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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exQ Nov 21. 2022

SCM이란 무엇인가?(1)

SCM? 고놈 참 이름 잘 못 지었네!

아주 오랜 옛날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날도 아침부터 엑셀의 셀 하나하나에 박힌 숫자들을 눈이 터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행여 숫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수억, 아니 수십억이 날아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엑셀 직군의 고된 업무에 시달리던 그 시절의 어느 날,

“아무개야, 너 오늘부터 SCM 하게 되었다”

“네? SCM이 뭔 데요?”

SCM은 그날부터 나를 엑셀 직군에서 파워포인트(PPT) 직군으로 옮겨 주었다. 비록 옮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SCM이 무엇일까?

Supply Chain Management의 약자인 SCM. 아마도 이름 짓기(naming)의 사례를 들자면 최악의 이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공급 사슬을 관리한다는 SCM은 이 땅에 20여 년 전 SCM System(특히, i2 Technology)과 함께 도입되었다. 도입 초기나 도입 과정, 그리고 지금까지도 SCM은 그 이름 때문에 많은 오해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이름만 놓고 보면 공급, 즉 구매의 업무로 보이기도 하고 물류나 생산의 업무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오해가 한국에 정착되었을까?


SCM을 도입한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전자를 보자. 지금은 브랜드 명성으로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지만 25년 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90년대 삼성전자의 대표 고객들은 컴퓨터 기업들이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애플이나 델, HP 등이 주요 고객이었다. 그리고 삼성은 당시 자기 이름보다는 이들 업체에 부품(반도체, HDD 등)이나 모니터를 이름 없이 많이 팔았다. 브랜드 로고는 애플을 달고 삼성의 공장에서 OEM이라는 방식으로 공급을 했다. SCM은 삼성전자와 같은 한국 기업이 해외 주요 고객에게 어떻게 경쟁력 있게 공급을 하느냐 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사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판매(Sales) 활동이지만 “고객의 관점”에서 공급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철저하게 고객의 관점에서 어떻게 빨리, 비용 효율적으로 공급하느냐 에 대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바로 SCM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이 아니라 제조를 해서 판매를 하는 회사의 관점에서 SCM은 어떤 업무라고 할 수 있을까? SCM을 제조회사 관점에서 정의하자면 판매 계획과 공급계획의 효율적인 조율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급의 범위는 구매와 구매 물류 그리고 생산과 생산 물류를 아우를 수 있고 판매의 범위는 판매와 판매 물류를 아우를 수 있다.


시장의 수요에서 시작되는 판매계획은 파도가 치듯 항상 유동적이다. 그리고 판매계획에서 시작된 파도는 뒤로 갈수록, 즉 생산과 구매로 갈수록 그 파고가 더 높아지고 세지게 된다. 때로는 이 파도가 너무 세서 회사 자체를 파괴할 만큼. 특히, 삼성전자와 같이 매출 규모가 큰 회사라면 이 파도의 여파는 더욱 커진다.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가? 만약 영업사원 1명이 판매계획을 잘못 세웠다고 가정해 보자. 이번 달에 500억 매출 계획을 세웠는데 실제 매출은 400억 밖에 못했다고 하자. 나머지 100억은 잘못 계획을 세운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 100억은 악성 재고가 되어 판매도 못하고 창고 보관 등 물류비용만 나날이 누적시킬 수 있다. 손해가 100억 매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해 전체 사업부 몇 백 명이 만들어 낼 이익의 절반을 갉아먹을 수 있는 금액이 한 달 동안 1명의 사원에게서 일어날 수 있다. SCM이 도입되던 시절 삼성전자의 많은 사업부들은 지금과는 달랐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이익이 1000억대를 넘지 못하고 몇 백억 대에 그치던 사업부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삼성전자와 같은 제품의 수명주기가 빠른 제조업체들은 재고를 죄악시한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판매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판매는 고객과 시장이라는 변덕쟁이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변덕을 부릴 때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남자의 주요 능력인 것처럼 시장의 변덕에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SCM은 변하기 쉬운 것과 변하기 어려운 것을 조화시키는 마법사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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