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입은 옷이나, 가방, 신발 등으로 판단을 안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사실 모르겠으며 궁금하지도 않다. 내가 사람을 보는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명료한데, 그 사람의 분위기와 아우라, 말과 말투, 목소리, 태도, 눈빛... 그리고 또 하나는 스타일이다.
스타일엔 정답이 없다.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내가 입고 싶은대로, 내 기분대로, 내 멋에 입는게 진짜 멋이라고 생각하는 바, 길거리를 걷다가도 남의 의식은 전혀 하지 않고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진짜 멋쟁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엄지척에 그 사람의 내면도 아주 맛깔나게, 다채롭게 아름다우면서도 단단할 거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예쁘다는 말보다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말이, 개성있다는 말이, 분위기 있다는 말이, 스타일이 멋지다는 말이, 훨씬 더 깊은 감동으로 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때문이 아닐까.
스타일하면 난 고백하건대, 프랑스 할머니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파리 살던 시절, 내 눈과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늘, 파리지앵, 파리지엔느의 패션이 아니라 파리의 세상 멋지고 섹시하던 할머니들의 패션과 아이템들이었다. 난 그렇게 그녀들의 색채와 색감에 대한 센스와 감각과 감성을 내 눈에 꾹꾹 눌러 담았고 지금의 내 패션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나는 인정한다.
프랑스 할머니들은 섹시하다. 어쩜 그렇게 오래된 옷들을 아주 세련되게 멋스럽게 고급지게 우아하게 소화하는지. 색깔을 맞추는 센스에도 난 아주 자주 감탄했었다. 내 눈에 아주 멋진 할머니들을 우연히라도 마주치게 되면, 나도 저런 모습으로 아름답게 나이들어가야지.했던 적이 많다. 무튼 역시나. 스타일과 내면의 아름다움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다.
명품엔 원래부터가 관심이 없었고 그것이 어느 브랜드이든지 간에 로고가 박힌 옷이나 가방이나 신발엔 아예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내 옷장엔 늘 빈티지스럽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옷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생이던 때부터도 늘 나만의 개성을 찾았고 귀걸이도 큰 링에 레이스가 달린 것들도 자주 하고 다녔을 만큼 내게 가장 잘 어울릴만한 아이템들에 진심이었다.
스타일이 좋다.라는 말이 무얼 의미하는 걸까.에서 시작된 나의 물음은 결국 나 자신을 잘 안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는데, 스타일이 좋다. 스타일이 산다. 소위 뭘 입어도 귀티가 난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이런 말들을 듣는 사람이라면 분명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는 구석이 있다. 결국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어떤 옷을 입었을 때 스스로가 가장 예뻐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지에 대해 명확히 아는 사람이어야지만이 나올 수 있는, 그 아우라와 분위기를 나는 아주 사랑한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입는 옷에, 가방에, 신발에, 액세서리에 내 기분과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한다고 할까. 나는 정확히 그러한 사람인데, 그러다보니 내 성격적인 개성과 삶에 대한 내 태도와 가치관 역시 아주 짙게 묻어날 때가 많다. 그래서 패션이라는 것, 스타일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 이 또한 곧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명품만 입으면 무엇하리. 나.라는 사람이 명품이어야지. 이 말 아무리. 아무리 들어도 마치 달콤한 까망베르치즈 케이크의 밑둥이처럼 질리지 않는달까. 진정 사실이 그러하며 내안의 에너지를 아름다움, 깊은 통찰에서 오는 갖은 사유와 시선들로 가득 채우고 나면 명품을 넘어서는 설명할 수 없는 내안의 명품이 탄생하며 그 경험은 소스라치게 놀랄만큼의 낭만과 쾌락이 있다. 이걸 아는 사람이라면야 명품은 정말 필요 없게 된다. 나.자체와 내 영혼이 명품 그 자체인데 그곳에 껍데기일뿐인 명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싶다.
최근 들었던 말 들 중에 인상깊었던 말이 하나 있다. 내 패션 스타일을 보고 있자면 섹스 앤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가 생각난다는 것이었는데, 사라제시카 파커의 패션스타일과 참으로 닮았다고 했다. 나는 섹스 앤더 시티라는 제목은 많이 들어봤어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선 검색해보았다. 어맛 웬걸. 듣고보니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소 80~90년대 스타일을 선호하고 빈티지도 좋아하기도 해서인지 정말이지 느낌이 비슷했다.
사실 내 또래 친구들은 다들 명품백은 꼭 하나씩은 들고 나오며 도시적이고 세련되게 입으려고 한다. 요즘 유행으로는 세련되고 소위 부티나기는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들만의 개성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런 부분에서라면야 내 패션 스타일이 흔하지 않은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다소 독특하면서 나만의 삶의 태도와 취향을 내 패션에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단출하게 드러내는 것 자체가 날 기분좋게, 내 시선과 사유를 자유롭게 한다는 생각이다.
내 스타일에는 유행이라고는 일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 발생할 때도 더러 있을 수 있겠다. 총체적 난국이면 또 어떠하리. 원래 제 멋에 사는게 아니던가. 다행히도 나는 촌스러운 옷도 저렴한 옷도 고급스러워 보이게 하는 마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내게 명품이란 필요없다. 몇 천원, 몇 만원짜리로도 몇 십만원 몇 백만원 짜리로 보이게 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면 그 누가 부러울까. 오히려 그런게 훨씬 더 힙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외려 외면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그곳에 내 에너지를 기울이는 이유다.
나는 오직 나로서만이 존재한다.는 말처럼. 내 스타일 역시 나라는 사람 그 자체의 표현이자 내 의식의 발로일 수 있겠다. 날씨가 파리의 추운 겨울 어느날 처럼 아주 쌀쌀맞아진 차제에 옷장을 정리하던 오늘 저녁, 문득 내 옷장을 바라보다 명품가방, 명품 옷하나, 명품 신발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다, 나는 생각했다. "명품 여기 있네! 거울에 비친 너!"
명품하나 입지 않아도, 없어도 초라하지는 더더욱 않으며 행여 혹여 나라는 사람을 내가 입은 옷이나 가방, 신발의 가격으로 측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는 의식과 생각 자체가 맞지 않는 사람이기에 함께 어울릴 일이 아예 없을 것이다. 남자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내면보다 외면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꾸미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는 아예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남자 여자 모두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스타일이란, 많이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을 혹은 나를 돋보이게 만드는 귀티는 결코 돈으로 얻을 수 없는, 대신할 수 없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만이 향유하고 누릴 수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이며 기운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스타일에 대한 고찰을 하면서도 늘 그렇듯 그 끝은 또 이렇게 "내면"인 건가.싶지만 맞다는 생각이다. 스타일이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소위 뿜뿜하는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독특한 분위기이며 스타일을 빼놓곤 분위기와 아우라를 설명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가진, 우리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은 결국은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내 고찰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다. 지금은 스타일 사는 언니, 여자.지만 결혼을 하게 된다면 거기에 스타일 사는 엄마, 스타일 사는 아내, 스타일 사는 할머니...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제 멋에 산다. 제 멋에 입는다.고 말하는 여자라면 이미 근사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