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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을하 Jun 10. 2020

목소리,

그 모든 덕택과 덕분

[ 함께 들으면 좋을 곡 : 너도(로꼬) ]



그전까지는 몰랐다. 나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동안 나가 내 스스로에게 어떤 말들을 건네며 즉, 나와 내가 어떤 대화를 하고 살아왔는지. 이유도 모른 채 조급했다. 다만 일단, 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학을 가야 해, 대학을, 대학을..


대학을 못 가면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거라는, 그 관문을 열지 못하면 다음 관문은 없다는 그런. 대학이 인생의 첫 관문이라는 것도 결국 지어진 말이지, 정답이 아닌데 내 안에 그 하나의 관문만이 온 마음을 열기 위한 단 하나의 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의 향연이었다.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은 생각 이상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밀려 들어왔다 흘러가야 할 것들이, 내가 쥐고자 하면 그제야 쥐어져야 할 것들이, 나를 쥐고 있었다. 내가 그 생각에 잡혀 있었다. 어느새 그 생각이 나였고, 그 생각만이 말을 하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장은 이러했다. 그 후의 인생은 그 무엇도 꿈꿀 수 없을 거라고, 그 무엇도.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게 되는 것도 당연지사 하다고. 인생은 대학에 의해 결정지어진다는, 비논리적이고 편협하고 기이하지만 기이할 것 없는 그런 모순 가득한 목소리. 그게 내 안에 있었고, 나는 자주 그 목소리 앞에서 숨죽이곤 하였다.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 앞에서 나의 목소리는 이를 방해하는 하나의 소음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대학을 갔지만, 그럼에도 나는 숨죽여야 했다. 그 목소리가 원하는 이상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목소리 앞에서 나는 패배자였고 낙오자였다.


대학에 인생이 달려 있다는 거, 그 부조리한 말을 마주할 때면 자주 눈살을 어긋내며 비판하던 나인데, 내가 그 목소리에 나 자신을 붙잡아 두었다는 생각이 수치스러웠다. 머리로는 아닌 걸 알면서, 마음은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 탓, 상황 탓, 하나님 탓을 하며 살았다. 내가 힘든 이유는 내 안에 없다고, 다 내 주위에서 벌어진 일이고 나는 이 힘듦의 피해자일 뿐이기에 더 이상 이 삶에 책임지고 싶지 않다고. 내가 나를 마주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잠재워질 리 없는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내 안에서 울려 퍼지며 나는 다만 숨죽인 줄도 모른 채 그렇게 그 모든 나로부터 도망치고만 있었다.


   

대학을 가야 한다는 목소리만을 손에 쥔 나는, 내 마음을 열어 그 안의 나를 본다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결국 생을 이끌어 가는 그 모든 힘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나는 어리석게도 마음을 가장 먼저 등한시했다. 살아가는 그 모든 순간순간이 가장 먼저 내 안에서 비롯되고 다시 내 안에서 결을 맺는 것인데, 나는 오만하게도 내 마음 하나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조차 살피지 않은 내 마음은 자꾸만 자기 연민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빚어진 것들은 나뿐만 아닌, 내 주위 사람들 또한 아프게 하였다. 나 스스로를 아프게 한 것도, 내 주위 사람들을 아프게 한 것도 나인데 나는 자꾸만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내가 혼자 있어야 피차 좋은 것이라고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살았다.



사랑, 마음, 그 마음이 있어서 이 지경이 됐는데 그런 거 쥐고 있어 봤자 아니냐며. 그런 거 없어도 숨은 쉬어지지 않냐며, 숨을 쉬면 사는 거 아니냐며 그럼 된 거 아니냐며. 세상을 향해 온갖 날 선 말만을 내뱉던, 그런 나를 붙들고 그럼에도 지금 이 자리에 있으라고 말해준 목소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서로 사랑하고 살아야 한다며. 언제 무너질지 몰라 한없이 위태로운 내 마음에 그럼에도 온 마음을 무릅쓰고 뛰어든 이의 목소리였다.

함께 하면 망가지는 게 전부라며 그러니 내가 멀어져 있는 게 모두에게 좋은 거라고, 사실은 내가 다치고 싶지 않은 그런, 나조차 몰라주던 내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마음으로 보살펴준 사람.


이곳에 사랑으로 보내져서 사랑을 나누며 사랑을 닮아가는 사람. 지은.


그녀가 나눠 주는 사랑은 외면했던 지난 모든 시간을 되돌아볼 힘이 되어 주었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것에 맞설 용기가 되어 준다.




그 사랑에 힘 입어, 내 마음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돌아본 곳곳, 그 위를 딛는 걸음걸음마다 나조차 없는 내 안에 들어와서 내 마음을 살펴주고 보살펴준 목소리들이 있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따스한 한마디 한마디, 길거리에서 스쳐가는 정감 있는 광고 등의 문구들, 마음과 마음 사이를 이어 온기를 느끼게 하는 책 속의 문장들, 귓가에 울려 퍼지며 숨을 쉬게 하는 노래 속 가사들, 굳건한 담대함을 내어주는 성경 말씀들 등등...


주님으로부터 비롯되어 사람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고 자신했던 나를 무너진 그 무수한 시간 가운데에서 계속해서 일으켰던 것은, 내가 탓하며 도망치고자 한 그 모든 것이었다. 그 무수한 말들이 나조차 놓은 나를 붙들고 지탱하고 있었다.



모두, 목소리가 오고 간 함께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사랑, 그 마음을 거쳐야만 비롯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이었다.


마음이, 사랑이 있기에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그 모든 나날인 것이었다.



그 모든 덕택에, 그 모든 덕분에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가고 싶다.


살아서가 아닌, 사랑하고자.


사랑하며 살게 하는 그 모든 손길들에 감사하며


다시 사랑하며 살아갈 가장 큰 용기와 힘을 나눠주는 지은께 감사하며


우리 모두를 이곳 가운데에 보내셨고, 그 모든 사랑이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그 모든 감사에 언제나 감사함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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