쁜 고3 생활에 충실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마치 그저 잠들어있는 것만 같다.


어둠 속을 뚫고 등교해서, 창밖으로만 허상처럼 비추던 햇빛이 떨어지고, 다시금 어둠이 찾아오면 우리를 싸늘한 눈빛으로 쪼아보던 담당 야자 선생님의 긴장이 풀어진다.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미동 없던 우리들의 사지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허용권을 부여받는다. 각자 그 날의 옥중생활에 대한 피로함과, '오늘도 수고했다'는 화이팅과 웃음을 시작으로, 그 날 심경을 거슬리게 한 아이를 타겟으로 한 몇 번의 비속어를 매일 다르고도 비슷하게 풀어내는 이들과 인사를 나눈다.
비어있는 1학년과 2학년생들의 복도를 차례 차례 거슬러 내려오는 난 이제서야, 비로소 하루를 시작한다.




물리적으로는 그동안 꾸준히 곁에 친구들이 있어왔다. 혹은 그런 '듯' 했다. 수많은 이들의 학창시절이 그렇듯, 학창시절의 끝물인 고3의 지난 날들은 한 번쯤의 반장생활과, 인기를 얻기 위한 '뒷담화 무리'로의 어색한 합류,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불편한 끄덕임들을 남발했다가 어느 새 주도자로 낙인 찍혀버려 고생도 좀 해봤던 경험, 그리고 같이 다니던 - 다니려고 하던 - 무리에 치이고 질려서 잠깐의 '은따' 생활을 자발적으로 겪던 중 착한 친구들을 만나 재밌는 추억들로 채워져 있었다. 뭐 삶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친구'였던 아이들과는 몇 년, 혹은 불과 몇 개월의 시간만으로 옷깃만 스쳐가는, 모르는 사이보다 더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렸고, 신기하게도 그 중 한 두명과는 어찌저찌 죽이 맞아 몇 년동안 어깨를 토닥이면서 복도를 지나치기도 한다.




이렇듯 난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는 생활로 내 시간을 보내왔다. 같은 교복, 같은 머리, 같은 흐리멍텅한 표정들 속에서 내가 남들과 조금이나마 다른 점이 있었다면 내 관심은 사실 항상 하늘에 가있었단 점이다. 하늘 위에 피어오른 뭉게 구름들, 어제는 시커먼 회색이었는데 오늘은 보송한 흰색이고,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에 갈 무렵에는 쨍-한 햇빛에 구름선이 반사되어 테두리만 영롱하게 빛난다. 사람들은 밤에 떠 있는 빛나는 초승달만 보지만 난 6교시가 끝나고 청소시간이 되면 복도를 쓸다가 창문 밖에 비추는 어렴풋한 오후의 달도 음미할 줄 안다.

당번이 되어 칠판지우개에 묻어있는 분필가루들을 털어내러 지우개를 손에 쥐고 모퉁이에 있는 창문으로 걸어갈 때마다 항상, "아.. 진짜 오늘 선생님 필기 뭐야, 왜 이렇게 지우개가 더러워.." 따위의 투덜거림을 가장하지만, 사실 지우개를 털며 나오는 그 흰색 가루들이 하늘로 날려가는 모습은, 왠지 그날의 분필가루 색에 따라 구성되는 그 날의 모래가루를 흩날려서 하늘에 쏟아내게 하는 느낌을 선사해주기 때문에, 내 지루한 학교생활에서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 중 하나다. 그 때만큼은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것들을 자꾸 질문해서 선생님을 놀리고 수업을 지체시킨 죄', '수업시간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양반 다리를 한 채로 수업을 들은 반항죄' 따위로 얻어맞았던 손의 아림과, 그보다 더한 모멸감과 분노가 창 밖으로 날려나간다. 지금의 이 창틀도 굉장히 자유롭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친구의 '야, 들어와. 선생님 오신다.' 혹은 '아직까지 뭐해, 들어가자' 한 마디에 십분도 채 안 되어 끊기고 마는 일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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