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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전 Dec 07. 2020

지나갈 땐 '지옥'같은,
지나고 보면 '기적'같은...

-메러디스 빅토리 호, 기적의 사람들 1 

팍팍한 삶에 '기적'이 필요한 간절한 순간은 얼마나 많은 지, 그럴 때마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기적은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 기적은 기적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는 말을 했다. '기적'조차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주어질 수 있는 것이지, 아무 한 일도 없이 일어나는 기적은 없다는 말이다. 기적처럼 보이는 로또 당첨 같은 일도 그게 진짜 삶의 기적인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일이긴 하다. 로또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지금부터 내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는 이 일을 겪은 사람들이 모두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치던 1950년 12월, < 굳세어라 금순아>에 나오는 가사처럼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는 남쪽으로 피난 가려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겨우 60명의 사람을 태울수 있을뿐인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는 1950년 12월 22일, 중대 결정을 한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화물칸에 '화물' 대신 '사람'을 태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화물칸에 사람을 태운다면 몇 명을 태울 수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12월 22일 밤 9시 반부터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화물칸 1,2,3,4,5 가 콩나물시루처럼 피난민들로 가득 찼지만 흥남부두에는 아직도 배에 오르기만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장은 운항에 방해가 될수 있는 갑판까지 피난민들을 태우기로 결정한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피난민을 태우는 작업은 다음날 12월 23일 오전 11시 10분이 돼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60인승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탄 사람들은 모두 14,000명이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임무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배에 탄 이들을 전부 안전하게 부산까지 실어나르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갑판까지 피난민들로 가득찬 메러디스 빅토리호

10km까지 추격한 중공군은 밤새 시뻘건 폭격을 멈추지 않았고, 바닷속에는 언제든 한방에 배를 집어삼킬 수 있는 기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35세의 청년 '레너드 라루'선장, 그가 스스로 선택한 이 임무는 무모하기 이를데 없는 도전이었다.


그 때 선장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기도를 하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훗날 고백했다. 

 

12월 23일 오전 11시 43분, 배는 드디어 흥남부두를 떠났다. 밤낮을 달려 필사의 탈출을 한 배는 12월 24일 오후 12시 30분,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그러나 연합군 측에서는 목숨을 걸고 탈출해 온 이 배의 부산 입항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산 앞바다에서 하룻밤을 꼬박 대기한 배는 25일 다시 거제도를 향해 출발했다. 1950년 12월 25일 성탄절 오후 12시 42분, 배는 거제도 앞바다에 닿았다.  


단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배에 올랐던 14,000명의 피난민들, 그들은 이제 막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채 땅을 밟았다. 그 곳이 거제도였다.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지나온 820km의 이 항해는 세계 해양 역사상 '가장 작은 배가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역사'로 공식 기록돼 있다.


전쟁이 끝난 뒤 '레너드 라루' 선장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수십 년이 흐른 뒤 그는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노 수사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인천 상륙작전과 함흥 철수 작전에 참가하며 거친 전쟁의 바다를 누볐던 젊은 선장, 그는 왜 수사가 되었을까?  

'마리너스 수사'가 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

< 크리스마스의 기적 >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물론 그 기회가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비로소 그 기적은 나의 것이 되었다. 원래는 올해  12월 방송을 할 목표로 달려왔지만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사건의 중요한 인물들 상당수가 해외에 있었고 많은 중요한 사료들이 해외에 있었으나 해외로 갈 길이 막혔다. 방송은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그렇지만 한 해 동안 국내에서는 분주히 움직였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70년 전 '지옥 같았던 항해'를 회상했다. 그리고 지난 뒤 생각하니 그 항해는 '기적'이었다고 하나같이 증언했다. 


'지옥의 항해'를 '기적의 항해'로 만든 메러디스 빅토리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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