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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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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을하 Feb 25. 2020

겁이 많은 사람s

더더욱 사랑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A thousand years ( Christina Perri ) ]





    고 3 때인가 마음이 시릴 때, 그 시린 마음 가운데에 따스한 온기가 되어주었던 책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다시,  사랑”, “그래도, 사랑”이라는 책의 저자 이신 작가님께서 서점을 여셨다고 하여 친구와 연    남동을 가면서 함께 들러 보기로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이름으로만 접했던 작가님이 계셨고, 그분 앞에서 정말 말을 못 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그래도 나름 용기 내어 온 곳이니 만큼 책 추천을 감히 부탁드려 받아 보기도 했고, 감히 또 새해 덕담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덕담을 적어 주시기 이전에 제게 질문을 건네시더군요. 살면서 가장 갖고 싶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다른 이로 하여금 마음을 묻는 질문을 받아본지가 오랜만이라, 익숙하면서도 낯섦을 느끼며 건네받은 질문을 들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쉼표를 다 그리기도 전에 나온, 그러니까 뇌를 거치기도 전에 마음 깊숙한 곳에서 단박에 튀어나온 대답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답을 해놓고 저도 놀랐던 것 같습니다. ‘가장 갖고 싶은 것’. 란 문장이 지니는 의의는 굉장히 포괄적일뿐더러, 어쩌면 인생의 핵심을 결정짓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장을 사전 뜻대로 풀어 본다면, 여럿 가운데에서 첫째로 지니게 되었으면 하는 희망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 문장을 마음 바깥으로 내뱉고 나서, 웃음으로 울음을 피워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간명한 사실이 너무도 기쁘게 슬퍼서. 어떻게 기쁘고 슬픈 감정이 한데 올 수 있느냐 할 수도 있는데요, 정말 그 당시에 그랬습니다. 그렇게 외면하고 또 도망쳤지만 결국 사람들을 너무도 사랑했고, 여전히 그러하다는 것을. 제 자신이 사람들을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슬프고 기뻤습니다. 사람들로 인해 울음 짓게 되었던 그 시간들은 어쩔 수 없이 필연적인 것들이었으며, 앞으로 다가 올 그 모든 시간들은 숨을 쉬며 살아 있음으로 살아갈 이상 불가피한 순간들이구나 라는 것이 그 모든 막연함 가운데에 또렷이 빛나는 하나인 것만 같아서요.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왜인지 모르게 여전히 애틋합니다.



사실 작가님게 덕담을 부탁드리기 이전 책 추천을 부탁드릴 때, 어떤 때에 읽고 싶은 책이냐는 물음에 ‘마음이 시릴 때’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답을 했습니다. 이 또한 말해 놓고 놀랐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상태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마음이 시릴 때 읽으면 좋을 책을 추천받고 싶은 정도라고 까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면 아파오는 것이 싫어서 자꾸만 외면하려 했기에, 마음의 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고3 때 소중했던 친구를 잃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시려오는 것조차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울지 않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몰랐습니다. 울음을 참는다 하여, 웃음까지 같이 참아질 줄은. 슬픔을 눌러 담는다는 것이 그 모든 감정을 봉쇄시키는 것임을. 표현하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표현조차, 말 한마디조차 타인에게 부담이 될까 두려워 무의식적으로 누르고 눌러 담았다는 것을.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느낀다는 느낌은 아득하게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그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살아있었지만, 살아있지 못했습니다. 분명 그 시간들을 지나왔는데, 어떻게 지나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지금의 이 시간들이 낯설고 감사할 뿐입니다.




    또한 그 시절에는 제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표현하는지 다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정작 돌이켜 보면 하나도 몰랐습니다. 제 딴에는 따스하게 말을 건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에 찍은 영상 혹은 음성을 다시 되돌려 보고 들으며,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틀에 갇혀 경직된 말투만 가득하더라고요. 영상을 통해 보았던 제 말투를 들으며 경악을 금치 못 했습니다. 문득 궁금해지네요. 저는 원래 그런 말투를 가진 사람이었을까요.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억누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걸까요. 제 생각과 다른 저의 실재에 적잖이 놀랐던 나날이었습니다. 그 무엇도, 생각을 단 한 줄도 하려 하지 않았던 그때의 저를 미루어 본다면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의 모습이 어떠하였든, 언제나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나’이겠습니다. 저는 이전의 제가 지녔던 경직된 말투를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게 오는 말의 온도에 있어서 어쩌면 생의 전반이 뒤흔들릴 정도로 영향을 받는 편이라서요. 주는 대로 돌려받곤 하는 것이 삶이라면, 따스한 말들을 하기 위해 어떤 온도를 담아 말을 하고 있는지 깨어서 부지런히 살펴봐야겠습니다. 다른 이들의 여러 말들의 온도에 저의 사견을 다는 것이라기 보단, 제가 겁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살아오면서 저지른 것들이 참 많았고, 그것들이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제게 돌아오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삶 속의 슬픔들이 오롯이 자신으로부터만 기인되는 것만은 아닐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생각만으로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삶 속에서 닥친 고난의 모든 것이 오로지 자신의 행동으로부터 기인되었다는 생각은 정말 위험합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정말로.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실재입니다. 듣기 좋으라고 서로에게 건네는 것이 아니라, 있는 사실 그대로, 글자를 통해 표현된 문장입니다. 당신 잘못이 아닌 일도 분명히 있습니다. 정말 나중에서야 비로소 끄덕여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또한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에 있어서 우리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모든 일이 다 우리의 책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절대로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절대. 


    또한 일어난 일의 모든 책임이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것도, 이를 혼자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결코 붙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 한순간도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단언컨대. 당신 잘못이 아닌 일에는 당당히 나의 잘못이 아니다고 외쳐야 합니다. 꼭이요. 설령 그 문장을 쥐고 달려오는 것이 당신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어떤 한 목소리일 뿐 결코 당신이 아님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음속의 목소리와 싸운다는 것은. 사실 싸울 가치도 없는 것들입니다. 애초에 그들은 다 거짓이니까요. 진정한 당신이 곧 진실입니다. 진정한 당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잠깐 고민하게 될까요. 사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당신도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저도 잘 못 하는 것들이라서요. 저는 저의 진정함에 대해 한참 무지합니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해서 알아가겠습니다. 그 싸움은 평생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저는 그들을 저의 발판을 삼아 나아가겠습니다. 한 사람의 진정함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어쩌면 일평생의 숙제가 될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거짓은 명백히 거짓이라는 점입니다. 진실된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이 조금 어려울지라도, 거짓인 것들을 부지런히 헤쳐 나아가다 보면 분명 결국에는 그 진실에 이르러 있으리라 믿습니다. 





    한 때 제 안에 지닌 것들 중 가시밖에 보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    히 앉아서 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를 괴롭혔던 문장들 중 하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받은 상처를 다른 타인에게 되돌려 준다.’ (물론 지금은 이 문장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사람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사실 저 스스로를 보다 더 무서워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너무도 사랑하는 동시에, 이 사랑이 너무도 커져버린 탓에,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해, 또다시 잘못을 저지를까 봐 두려웠습니다. 더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무너질 대로 무너진 가슴에 또 다른 상황이 닥친다면, 그야말로 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사람으로부터, 그렇게 사랑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닿는 그 모든 시간이 곧 제가 상대를 찌르고, 상대가 찔리고 그 모습을 보며 결국 제가 찔리는 것이라면, 제가 홀로 지내는 것이야 말로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도, 한없이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그 감정의 이름을 지우며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며 도망쳤습니다.



    자기 의심은 밑도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과연 나는 사랑을 끝까지 끌어갈 수 있는 사람인가. 예전처럼 혼자 과부하되어 도망치지 하지 않을까. 과연 평생을 약속했다가 그 모든 걸 한 순간에 단절시키고 되돌아 갔던 사람처럼 행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일까.(물론, 이제는 압니다. 그 한순간은 저에게만 해당되는 시간일 것이라는 것을요. 그 친구에게 있어서는 수십 번의 돌이킴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이 사람에게 있어서 한 순간에 무언가를 행한다는 건 지극히 드물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렇기에 잘못 새겨진 그 문장 위에 새로운 문장들을 부지런히 써 내려가야겠습니다.) 사실 아직도 가끔은 이러한 생각들이 물 밀 듯이 몰려올 때면, 좀처럼 숨을 쉬지 못합니다. 저는 너무 두렵거든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 곁에서 멀어지는 게, 그의 발단 중에 저 자신의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죽기보다 두렵습니다. 그 후회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라서요. 그런 세상에서 사느니 차라리 사라지는 게 더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 있어서, 누군가를, 그렇게 다른 이들을 사랑하겠다는 결심은 죽겠다는 결심과도 같습니다. 죽지 못해 살던 그 나날을 다시 마주할 각오로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아는 맛이라 더 먹고 싶다고. 이와 비슷하게 사람을 잃는 게 어떤 아픔인지 아는 아픔이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서는 그 모든 사랑을 내려 두어야 했습니다. 내려두는 것이 곧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내려놓는 순간 저 자신을 내려 둔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요. 뒤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그렇게 마음이 아플까 두려워 도망치는 것보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요. 사랑하지 못함보다 슬플 사랑함은 없다는 것을요. 



    바늘구멍만 한 시야를 지니고 상처만 바라보고 있는 저에서 벗어 나와,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그때를 바라볼 때의 저는 압니다. 저를 더 괴롭혔던 것은 소중한 친구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돌이킬 수 없는 그 후회가 저를 가장 슬프게 했다는 것을. 사랑해서 아팠던 게 아니라, 잘 사랑하지 못해서 아팠다는 것을. 사랑해서 아팠던 게 아니라, 더 사랑하지 못해서 그토록 슬펐다는 것을. 마음을 아꼈기에 그토록 아팠다는 것을. 친구의 소중함을 소중함으로 온전히 여기지 못해서, 그렇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 미웠고 용서할 수 없었기에 계속해서, 그런 뜻이 아닌 문장의 표면만을 복사해서 그 문장에 스스로 가시를 박아 두고 제게 집어넣었다는 것을. 



    그때 당시에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곧 신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훗날 그것이 신의 뜻이 아니라고 알게 된 때에도, 그 문장이 친구로 하여금 새겨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을 상황과 남에게서 책임을 묻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문장을 끌어와 제 멋대로 저만의 의미를 담아 마음에 새겨 넣은 것은, 결국 저 자신인데 말이지요. 그렇게 저를 아프게 했던 건 그 무엇도 아닌 저 자신이었으며,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했던 건 그때의 저 자신이라는 것을요. 사람을 좋아하는 제게 있어서, 사람으로부터의 고립은 어쩌면 그때 당시에 제가 저 자신에게 줄 수 있었던 가장 큰 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친구에게 사랑을 건넸다고 생각했지만, 진정으로 돌이켜보면 사랑을 구하고만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 친구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가 제게서 등을 돌렸을 때 그 또한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모든 아픔을 그 친구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만 급급했습니다.



    또한 배웠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서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사실 어쩌면 저는 영영 그 누구도 떠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때론 이 문장이 저로 하여금 슬픈 웃음을 머금게 하지만, 이제는 보다 겸허히 끄덕이게 됩니다. 이전의 떠나는 걸음에는 보통 저의 위함이 당연하게 여겨지거나,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들로 하여금 당연하게 만든 것에는 저의 책임도 있었습니다. 그 책임은 분명히 있습니다. 관계에 있어서 한쪽만의 책임의 크기가 다를 뿐, 한쪽만의 책임이라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소중한 이들에게  또한 이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정말 많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마음의 여유가 다하지 않을 때 이를 더 이상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하고 넘긴 대다수의 사람은 곧, 저 자신이 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다며 넘기게 되면, 꼭 제 삶에서 그들의 삶이 되풀이되듯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반복 속에서 처음에는 부단히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경험 끝에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은 이해, 즉 사랑이라는 것을요. 사랑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것을요.






    사실 이를 깨닫게 된 순간으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지났지만, 머리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마음에 이 문장을 새겨두길 계속해서 거부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건, 죽을 수 없어서 괴로운 시간을 사는 건 이제는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거든요. 이는 여러 번의 순간을 겪었지만, 많이 겪었다 하여 결코 무뎌지진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도망치기만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요. 혼자도 괜찮다면서 다독이는 시늉으로 외로움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그러나 속이 곪을 대로 곪아서, 손 끝 하나 닿기에도 시린 마음을 뒤늦게서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시선이 가닿을 공간이 하늘밖에 없었던 시간 속에서 생각했습니다. 사랑을 벗어나 안전을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 생명을 잃어 가는 나날인 건 다를 바 없구나. 뒤이어 생각했습니다. 기어이 살아야 할 생인데, 그저 곪은 마음을 지니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건 너무 애석하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도 아픔이라면,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자고. 설령, 사랑하다 마음이 찢어져 죽는다 하더라도 그건 보다 행복한 죽음일 것이라고. 그러니 사랑하자고, 모든 것을. 



    하지만 마음을 먹어도 생각은 어김없이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다짐은 말씨로만 남아, 땅 위에 심어지지 못한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일 일어나면 소중한 모든 이가 저를 떠나는 상상을요. 사실 소중해지는 것들이 보다 그 깊이가 깊어질수록 자주 생각하게 되곤 합니다.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그 순간들에서도 이 생각만큼은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미리 끌어와 자주 괴로워하곤 합니다. 이는 이전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이상, 계속 그러할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서 어떤 기억들은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같이 짓궂게 짙어지는 것 같기도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어쩌면 부지런히 이겨내야 하는 생각이겠습니다.. 그럼에도 그 기억들에 감사할 수 있는 건, 그 기억들 덕택에 조금이나마 지금의 걸음들을 보다 살펴보며 소중함을 보다 더 헤아려 볼 수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그 덕택에 지금의 소중함들을 감사로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보다 더 그 소중함을 잃지 않기 위해, 두려움을 뒤로하고 이겨내기 위해 더 노력할 수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그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지금의 소중함들을 지켜갈 수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소중함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모든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상상 속에서, 그럼에도 계속해서 숨을 들이 마쉬었다가 내쉬며 걸음을 옮기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다가오면 두려워 숨을 멈추곤 하였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소중함은 바로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나눌 이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는 것, 아무도 손을 뻗지 않는 곳에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노력과 함께 마음을 써주는 벗이 있다는 것. 모두로부터 도망친 그 순간에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기다려준 누군가가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건, 그럼에도 살아낼 수 있는 큰 힘입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신이 주신 가장 큰 은혜입니다. 받은 것들이 너무도 많아서, 갚기에는 한참 모자라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옆을 지키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벽밤과 같은 하루들 속에서 떨려 오는 불안들을 두고 계속해서 걸어나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껏 경험한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만큼 또다시 커다란 불행들이 닥쳐온다 하더라도요. 함께 하는 이 순간들에 너무 감사해서, 조금이라도 이 은혜를 보답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그 모든 불안들을 이겨내게 하더군요. 이겨낼 수 밖에 없게 하더군요.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참 힘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런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주심에 참 감사한 나날입니다. 







    그렇게 지금의 저는 ‘그럼에도 영원히 사랑’이라는 문장을 움켜쥡니다. 이를 움켜쥐려다 때로 붙들리는 것이 저의 숨통이라 할지언정, 다시는 놓지 않을 겁니다. 또다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되더라도, 평생을 그 등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괜찮습니다. 당신이라서, 괜찮습니다. 그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저를 떠나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또한 슬픈 기쁨으로 배웅하겠습니다. 몇 번이고 부정했지만,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지만, 그냥 저는 그렇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가 없는 시간 속에서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행복이 곧 저의 행복이라서요. 돌아볼 때에는 제 걱정은 말고, 기꺼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게 머무는 것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아픔이라면 그게 더 슬플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사람을 믿지 못합니다, 동시에 믿습니다. 이는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기어이 믿어 내겠다는 말입니다. 그 ‘기어이’라는 시간 속에서 몇 번이고 넘어지더라도, 소중한 이들의 어떠함 때문이 아닌 그저 그 소중한 이들이기에 믿어내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즉, 사랑하는 이들이 저를 뒤로하고 떠나간다 하여도 그 또한 믿겠다는 말입니다.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그런 신념이 담긴 말입니다. 믿는 동시에 실망조차 믿겠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마음들은 단순히 제가 겁을 많이 먹는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이런 각오들조차 없으면 영영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 스스로가 제게 보내는 일종의 다독임이지요. 매 순간 그 모든 끝을 각오하며 나아가야 할 만큼, 제게 있어서 그 어떠한 사랑도 쉽지 않습니다. 사랑한 기억을 뼈마디에 새기면 새겼지, 결코 쉬이 잊을 수 없는 것들이라서요. 평생 지니고 갈 슬픔을 각오하고 그 모든 사랑의 이름에게 걸음 합니다. 많은 나날을 울음 지어야 할 삶이라면, 웃다가 슬퍼하다가 다시 웃는, 결국 사랑을 택하겠습니다. 제 자신에게 고합니다. 사랑하자, 수민아. 사랑이 내가 가야 할 유일한 길이야. 그렇게요.


그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들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조금은, 어쩌면 생각보다 조금 더

당신의 불안들에 공감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해보고 싶습니다. 

그 사방에서 달려오는 것들을 저도 조금은 알고 있으니 

부디, 혼자 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혹 걱정되어 잠 못드는 날이면, 언제든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시간 속에서 당신이 홀로 걱정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고민해요, 우리.

보다 더 깊이 공감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게요. 

무턱대고 패기만 가지고 한 말들이 아니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꼭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곁에 있겠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제 곁에 없는 순간조차 말이지요.

혼자만 그 어려움들을 감당하지 않도록, 꼭 같이 경험하겠다는 말입니다.


저의 삶에 머물며

그 곁을 견디는, 그 모든 사랑들에게

그 모든 숨을 담아, 경의와 고마움을 표하며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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